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경제 패권을 놓고 전자지갑 플랫폼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참전한 진영은 금융권, 통신업계, 스마트폰 제조업계, 유통업계, 전자결제업계 등 5개 진영이다. 벌써 각자 전자지갑을 출시하고 승기잡기에 돌입했다. 합종연횡을 통해 세 불리기에도 나서고 있다. 이들의 총성 없는 전쟁터를 들여다 본다. [편집자 주]
[이혜경기자] 퀴즈를 하나 풀어보자. 당신이 매일 점심시간에 밥 먹으러 나갈 때 꼭 챙기는 물건은? 아마도 '지갑과 스마트폰'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잠시 기자의 지갑을 들여다보자. 우선 체크카드 2장, 멤버십카드 4장, 은행 보안카드 4장, 증권사 CMA 입출금카드 1장 등 플라스틱 카드가 가득하다. 지갑을 뚱뚱하게 만드는 원흉이다. 약간의 현금도 있고, 식당, 마트 등에서 결제하고 받은 영수증도 몇 장 들었다. 다음에 갖고 오면 10% 깎아준다는 식당 쿠폰도 있다. 아참, 가방 주머니에 따로 넣어둔 신용카드를 까먹을 뻔했다. 대중교통 카드로 자주 쓰기 때문에 케이스까지 씌워 꽂아놨다.
이것저것 들어 있는 뚱뚱한 지갑과 스마트폰. 둘다 무게도 좀 나가고 늘 챙겨야 하니 번거롭다. 그래서 요즘 많은 기업들이 '전자지갑'이라는 것을 개발하는 모양이다. 거두절미하고, '지갑과 스마트폰을 하나로 만들자'는 게 전자지갑의 골자다.
우리가 지금 들고 다니는 지갑으로는 전화 통화나 모바일인터넷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는 결제도 할 수 있고, 각종 신용카드와 멤버십카드 정보도 담을 수 있다. 그러니, 전자지갑이란 결국 지갑은 두고 스마트폰 하나만 들고 다니자는 얘기다. 우리는 과거에 신용카드가 현금을 밀어내는 데 상당히 성과를 거둔 사실을 알고 있다. 과연 스마트폰이 이처럼 실물 지갑을 몰아내는 날이 올 수 있을까.
물론 갈 길은 아직 멀다. 스마트폰 속 전자지갑만으로 사람들이 생활할 수 있으려면 넘어야할 산이 숱해서다. 우선 지갑 속 각종 카드, 현금, 멤버십카드, 쿠폰 같은 것들이 죄다 디지털 정보로 교체돼야 한다.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전자지갑의 디지털 정보만으로 물건을 사고, 포인트 적립이나 할인을 받을 수도 있어야 한다. 나 아닌 다른 이가 쓰지 못하도록 안전장치도 튼튼해야 할 것이다. 아직 이런 부분은 완벽하게 준비되지 못했다.(참고로, 스마트폰 전자지갑을 생활속에서 사용하는 모습이 상상이 안된다면 다음 동영상을 참고하기 바란다. KT 진영에서 만든 '모카' 관련 동영상이다.)
그러나 전자지갑의 시대가 왔을 때 얻게 될 열매의 달콤함은 이런 험한 길을 기업들이 기꺼이 뛰어들도록 유혹한다.
통신망에 연결된 스마트폰 이용자가 전자지갑을 쓰면 연령, 성별, 위치, 구매패턴 등 알토란 같은 정보가 전자지급 운영자 측에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이는 곧 전자지갑을 장악하면 온갖 비즈니스정보의 길목, 그것도 목진지를 잡게 된다는 뜻이다. 이 싸움에서 승자가 된다면 수수료가 됐든 마케팅 정보가 됐든 어떤 식으로든 강력한 힘을 쥐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그러다 보니 한낱 '지갑' 만드는 일이라 할 수 있는 전자지갑 플랫폼 사업에 어마어마한 기업들이 뛰어들고 있다.
일단 출사표를 던진 기업들만 봐도 면면이 쟁쟁하다. 금융권에서는 우선 은행권의 하나은행, 신한은행, 그리고 카드사 중에는 신한카드, 하나SK카드, BC카드가 나섰다. 그리고 KT, SK텔레콤(자회사 SK플래닛), LG유플러스 등 통신서비스업체, 삼성전자 등 스마트폰 제조사, 신세계 등 유통업체 등이 대표적이다.
전자지갑 연관분야는 워낙 다양해 뛰어드는 업체나 산업도 부지기수다. 한 기업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기란 태생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뜻이 맞는 이들과 편을 먹고 세를 확대하는 움직임이 나오는 것은 여기에 기인한다.
재미있는 것은 '적과의 동침'도 불사한다는 것이다. 결제 기술을 놓고 통신사 진영과 금융권 진영이 갈려 싸우기도 하지만, 개별기업을 놓고 보면 파트너 관계를 맺는 식이다. '주머니'라는 충전식 전자지갑을 함께 내놓은 KT와 신한은행, 그리고 협력관계인 KT의 자회사 BC카드와 삼성전자 등 흥미로운 적과의 동침이 목격되고 있다.
참여자들이 많아 복잡해 보일지 모르지만, 전자지갑 플랫폼 전쟁의 관전포인트는 의외로 간단하다.
누가 전자지갑 플랫폼의 표준을 장악하는지를 보면 된다. 아직 이 시장은 초기여서 표준이라 할 만한 강력한 플랫폼은 없다. 다만 숱한 산업의 역사를 돌아볼 때, 기술의 뛰어남 여부보다는 간편하게 많이 사용되는 쪽이 승기를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기억해둘 일이다.
이혜경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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