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기자] "마이크로소프트(MS)가 마침내 PC 시대의 종언을 선언했다."
지난 11일(이하 현지 시간) 단행된 MS의 조직 개편은 1990년대 초반부터 이어진 PC 시대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기가옴이 14일 보도했다.
스티브 발머 MS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조직 개편을 통해 그 동안 제품별로 별도 운영되는 사업 조직을 하나로 통합했다. 회사 조직을 ▲엔지니어링 ▲마케팅 ▲비즈니스 개발 및 에반젤리즘 ▲고급 전략 및 리서치 등으로 개펀한 것. 이들 외에 지원 부서로 ▲재무 ▲인사 ▲법무 ▲최고운영책임자(COO)등이 포진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 조직 개편의 핵심은 엔지니어링 부문 밑에 있는 4개 사업 부문이다. 발머는 그 동안 제품 중심으로 구성돼 있던 사업 부문을 ▲운영체제 ▲애플리케이션 및 서비스 ▲클라우드 및 엔터프라이즈 ▲장비 및 스튜디오 등으로 재구성했다.
발머는 직원들에게 보낸 내부 메모를 통해 "개인과 기업 고객을 위한 기기와 서비스 제품군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는 회사"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인텔, 델 같은 외부 파트너들과 협력하던 모델 대신 자체 생태계 쪽에 방점을 찍겠다는 메시지인 셈이다.
조직 개편으로 탄생한 새로운 MS는 19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PC 시장을 지배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라고 기가옴은 분석했다.
◆발머, 내부 메모에서 'PC' 단 네 번만 언급
PC 시대를 지배할 당시 MS는 '윈텔 듀오'의 또 다른 축이었던 인텔과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휴렛패커드(HP), 델, 레노버 등 PC 제조사업자들도 MS의 전략 수행엔 없어서 안 될 존재였다. 좀 더 적나라하게 얘기하자면 이들의 도움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공급하는 모델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애플이 새롭게 쓴 IT 시장 개론서엔 더 이상 이런 법칙이 적혀 있지 않다. 애플은 폐쇄적이긴 하지만 유기적인 자신들만의 생태계를 무기로 IT 시장의 흐름을 바꿔놨다.
MS는 그 동안 스티브 잡스가 새롭게 쓴 IT 시장 문법서에 '포스트PC'란 제목을 붙였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여전히 PC란 패러다임 속에서 움직인다는 점을 강조해왔던 셈이다.
하지만 스티브 발머가 이번 조직 개편을 단행하면서 직원들에게 보낸 내부 메모에선 그 간의 기조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기가옴이 지적했다.
기가옴에 따르면 발머는 2천700자 분량의 내부 메모에서 'PC'란 단어를 단 네 번 언급했다. 그나마 그 중 세 번은 '역사 속 PC 시대'를 언급하는 데 할애됐다. 사실상 PC란 키워드를 포기한 셈이다.
반면 애플의 IT 문법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장치(devices)'는 18번이나 언급됐다고 기가옴이 전했다. 그 뿐 아니다. 그 중 대부분은 '전향적인 진술'을 하는 데 사용됐다.
◆18년 전 '인터넷의 공습' 경고한 빌 게이츠와 오버랩
여기서 잠시 18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보자. 도스와 윈도를 앞세워 초기 PC 시대를 지배했던 MS는 1995년 무렵 위기 상황으로 내몰렸다. 넷스케이프란 신생 기업을 중심으로 한 인터넷 바람 때문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책상 위에 PC를' 놓도록 한다는 비전을 설파했던 빌 게이츠 당시 MS CEO 역시 위기의식에 사로잡혔다. 당시 빌 게이츠는 직원들에게 경각심을 고취시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인터넷은 거대한 흐름이다. (지금까지의) 법칙을 바꾸고 있다. 인터넷은 엄청난 위기이자, 엄청난 기회다."
빌 게이츠가 이런 메시지와 함께 선보인 제품이 인터넷 익스플로러였다. '독점적 지위 남용' 문제로 이후 유죄 판결을 받긴 했지만 빌 게이츠는 어쨌든 '인터넷'이란 새로운 흐름에 연착륙하는 데 성공했다.
18년 만에 비슷한 상황에 처한 스티브 발머가 이번 조직 개편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을까? 당시와 지금의 공통점은 CEO가 대대적인 변화 메시지를 던졌다는 점이다.
하지만 다른 점도 적지 않다. 가장 큰 차이점은 선장이 빌 게이츠에서 스티브 발머로 바뀌었다는 점. 그리고 또 다른 차이는 빌 게이츠가 '조기 경보'를 한 반면 스티브 발머는 조금 시간을 끈 뒤 경보를 발령했다는 점이다. 그 차이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 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다만 기가옴의 분석처럼 한 가지는 분명하게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
MS가 더 이상 인텔의 '컴퓨팅 파워'와 델의 PC 제조 능력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대대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건 30년 이상 이어져 온 PC 시대가 종말을 고했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김익현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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