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은기자] "안철수? 사람이 깨끗해 보이잖아. 선거 때만 되면 표 구걸하고, 총선·대선 다 져놓고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는 민주당에 대해선 이제 기대가 없어."
안풍(安風·안철수 바람)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광주가 술렁이고 있다. 그간 '민주당 텃밭'으로 불리던 광주가 이제 더 이상 민주당에 대한 '묻지마 지지'를 하지 않겠다고 경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제1야당인 민주당에 대해 오랜 시간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왔던 광주 시민들이 이 '안철수'라는 정치 신인을 주목하는 이유는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민주당의 연이은 패배와 기득권에 안주하는 듯한 모습, 지속되는 계파 정치 등에 대한 실망감이 쌓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여당인 새누리당을 견제하고 국정의 쌍두마차 역할을 해야 할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이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그리고 신념적으로 새누리당보다 더 나을 게 없다는 분노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보수 진영에 포위 당한 민주당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 역시 광주 민심이 요동치는 이유다.
◆'정치신인' 안철수 통한 정치 개혁 기대감 고조
12년간 광주에서 택시운전을 하고 있는 조 모씨(54세)는 안철수 신당을 지지하는 이유로 '깨끗한 정치인 이미지'를 꼽았다.
조씨는 "광주사람들 사이에서 무조건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의식구조가 많이 바뀌고 있다"면서 "민주당을 포함한 기존 국회의원들이 깨끗하지 못한 행동을 많이 했고, 그에 대한 실망감이 커졌다"고 꼬집었다.
그는 "안 의원은 정치 경험이 없긴 하지만 그가 걸어온 길을 보면 깨끗한 정치를 할 것 같다는 기대감이 있다"며 "하지만 무조건 안철수 신당을 지지하진 않을 거다. 안철수 신당과 같이 하는 사람들(기존 정치인들)이 무조건 안철수가 이끄는 길로 따라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고 덧붙였다.
대학생 김수민(21) 씨도 "광주에 '안철수 신드롬'이 불고 있는 이유는 낡은 정치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인 것 같다"면서 "안철수 의원은 새롭게 정치를 하는 분이니 기존 정치인들과 다르지 않겠느냐"고 했다.
김씨는 "향후 선거에서 정당보다는 인물을 보고 결정할 것이지만, 안철수 신당에서 후보가 나온다면 한번 더 눈길을 줄 것 같다"고 관심을 표시했다.
광주 시민들이 안풍에 흔들리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기득권 세력이 된 민주당이 더 이상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기도 하다. 그동안 제 1야당을 향해 무조건적인 믿음과 지지를 보냈지만 손에 잡히는 변화나 결과를 보여주지 못하는데 불만을 표하고 나선 것이다.
직장인 오 모씨(31세)는 "광주에서 민주당의 행태는 새누리당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가끔 화가 난다"면서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안철수 신당이 나타났으니 저울질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1번을 찍을 수는 없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대학생 김현승 (27)씨도 "광주에서 안철수 신당 지지도가 높게 나온다는 것은 민주당에 대한 지지도가 떨어진 것에 대한 반대급부"라고 평가하면서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큰 데 (민주당에서는) 딱히 내세울만한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안철수 의원은 중립적인 정치인이 될 것 같다. 대통령이 되더라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광주의 민심 변화는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서 표출되고 있다. 최근 광주 갤럽 여론조사에서는 아직 베일에 쌓여있는 '안철수 신당'의 지지율이 민주당 지지율의 3배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안철수 새정치, 뭐가 다르겠어?
안철수 신당에 대한 기대가 고조되고 있긴 하지만, 한켠에서는 아직 신당 로드맵이 구체화되지 않은데다 안철수 신당에 몰리는 '인물'들이 새롭지 않다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광주 양동시장에서 만난 50대 상인은 "선거 때만 되면 표 달라고 하는 민주당이나, 호남에서 새정치를 하겠다는 안철수 신당이나 무엇이 다른지 잘 모르겠다"면서 "안철수 신당이 새정치를 하겠다고 했으면 호남이 아니라 야당이 어려움을 겪는 지역을 공략해야 하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줬다는 그는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이후 안 의원이 보여준 행동은 실망스러웠다"며 "그때 좀 잘했으면 다르게 볼 수도 있었을텐데, 여기저기 간보는 것 같은 행동이 보기 싫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50대 상인은 "젋은이들 사이에서 안철수 신당을 지지하는 변화가 있긴 한 것 같은데, 막상 선거를 치러보면 (민주당-안철수신당이) 막상막하로 나올거다. 여전히 60대 이상 어르신들에겐 '그래도 민주당'이라는 인식이 엄청나다"고 말했다.
지역 오피니언 리더들도 민주당에 대한 실망감으로 광주 지역 민심이 요동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안철수 돌풍이 불기에는 '새로운 인물'이 부족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지역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안철수 신당에 합류한 인물 면면을 살펴보면 전혀 새정치와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민주당과 다른 변별력있는 후보가 나와야 '안철수 바람'이 불 수 있는데 지역에서 정치하던 사람들이 옷만 갈아입은 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역은 좁다. 민주당에서 공천 못 받을 것 같아 안철수 신당으로 갈아탄 사람들은 유권자들도 금방 알아본다"면서 "안철수 신당 지지도가 높은 것은 안철수 개인에 대한 신비감 때문인데, 기존 정치와 다르지 않다는 실체가 드러나게 되면 실망감은 오히려 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안철수 신당이 옥석을 가리지 않고 구시대 인물로 선거를 준비한다면 지금과 같은 압도적인 지지도가 거품처럼 빠지는 것은 한순간"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지역 관계자는 "적어도 광주에서는 안철수 열풍이 내년 지방선거까지는 이어질 것"이라면서도 "다만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인지, 돌풍이 될 것인지는 확언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민심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라며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민주당이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하고, 안철수 신당에 대항할 만한 지방선거 전략을 세워 똘똘 뭉치지 않는 이상 광주 민심에 쉽게 기대이긴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 vs 안철수, 명운 건 '호남 대전' 시작됐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광주 표심을 잡기 위한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의 기싸움은 이미 시작됐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 26일 광주를 찾아 "영남과 호남 두 지역은 주민들의 투표권이 박탈된 상황"이라며 "민주주의의 근간인 주민들의 투표권을 박탈하는 것을 구(舊)체제라고 규정하고 이를 해결하는데 엄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호남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새정치를 지지해줄 것으로 호소했다.
안 의원은 또 "저와 새정치추진위원회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을 뛰어넘어서 한국 정치 전체를 바꾸겠다. 대한민국 정치의 창조적 확장과 개편에 호남이 함께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반면 민주당은 안 의원이 야권분열을 조장하고 자신들을 낡은 세력으로 폄훼하고 있다며 맞섰다.
민주당 박혜자 최고위원은 지난 27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안 의원이 광주에서 새정치의 비전이나 정책을 가지고 신당 설명회를 했다면 박수받을 일이나,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안도 없이 말로만 새정치를 외치고 심지어는 민주당을 지역주의 세력으로 규정한 것은 참으로 유감"이라고 공식적으로 비판했다.
민주당 광주시당도 "민주당을 낡은 세력, 기득권 정치로 매도하는 안철수 의원에게 그토록 외치는 새 정치가 과연 무엇인지 묻고 싶다"고 반격에 나섰다.
호남 민심이 과연 안철수 신당을 품을 것인지는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범야권 격전지인 광주가 요동치고,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기싸움은 이미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기존 정치에서 소외감을 느껴온 호남 유권자들이 다가올 6·4 지방선거에서 안 의원의 새정치에 화답해 줄지, 아니면 미워도 다시 한번 '민주당 텃밭' 역할을 이어갈지 향후 야권의 운명이 달라질 전망이다.
이영은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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