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리기자] 초등학교 6학년 A양은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했다. 게임에서 진 사람의 벌칙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것이었다. 재미로 게임에 참여한 A양은 벌칙을 거절했다. 그 후 학교에는 몇몇 아이들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폈다는 소문이 돌았고 친구들은 A양이 소문을 냈다며 따돌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A양의 카카오스토리와 미니홈피에 A양을 욕하는 글을 공개적으로 올렸고 '착한척하지마라' '이 세상에서 없어져버려라' 등의 글들도 서슴치 않았다. 나중에는 A양을 잘 모르는 아이들까지도 동참해 '떼카'를 보내며 A양을 괴롭혔다. A양은 3개월간 이들의 폭언과 괴롭힘에 시달리면서 '친구들 때문에 죽고 싶다'고 호소했다.
인터넷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정보사회의 대표적 역기능인 '사이버불링' 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스마트폰 보급 확산에 따라 모바일을 통해 24시간 괴롭힘을 당하고 개인정보가 무차별로 유포되는 피해 사례도 빈번하게 속출하고 있다.
사이버불링이란 안티카페, SNS, 문자메시지, 카카오톡 등 모바일메신저를 이용해 굴욕 사진, 악성댓글, 허위사실 유포, 신상정보 등을 노출해 특정인을 집단으로 괴롭히는 것을 말한다.
사이버불링은 직접 대면하며 이뤄지는 괴롭힘이 아니라 인터넷·모바일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24시간 이뤄지고 확산이 빠르다는 특징이 있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안티카페, 또는 트위터·페이스북 비밀그룹을 개설해 괴롭힘 대상을 비하하거나 약점을 잡아 인터넷 게시판에 퍼뜨리기, 혹은 카카오톡 등 모바일메신저에서 수십명이 그룹채팅 방을 만들어 한 명에게 욕을 퍼붓는 '떼카', 성매매 사이트 등 불법·음란 사이트에 피해 학생의 신상정보를 노출시키는 등의 경우가 있다.
실제로 한국정보화진흥원의 2011년 12월 조사에 따르면 초·중·고교생 5명 중 1명 이상이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통해 욕설과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사이버불링으로 인한 피해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않는 속성을 감안하면 이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피해를 받고 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안티카페'는 우리나라에서만 존재하는 사이버불링의 대표적 사례로, 따돌림 피해자를 괴롭히는 안티카페도 1천여 곳이 넘는 실정이다. 이 외에 메신저 집단 차단, 일촌·친구 맺기 집단 거부 등도 대표적인 사이버불링의 경우다.
더욱 큰 문제는 청소년들이 이러한 사이버불링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의 사이버불링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10명 중 3명이 사이버불링을 폭력이 아니라 학교의 일상적인 문화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청소년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인터넷소설의 소재는 과거 청춘 로맨스물에서 지금은 왕따·일진 등으로 바뀐지 오래다. 소설에는 일진·왕따·얼짱·자살 등의 문화가 그대로 반영돼있다.
청소년들이 인터넷이나 모바일 메신저에서 욕설을 하거나 악성댓글을 다는 행위에 둔감해지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해외에서도 사이버불링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관련 법안이 마련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50개주 중 49개주가 따돌림과 관련된 법안을 가지고 있고 14개주는 사이버불링에 관한 내용을 따돌림 법안에 포함시키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해 3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사이버불링이 처음으로 학교폭력의 유형에 포함됐다.
전문가들은 올바른 인터넷·모바일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선 법 제도 뿐만 아니라 건전한 문화 조성과 윤리의식 교육을 통한 예방이 최선이라고 조언한다.
국회입법조사처 조희정 박사는 보고서를 통해 "사이버불링은 정보사회의 발전과 함께 나타난 역기능으로서 앞으로도 더욱 확대되고 피해양상도 더욱 다양해질 것"이라며 "이에 대한 지속적이로 철저한 현황파악과 효율적인 대응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많은 청소년 피해자들이 이후의 사회생활에서도 부적응 상태에 직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이버 불링은 오프라인상의 왕따나 괴롭힘보다 밝혀내기 힘들정도로 은밀하게 진행된다"면서 "법과 제도가 미치지 못하는 영역에서의 피해방지를 위한 사회적 관심과 교육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영리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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