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경기자] 한때 우리 전자산업을 저만치 앞서갔던 일본의 전자산업이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소니, 파나소닉, 샤프 등 굴지의 IT기업이던 이들 일본가전 빅3는 이미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따라올 수 없는 수준으로 뒤쳐진 상태다. 1년 전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디지털 패전'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쇠락해가는 자국의 전자산업을 분석하기도 했다.
IBK투자증권은 6일 '일본 전자산업의 실패' 보고서에서 우리 전자산업이 특히 얻어야 할 교훈은 '신규 경쟁자들을 무시한 지나친 자신감'이라고 지적했다.
이승우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일본 전자업체들의 실패 원인 중 외부요인으로는 엔고로 인한 가격 경쟁력 상실, 작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로 인한 부품 공급망 붕괴 등을 꼽았다. 내부 요인으로는 갈라파고스 신드롬과 생산자 중심 사고방식을 들었다.
이 애널리스트는 "소니, 파나소닉, 샤프와 달리, 히타치, 미쓰비시, 도시바 등은 어려움 속에서도 흑자구조를 이어가고 있다"며 가전 빅3의 몰락에는 내부 요인 문제가 적지 않다고 봤다.
갈라파고스 신드롬은 90년대 이후 일본의 제조업, 특히 IT산업이 일본시장에만 주력하기를 고집해 세계로부터 고립된 현상을 뜻한다. 일본 소비자 취향만 맞추다 보니 세계시장의 욕구와 국제 표준과 동떨어져 세계시장 진출이 막히고, 나아가 일본 내수시장마저 위기에 처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를 남태평양의 갈라파고스 제도가 육지에서 떨어져 고유한 생태계가 만들어진 것에 빗댄 말이다.
생산자 중심 사고방식은 지나친 품질에 대한 집착을 의미한다. 일본업체들의 장인정신은 부품 하나에도 높은 퀄리티와 내구성을 요구해왔다. 이는 품질개선이 어려운 과거 아날로그 시대에는 통했으나, 최근의 디지털화된 글로벌 소비패턴과는 잘 맞지 않았다고 이 애널리스트는 설명했다.
디지털시대에는 불과 몇 개월 사이에 품질과 성능이 2~3배 개선되며, 일반 소비자들의 소비패턴도 빠르게 바뀐다. 하지만 일본이 자랑하는 '10년 이상 쓸 수 있는 전자제품'이란 특징은 지금은 장점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 애널리스트는 "일본 전자업체들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이 아니라, 엔지니어들이 만들고 싶은 제품을 만들어 오다 오늘날 글로벌 시장에서 뒤쳐지게 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일본의 실패 원인으로 갈라파고스 신드롬과 과도한 장인정신을 지적했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신규 경쟁자들을 무시한 지난친 자신감"이라고 강조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업체들은 한국 업체들이 자신들의 경쟁자가 될 수 없다며 적잖이 무시했는데, 국내 업체들이 이 같은 상황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어 "국내 업체들도 떠오르고 있는 중국의 가전업체와 핸드폰 업체들을 은근히 얕잡아 보는 듯한 태도가 있는 것 같다"며 "지나친 자신감은 분명 화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혜경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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