[윤미숙기자] 권철현 전 주일대사의 부산시장 도전은 이번이 세 번째다. 2002년, 2006년 두 번의 도전 모두 당시 현직 시장과 맞붙은 경선에서 패해 본선 무대에 올라보지도 못한 채 꿈을 접어야 했다. 그래서일까. 이번 선거에 임하는 권 전 대사의 의지는 그 어느 때 보다 더 결연했다.
권 전 대사는 지난 1월 출마 선언 당시 임기가 1년 9개월여 남은 세종재단 이사장직에서 사퇴했다. 이번 선거에 '올인'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셈이다. 권 전 대사는 24일 아이뉴스24와의 인터뷰에서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본선에서 부산시민의 평가를 받아 보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권 전 대사는 출마 선언 이후 줄곧 새누리당 후보군 가운데 1위를 달리고 있다. 야권 유력 주자인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과도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다. 그러나 권 전 대사의 표정이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당내 경선 때문이다.
권 전 대사는 현행 경선 룰(대의원 20%, 당원 30%, 국민선거인단 30%, 여론조사 20%)이 현역 국회의원에게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국민선거인단 투표율이 현저히 낮아 대의원 임명권을 가진 현역 국회의원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에 권 전 대사는 여론조사 비율을 50%로 상향 조정할 것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고심하다 경선에 참여하기로 마음을 돌리기까지 복잡한 심경이 수차례 내쉬는 한숨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그러나 권 전 대사는 "부산을 위기에서 구할 수 있는 사람, 야권 단일후보인 오거돈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권철현 뿐이라는 것을 부산시민들이 모두 인식하고 있다"면서 "부산시민들과 당원들만 믿고 당당하게 나아가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당내 '박심(朴心·박근혜 대통령의 의중)' 논란에 대해선 "원래 못난 아들이 아버지 팔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이어 글로벌 기업 유치 등 주요 공약을 설명하며 "부산 발전, 해낼 수 있고 반드시 해낼 것이다. '주식회사 부산'의 CEO가 될 것이고 국제 세일즈맨 시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권 전 대사와의 일문일답.
-이번이 세 번째 도전입니다. 각오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지난해 추석 쯤 내 이름을 처음 올려 여론조사를 했는데 1등을 했습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연말까지 움직임을 지켜보고 결정하려고 했는데 점점 갈수록 지지도가 높아지기에 (선거에) 뛰어들기로 결정했습니다. 세종재단 이사장직 던진 것에 대해서는 주변에서 반대가 좀 있었고 재단에서도 만류했습니다. 나 보다 앞서 이사장을 했던 정원식 전 총리는 이사장직을 가지고 서울시장 선거에 나갔다가 본선에서 떨어지고 이사장직에 돌아온 사례가 있으니 이사장직을 가지고 경선을 치르고 경선을 통과하면 그 후에 사퇴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했지요. 그런데 그건 정원식 스타일이고 저는 싫습니다. 양쪽에 발을 걸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근 부산에 내려가 보니 과거에 비해 활력이 떨어진 느낌이었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과거의 부산에 비하면 지금의 부산은 그 위상이 많이 추락했습니다. 한때 부산이 제일 좋았을 때 대한민국 전체 수출의 29%를 차지했는데 지금은 2.5% 밖에 안 됩니다. 부산의 성장동력이던 신발, 목재, 합판 등의 산업이 몰락하는데 이를 대체할만한 신성장동력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도시는 그 시대에 어떤 지도자가 있었느냐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집니다. 지금도 늦지는 않았지만 마지막 기회입니다. 지금 즉시 부산의 지도자들이 발상을 전환해 신성장동력을 도입하고 부산의 분위기를 일신해야 합니다."
-아무래도 부산 시민들은 미래 먹고 살 거리에 대해 가장 관심이 많을 것 같습니다. 부산 발전을 위한 어떤 정책 비전을 가지고 계십니까.
"우선 부산에 글로벌 기업 100개를 유치할 것입니다. 일본에서 유학하고 대사를 지낸 경험을 살려 '재일동포 전용 산업공단'을 만들 계획입니다. 재일동포가 운영하는 기업 중 우리나라에 투자하고 싶어 하는 기업 50여개를 유치하고, 나머지 50여개는 중국 등에서 끌고 오면 100개는 유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기업 당 2천명이라고 하면 부산에 20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하면 부산이 조금이나마 활성화될 것입니다."
"가덕도 국제공항 주변에는 신공항도시를 만들어야 합니다. 도시를 건설할 때부터 토목 등 각종 산업이 활성화될 것이고, 공항 주변에 도시가 있으면 공항 자체도 경쟁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밖에 해상풍력단지를 만들거나 쓰레기, 폐기물, 건축물 등을 이용한 신재생에너지산업을 발전시켜 신성장동력의 중심으로 삼을 것입니다. 그렇게 부산 경제가 살아나면 이를 바탕으로 교육·문화·관광·건강·체육 등 5대 명품도시를 만들겠습니다."
-가덕도 신공항, 해양수산부 유치 등 지난 대선 당시 부산에 내건 공약 중 지켜지지 못한 게 많고, 부산시민들의 불신도 적지 않은 것 같은데요, 지금 말씀하신 공약들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
"이런 모든 일들이 가능하겠느냐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고 여태까지 못한 일인데 당신이 할 수 있느냐고도 합니다. 그러나 전임 시장이 못했으니 당신도 못할 것이라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저는 주일대사 시절 미국 '리먼 사태'가 터졌을 때 개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해 일본 정부와 통화 스와프를 체결한 경험이 있습니다. 2010년 한·일 강제병합 사과문 발표 때 일본 정부가 조선왕실의 궤를 반납한 것도 저의 설득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부산을 발전시키는 것, 지금가지 못했다 하더라도 저는 해낼 수 있습니다."
-야권에서는 새누리당 소속인 허남식 현 시장이 3연임을 했지만 눈에 띄는 발전을 이뤄내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어느 당 소속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새누리당이 해서 망하고 민주당이 해서 성한다는 논리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본선에 나서려면 당내 경선부터 통과해야 하는데요,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높게 나타나지만 아무래도 민심 보다 당심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경선에서는 고전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습니다.
"서병수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져도 친박계 의원들이 있고 대통령이 자신을 밀고 있으니 당내 경선을 장악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 말이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네요. 지금 부산이 위기라는 것을 부산시민이든 당원이든 모두 인식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부산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권철현 뿐이라는 걸 다 알고 있습니다. 야권 단일후보 오거돈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권철현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다 무시하고 단순히 대통령이 밀고 있다고 해서 서병수 후보를 찍겠습니까. 그게 흥미진진하지만 조금 불안하기도 합니다."
-줄곧 경선 룰 변경을 요구했지만 당 지도부가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탈당 후 무소속 출마까지 고민하셨는데요, 당시 당 지도부에 서운한 마음도 들었을 것 같습니다. 심경이 어떠셨습니까.
"앞서 두 번의 도전 모두 경선에서 졌습니다. 두 번 다 현역 부산시장과 붙었는데 이게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현역 프리미엄이 어마어마했습니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본선에 나가겠다, 본선에서 부산시민의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세종재단 이사장직까지 던지고 배수진을 쳤는데 경선 룰이 이렇게 정해지니 주변 사람들이 '또 경선에서 당할 것이냐. 시민후보로 본선에 바로 가자'고 저를 설득했습니다. 오거돈 후보 쪽에서도 여권 1위와 야권 1위가 연대하면 게임 끝이라는 유혹도 있었습니다.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경선 참여를 결심하게 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저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 이명박 대통령 후보 특보단장을 지내고도 공천에서 떨어졌지만 수용했습니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부산 사상에 나왔을 때 문 의원과 붙을 수 있는 사람은 권철현 뿐이라는 '상식'이 있었음에도 27살짜리 손수조를 공천했을때도 참고 도왔습니다. 이후 대선 때는 박근혜 대통령이 도와달라고 하기에 도왔습니다. 그랬던 저인데 경선 룰 하나 안 고쳐준다고 탈당하는 게 맞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내 정치철학이자 소신인 '선당후사'를 이번에도 지키기로 했습니다."
-경선 참여 발표를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부산시민들은 잘 결정했다고 하더군요. 오히려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간다고 했을 때 여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실망을 좀 했던 것 같습니다. 불리한 경선 룰이지만 수용하고 당원 동지들과 애국시민들을 믿고 당당히 걸어가겠다고 발표하니 오히려 지지율이 조금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이번 지방선거 후보 경선은 어느 지역을 가도 '박심 논란'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부산도 마찬가지인데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원래 못난 아들이 아버지 파는 것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은 연애할 때도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비전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우리 아버지가 돈이 많고 우리 아버지가 이렇게 성공했고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 하지 않습니까. 그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또 그것에 넘어가는 여자도 있지 않습니까. 서병수 후보는 (당원들이 박심에) 넘어간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원들을 믿고 가겠습니다. 당원들이 올바르게 판단할 것으로 믿습니다. 눈앞의 작은 이익이나 유혹 보다 부산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할 것입니다. 무리해서 서병수 후보를 본선 후보로 뽑았다가 오거돈에 지면 새누리당에도, 박근혜정부에도 위기가 올 것입니다."
-민주당과 무소속 안철수 의원 측 새정치연합의 신당이 지방선거 변수로 꼽히는데요, 부산에서의 파괴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부산에는 별 영향이 없습니다. 오거돈 후보가 굳이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유도 신당 후보로 여론조사를 하면 지지도가 확 떨어지기 때문 아닙니까."
-마지막으로 부산시장에 당선된다면 '권철현의 부산'은 어떤 면에서 과거의 부산과 차별점이 있을지 말씀해 주십시오.
"1년에 6개월은 부산시민들이 제 얼굴을 보기 힘들 것입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우리 시장 요즘 어디갔어?' '중동에 원유 구입하러 간다더니 멕시코 들러서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는 대화가 중심이 될 것입니다. 또 부산시민 여러분께 미리 양해를 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떤 모임이든 축사나 격려사 하러 가지 않겠습니다. 축사를 하러 오고 가고 하는 시간이 엄청납니다. 그 시간을 아껴 일을 하겠습니다. '주식회사 부산'의 CEO가 될 것이고 국제 세일즈맨 시장이 될 것입니다."
윤미숙기자 [email protected] 사진 정소희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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