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회장, 계열사 CEO인사 개입 안해

[정기수기자] SK그룹(회장 최태원)이 그동안 최태원 그룹 회장과 지주회사에 집중됐던 권한을 각 계열사와 최고경영자(CEO)에 이관, '100% 계열사 자율책임경영'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그룹 경영체제를 도입한다.

이에 따라 특히, CEO 인사를 포함한 경영에 관한 전반적인 의사결정도 각 계열사 이사회로 이관된다.

SK는 26일 오후 서울 광장동 아카디아 연수원에서 주요 관계사 최고경영자(CEO)와 사외이사 등이 참여한 가운데 '2차 CEO 세미나'를 열고, 지난 9월부터 논의해 온 그룹의 새로운 운영방식인 '따로 또 같이 3.0' 공식 도입을 최종적으로 논의한다고 밝혔다.

이날 도입이 결정되면 세부 실행방안 확정 등을 거쳐 이르면 내년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이날 세미나를 통해 SK그룹 각 관계사는 기업가치 300조원 규모의 글로벌 성장을 추진하기 위한 '따로 또 같이 3.0'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논의하고, 최근까지 계속된 각 계열사의 이사회 사전 승인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실행안인 '상호 협력방안 실행을 위한 협약서'를 채택할 예정이다.

SK의 '따로 또 같이 3.0'은 100% 관계사별 자율책임경영을 전제로, 관계사가 자사 이익을 기준으로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위원회를 중심으로 그룹 차원의 글로벌 공동 성장을 추진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이 안이 확정되면 각 사의 CEO와 이사회는 자사 경영에 대해 전적으로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게 된다.

그 동안은 주요 현안에 대해 그룹 역할을 해 온 지주회사와 협의를 해왔으나, 앞으로는 이사회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의사결정을 하게 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지주회사인 SK㈜는 각 관계사의 100% 자율적인 독립경영을 위해 각 관계사의 의사결정에 일체 관여하지 않고, 자체의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업무 중심으로 업무 영역이 재편된다.

다만, 그간 진행해 오던 업무 가운데 사업 포트폴리오 관점의 경영실적 평가는 계속 수행하게 된다.

특히, 지주회사의 큰 역할 중 하나였던 각 관계사 CEO와 주요 임원에 대한 인사 검토도 각 관계사들이 참여하는 위원회에 넘기게 된다.

이에 따라 앞으로 CEO 평가 등의 인사는 각 위원회에서 평가해 인재육성위원회가 검토해 각 계열사의 이사회에 전달, 각 관계사 이사회가 최종 확정하는 구조로 완전히 바뀐다.

'따로 또 같이 3.0'이라는 방식에서 '따로'에 해당하는 이 같은 내용은 최 회장이 관계사의 경영 의사결정과 CEO 인사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아울러 SK는 그룹 운영의 객관적인 장점만을 살리는 '또 같이' 전략도 대폭 강화, 그룹 차원의 시너지 창출 등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관계사 CEO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각 위원회가 전담토록 했다.

이를 위해 SK그룹은 이번 세미나에서 2007년 이후 운영해 온 전략위원회, 글로벌성장위원회 및 동반성장위원회 등 3개 위원회 외에 지난 5월부터 시험 운영해 온 인재육성위원회, 윤리경영위원회, 커뮤니케이션위원회 등의 3개 위원회를 추가할 예정이다.

SK그룹 관계자는 "각 관계사의 위원회 참가 여부는 100% 자사의 이익을 기준으로 참여를 결정하게 된다"며 "이번 세미나에서 각 관계사 이사회 별로 참가하게 될 위원회가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2~3개의 위원회에 가입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SK의 이번 경영체제 개편을 놓고 일각에서는 다음달 예정된 최 회장의 1심 선고 판결을 의식한 사전작업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22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최 회장은 검찰 측으로부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4년을 구형받았다. 최 회장이 구형받은 징역 4년은 300억원 이상 횡령·배임 혐의 피고인에게 선고될 수 있는 '최저형량'이다.

이에 따라 징역 4년의 형량은 최종 판결에서 집행유예로 형이 낮춰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번 경영체제 개편이 재판부의 판결을 다분히 의식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최 회장 등에 대한 1심 판결은 다음달 28일 오후 2시에 선고될 예정이다.

또 그동안 SK는 90여개가 넘는 계열사를 운영해 이른바 대기업의 무분별한 '문어발식 사업확장'이라는 비난을 받아온 바 있다.

이에 따라 사실상 그룹의 계열사 축소를 시사하는 이번 경영체제 개편안을 통해 SK가 이 같은 논란을 종식하는 것은 물론, 최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대두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이슈에도 긍정적인 방점을 찍기 위한 시도라는 해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SK 측은 기업 운영 체제 개편, 계열사 줄이기 등의 일련의 사안들은 장기간에 걸쳐 진행돼 온 사업플랜의 일환일 뿐, 최 회장 공판 결과 등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