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을 조여오는 규제의 칼날과 불황의 늪 속에서 적막이 깊었던 한 해였다. 게임은 한류 콘텐츠 수출의 60%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안방과 정치권의 비난과 각종 악재들을 견뎌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잇따른 구조조정 등 우울한 소식도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는 일. 한국의 게임 업계는 이같은 난제를 극복하며 글로벌로 향하고 있다. 모바일이라는 새물결을 타기 위해서도 꾸준히 밭을 갈고 있다. 조용히 내실을 다져온 한국 게임 업계의 2013년과 글로벌로 더 크게 날개짓 할 2014년을 조명해 본다. |
[강현주기자] "신규 대작요? 몸 사리면서 있는 게임들로 잘 해보자는 생각입니다. 비난이 워낙 많아 사기도 많이 떨어졌고 새로 뭘 해 보기엔 위험이 커서요. 조용히 실속 챙기는 전략으로 바꾸고 내실이 좀 더 다져지면 글로벌 시장으로 날아오르겠다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어요."
2013년 게임 산업에 종사자들이 가장 많이 한 말은 '몸 사리자', '한국 숨막힌다', '이젠 포기할까 싶다',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냐' 등의 자조와 체념류의 것이었다. '나름 해보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는데 시선이 너무 싸늘해 의욕이 없다'는 게 이들이 지적하는 게임업계의 분위기다.
그도 그럴 것이 게임에 대한 나쁜 시선과 비판을 막아내고자 게임업계는 캠페인도 펼치고 각종 선행활동도 하며 다각적인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규제의 칼날은 단호했고 게임에 대한 시선은 차갑기만 했다. 심지어 정치권에서 게임을 '악(惡)'으로까지 규정하자 게임업계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심경을 표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안팎의 부정적인 시선 속에서 외산 게임의 거센 공습은 게임업계를 더욱 힘들게 했다.
2013년 국내 게임업계는 국산 신규 대작은 기근이 지속되고 시장의 대부분을 외산 게임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주도권을 놓치기까지 했다. 구조조정이 이어지면서 공격적인 마케팅이나 왕성한 신작개발 분위기도 가라앉았고 강화되는 규제는 목을 더 조여왔다. 언뜻 보기엔 돌파구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게임 업계는 이처럼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조용히 내실을 다져가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비용 효율을 높이고 실속을 다져가며 글로벌 도약을 묵묵히 준비해 나간다는 것이다.
모바일이라는 새 물결 역시 게임업계가 주목하는 분야다. 온라인 게임 못지 않게 모바일의 성장 가능성은 놀랍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3년은 모바일의 폭발력이 얼마나 큰 지를 제대로 보여준 한해였다. 내년에도 그같은 추세는 사그러들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잠시 어두운 터널을 지난다 해도 '반드시 빛에 도달할 것'이라는 확신을 안고 게임업계는 희망찬 2014년을 준비하고 있다.
◆"집안 사정 안 좋으니 나중에 만납시다"
2013년 게임업계의 그림자는 연초부터 시작된 감원 소식에서부터 짙게 드리워졌다. 뼈아픈 구조조정 탓에 사내 분위기도 초긴장 상태였다. 이른바 '멘붕'이 된 사내 분위기가 어느정도 수습 될 때까지는 몸을 사려야 한다는 분위기도 지배적이었다.
네오위즈게임즈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초에도 감원을 하며 무려 30%의 인력을 줄였다. 일렉트로닉아츠(EA)와의 '피파온라인' 재계약 실패 등 악재가 겹친 탓에 구조조정을 통한 전열정비가 불가피했던 탓이다.
지난 1,2,3분기 연속 적자를 낸 엠게임도 12월부터는 전체 직원의 40% 가량을 감축하는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있다.
'프로야구 매니저', '팡야' 등 인기 장수 게임을 가진 엔트리브소프트도 온라인 게임 시장 침체, 모바일 대응 실패 등으로 지난해 12억5천만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최근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지난 3분기부터 적자로 들어선 드래곤플라이와 조이시티, 3분기 영업이익이 1억원이 채 안되는 컴투스 등도 구조조정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2013년 초반 게임업계를 강타한 구조조정은 비단 조직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비인기 게임들은 줄줄이 서비스 종료를 알리며 사라져 갔다.
네오위즈게임즈는 '트리니티2', '디젤', '피파온라인2' 등을 줄줄이 중단했고, 넷마블도 '좀비온라인', '서유기', '블러디헌터' 등을, NHN엔터테인먼트의 한게임도 '출조낚시왕' 서비스를 종료했다.
넥슨은 웹게임 'SD삼국지' 서비스 중단 소식을 전했으며 KTH의 게임포털 올스타는 '적벽'과 '십이지천2' 서비스 종료를 발표했다.
◆게임이 중독물질? "아 부끄러워"
기업 내부적인 그림자보다 더 어두웠던 것은 게임에 대한 시선이었다. 내부 악재들에 시달리던 게임 업체들은 외부적으로는 게임을 향한 비난의 눈길과 강화되는 규제 속에 다시금 숨죽여야 했다.
게임을 마약, 도박, 알콜과 함께 '4대중독'에 포함해 관리예방하자는 신의진 의원의 법안이 추진되고 일부 국회의원은 게임을 향해 '4대악'이라 비난하며 업계 분위기는 우울하다 못해 험악해졌다.
지난 11월에는 웹보드게임 규제법이 오는 2014년 2월 시행되는 것으로 결정되기도 했다.
불황에 이같은 규제 이슈까지 겹친 상황에서 국내 게임 시장은 외산의 잠식이 두드러져갔다. 국산 신작 기근이 이어지면서 온라인 게임 시장은 외산 게임 '리그오브레전드'에 장기간 40%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내어주고 있다.
국산 게임의 텃밭이었던 모바일 시장도 '캔디크러쉬사가', '레전드오브킹', '진격1942', '퍼즐앤드래곤' 등이 좋은 성적을 거두며 외산잠식 우려를 자아냈다.
신의진 의원이 추진 중인 게임중독법에 대해 한 외국계 게임사 CEO는 "초콜릿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많이 먹으면 해롭다. 그렇다고 초콜릿을 규제할 것인가?"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얼굴이 화끈거린다. 외국 게임사들을 만나면 한국이 게임 중독법을 추진하는 것이 매우 부끄럽고 한국이 게임 강국이란 말이 무색하다"고 토로했다.
게임 산업을 연구하는 한 전문가는 "이런 불황에도 몇몇 게임사들은 돈을 많이 벌었지만 그 수치가 한국 시장에선 의미가 없다"며 "숨막히는 한국서 나가 해외에서 벌어들인 돈이며 이에 한국 시장은 외산한테 다 내어주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돌파구는 글로벌과 모바일 "다시 날자"
"업체들은 중국에서 우리 게임에 보낸 게이머들의 열기가 엄청나 승산이 보입니다."
"우리 야구게임이 대만에선 국민 야구게임이 된 만큼 해외에서 충분히 경쟁력 있다고 자신합니다."
안팎의 악재는 우울하지만 게임업체들은 '이대로는 기가 죽지 않는다'는 기세다. 그동안 쌓아 놓은 경쟁력이 결코 '허당'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외 공략 얘기엔 화색이 돌며 자랑하기 바쁘다.
국내 게임업계가 가장 주목하는 시장은 중국. 올해 국내 게임 업계는 최대 잠재력을 지닌 중국 진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시장에서의 성공을 위한 '밭갈기'는 속속 진행되고 있다.
일본 등 아시아 시장에서의 선전 소식도 줄을 잇는다. 동남아, 유럽 공략도 가속화하고 있다.
이미 온라인 게임으로 해외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업체들도 모바일로도 글로벌 시장을 적극 겨냥하며 영역 확장을 꾀하고 있다. 이어지는 모바일 신작은 게임업체의 바쁜 움직임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도록 한다. 상황이 이렇고 보니 자체 개발 역량을 키우기 위한 조직효율화와 스타트업 대상 투자 활동도 활발하다.
NHN엔터테인먼트의 새 브랜드 '토스트'와 '포코팡'의 성공, CJ E&M 넷마블의 모바일 게임 대박 행진 등은 모바일의 성공 가능성을 충분히 드러낸 사례들이다.
게임 업체들은 2013년이 '규제와 불황의 이중고'를 견뎌내야 하는 해이기도 하지만 글로벌과 모바일로 재도약하는 새로운 출발점이라고도 평가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날개짓은 실로 힘차기도 했다.
게임업계의 한 전문가는 "구조조정 등 내부 조직을 효율화시키며 기초체력을 비축했고 이를 바탕으로 모바일과 글로벌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며 "2014년은 온라인은 정비하고 모바일은 강화하는 '양수겸장' 전략이 주를 이룰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현주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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