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성기자] 박근혜 정부의 '상징'인 미래창조과학부가 정보통신기술(ICT) 총괄부처로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로 이관하기로 한 ICT 관련 기능중 상당수가 각 부처의 주장에 따라 그대로 해당 부처에 존치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래부를 둘러싼 정부조직 개편 논의는 '방송이슈'에만 매몰된 정략 다툼으로 인해 정작 ICT 총괄을 위한 정책 이관 문제는 뒷전에 밀리는 모습이다.
13일 국회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미래부가 흩어져 있던 ICT 정책을 한 곳으로 모아 새 정부가 표방하는 '창조경제'의 원동력으로 삼겠다던 본래 취지와는 영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ICT 통합?…오히려 5개 부처로 정책 흩어져
문제가 되는 부분은 한두 개가 아니다. 먼저 인수위는 미래부에 ICT 정책을 모두 모으기로 하고 지식경제부로부터 소프트웨어 정책을 미래부에 이관시키겠다고 발표했었다.
하지만 지경부는 세부 조직개편안을 조율하면서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분야를 남겨두기로 했다. 자동차나 선박, PC 등에 내장형으로 탑재되는 소프트웨어는 ICT라기보다는 '산업기술' 그 자체이므로 산업부서에서 담당하는 것이 옳다는 논리에서다.
또, 행정안전부는 개인정보보호 정책 등 국가정보화에 관련한 정책을 미래부로 이관하기로 했지만 정작 개인정보보호 기능을 '안전'을 이유로 남겨뒀다.
문화체육관광부도 디지털콘텐츠 분야를 미래부로 이관시키기로 했지만 게임 분야는 문화부에 존치시키기로 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분통이 터질 노릇'이라며 울분을 감추지 않고 있다.
국내 소프트웨어계 '대부'로 불리는 김진형 한국과학기술원(KAIST, 카이스트) 교수는 현 조직개편안에 대해 "전담부처로 통합하기는커녕 기존 4개부처보다 오히려 더 늘어난, 미래부까지 포함한 5개 부처로 ICT 정책이 쪼개진 형국"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지경부나 행안부, 문화부 등에 핵심 정책 기능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미래부가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문형남 숙명여대 교수도 "(미래부가)전담부처가 아니기 때문에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릴 것이라는 우려를 떨치기 힘든 상황인데, 그나마도 모든 정책이 옮겨오질 않고 4개 부처에 그대로 존치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탄했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이같은 부분을 지적하며 현 정부조직개편 방향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권은희 의원은 "소프트웨어는 임베디드라든지, 일반 PC용이라든지, 모바일용 등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다. 소프트웨어는 그냥 소프트웨어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덩어리인 소프트웨어를 임베디드용이라고 산업 분야에 남기는 것은 말이 되질 않는다는 얘기다.
권 의원은 "임베디드 소프트웨어가 자동차나 선박, 심지어 수저를 만드는데까지 모두 적용돼 산업과 밀접하다 하더라도, 이 분야가 성장 발전하는 과정은 소프트웨어 그 자체이고 이는 미래부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못박았다.
그는 이어 "지경부가 이같은 역할과 기능을 모를 리 없을텐데도 관련 분야 존치를 주장하는 것은 부처 이기주의, 밥그릇 지키기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강하게 비판했다.
이는 미래부에 대한 이견을 제시하고 있는 야당, 민주통합당 의원에게서도 나오는 의견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야당 간사인 민주통합당 유승희 의원은 "ICT 정책이 제대로 통합되지 않고 있다. 당초 안인 지경부, 행안부 정책 이관이 반쪽짜리로 전락한 상황"이라면서 "그럼에도 정부는 방송정책만큼은 온전히 독임부처 내로 이관하려고 하니 그 의도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라고 지적했다.
민주통합당 이상민 의원은 "(미래부는) 부처별 정책 이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속빈 강정'이 됐다"고 꼬집었다.
◆'방송'에 매몰돼 ICT는 뒷전
그럼에도 개정 법률을 처리하면서 이를 감시해야 할 정치권은 자신들의 '정략적 판단'에 따라 움직이면서 '통합 콘트롤타워'를 원하는 업계 염원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미래부 조직개편안 통과에 가장 큰 걸림돌은 '방송 정책'이다.
'합의제' 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 및 통신 관련 정책을 담당했었는데 합의제 기구에선 효율성이 떨어지니 '진흥'을 하려면 미래부로 해당 기능을 이관해야 한다는 것이 인수위의 방침.
그러나 방송정책까지 미래부로 가져가겠다는 방침이 구체화되면서 야당이 분명한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방송정책을 독임부처에서 관할하면 방송의 공공성이 훼손되고 정권 독립적인 정책을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란 것이 이유다.
방송 정책의 미래부 이관에 대한 것은 논란의 소지가 큰 것이 맞다.
하지만 정작 방송분야보다 규모도 크고 ICT 생태계 조성 및 '창조경제' 창출을 담당할 ICT 분야에 대해선 문방위 여야 의원 모두 입을 닫고 있다.
지난 12일 정부조직개편 관련 열린 국회 문방위 전체회의는 "조직개편안을 인수위원이 직접 나와 설명하라"며 여야간 자존심 싸움으로 3시간을 허비하더니 남은 2시간은 방송정책 질의로 일관했다. ICT 분야 정책에 대한 질의는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방송 정책 이관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방송 정책이 자칫 '여론 형성'이라는, 정치권의 최우선 관심사를 건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야당 입장에선 방송 정책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차관급' 자리를 두개나 확보한 방통위 위상을 쉽게 내려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물론 여당 역시 ICT 정책을 포괄하는 것에는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굳이 방통위의 방송정책을 야당과 척을 지면서까지 부득불 미래부로 이관하려 하는 것은 모두 '의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김진형 KAIST 교수는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본질이 무엇인지 부디 정치권이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우리 IT인들은 지금 형세를 보며 '또 5년을 기다려야겠구나' 한탄을 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강은성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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