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기자] ‘PC 시대 개척자’ 마이크로소프트(MS)가 고민 끝에 내놓은 해법은 ‘신구 조화’였다. 젊은 사티아 나델라를 차기 최고경영자(CEO)로 낙점하면서 원로급인 존 톰슨과 빌 게이츠가 뒤를 받쳐주도록 했다.
젊고 유능한 나델라의 능력에 빌 게이츠, 존 톰슨의 연륜을 결합하겠다는 복안인 셈이다. MS가 앞으로 ‘삼두체제’를 어떻게 가동하느냐에 따라 이번 선택의 성패가 갈릴 전망이다.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MS는 4일(현지 시간) 클라우드 부문장인 사티아 나델라를 차기 CEO로 선임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와 함께 CEO 선임 작업을 이끌었던 존 톰슨이 이사회 회장직을 맡기로 했다.
MS의 얼굴이나 다름 없는 빌 게이츠는 ‘창립자 겸 기술고문’에 선임됐다. 외형상으론 이사회 회장에서 평이사로 한 발 물러난 모양새.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실상 빌 게이츠의 ‘현장 복귀’나 다름 없다.
결국 MS의 이번 인사는 사티아 나델라 CEO 선임 못지 않게 존 톰슨 이사회 회장과 빌 게이츠 기술고문에도 많은 무게가 실려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시만텍 CEO 출신 존 톰슨, 이사회 회장 맡아
존 톰슨은 IBM에서 28년 동안 몸 담은 뒤 1999년 시만텍 CEO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그는 2009년까지 10년 동안 시만텍 CEO로 재직하면서 많은 활약을 했다.
1999년 존 톰슨이 맡을 당시 시만텍의 매출은 6억 달러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10년 만에 시만텍을 매출 60억 달러 회사로 키워냈다.
물론 시련도 있었다. 시만텍 CEO 재직하던 지난 2005년 베리타스 소프트웨어를 102억 달러에 인수한 부분이 대표적이다. 데이터 스토리지 부문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단행한 인수합병이었지만 후속 처리 문제로 적잖은 곤란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톰슨은 누구보다 ‘흔들리는 업계 최강 기업’의 수장 역할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아는 인물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이 평가했다. 지난 해 인수한 노키아 휴대폰 사업 부문을 어떻게 MS에 잘 녹여넣을 지에 대해서도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톰슨은 2012년 MS 이사회에 합류한 뒤 스티브 발머를 퇴진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MS 내부에 대화 채널을 확대하고 전략적인 부분에 대한 논의를 좀 더 생산적으로 이끌어내는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빌 게이츠, 기술 고문 맡으면서 나델라 보좌
‘나델라 체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빌 게이츠다. 게이츠가 바뀐 MS 체제에서 공식적으로 맡은 일은 나델라 CEO를 보좌해 기술과 제품 개발과 관련한 조언을 하는 역할이다.
겉보기엔 이사회 회장에서 평이사로 한 발 물러선 형국이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
이번 인사 발표 직후 빌 게이츠는 나델라의 요청에 따라 MS에서 일하는 시간을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여유 시간의 3분의 1 이상을 MS에 할애할 것이란 구체적인 계획까지 밝혔다.
MS도 역시 빌 게이츠가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섰다’(a step up)고 설명하고 있다. 2008년 MS에서 공식 은퇴한 뒤 처음으로 공식 직함을 갖고 경영에 관여하게 됐다는 의미다.
외부 인사들이 대거 MS CEO 직을 고사한 것은 빌 게이츠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MS가 ‘스티브 발머 이후’를 대비하면서 사실상 빌 게이츠의 현역 복귀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
그 때문에 MS CEO를 맡더라도 빌 게이츠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란 우려 때문에 고사했을 것이란 얘기다. 따라서 나델라가 MS CEO 자리에 오르는 데는 빌 게이츠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일부에선 빌 게이츠의 현장 복귀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빌 게이츠가 활동하던 때와 지금은 IT 시장의 기본 문법 자체가 너무나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빌 게이츠는 ‘초보 CEO’ 나델라에겐 든든한 방패막이 역할을 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사회를 비롯한 여러 외풍을 막아주면서 나델라가 CEO로 연착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역시 ‘돌아온 빌 게이츠’가 담당해야 할 역할이다.
◆나델라, 모바일 사업 확충-삼두체제 주도 과제 떠 안아
그렇다고 해서 나델라의 역량이 모자란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델라는 2011년 서버 부문 사장을 맡자 마자 166억 달러였던 매출을 203억 달러로 키워내는 데 성공했다. 나델라가 맡고 있던 서버 부문은 지난 해 7월 조직 개편으로 클라우드 및 엔터프라이즈 부문으로 이름을 바꿨다.
클라우드 사업을 맡기 전에도 빙 검색 엔진을 비롯한 여러 영역에서 능력을 발휘했다. MS의 클라우드 사업 역시 그의 손을 통해 성장했다.
이런 점 때문에 나델라는 MS 내부에선 비즈니스 감각과 기술적 이해를 함께 갖고 있는 드문 경영자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현재 MS가 처한 상황은 녹록한 편은 못된다. 텃밭이던 PC 사업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 지난 해도 출하량이 10% 감소하면서 PC 시장은 ‘끝없는 수렁’ 속을 헤매고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 쪽에서 영향력을 확대한다는 MS의 오랜 열망도 아직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지난 해 인수한 노키아 휴대폰 사업 부문을 MS 조직 내에 잘 녹여넣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빌 게이츠와 존 톰슨이란 두 원로 역시 나델라에겐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 든든한 방패막이가 될 수도 있지만 마음껏 활동하는 덴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결국 나델라는 빌 게이츠, 존 톰슨 등 원로들을 잘 활용하면서 유기적인 삼두 체제를 구축해내야하는 과제도 함께 안고 있다.
‘젊은 CEO’ 나델라는 과연 이런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 올 한해 MS란 거대 함대가 보여줄 모습에 유독 많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김익현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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