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성기자] 클라우드 기술에 관한 한 세계적인 명성을 갖춘 글로벌 소프트웨어 업체 임원들은 한국의 통신사 KT를 찾아보고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고객 수만 1천800만명에 육박하고, 가입 회선수로는 3천600만개가 넘는 KT의 막대한 트랜잭션(중앙 시스템의 데이터 처리 과정)이 '클라우드 시스템'으로 구현돼 있는 것은 글로벌 기업인 그들도 처음 보기 때문이다.
매번 '클라우드를 적용하면 기업의 생산성을 대폭 늘릴 수 있다. 투자비는 절감된다. 업무 처리는 더욱 빠를 것이다'라고 강조해왔지만, 이렇게 크고 정교하고 핵심적인 시스템에 적용되는 것은 본 사례가 없었다.
더욱 놀란 것은 '대기업 핵심 시스템은 메인프레임(IBM의 초대형 최고급 서버시스템)이나 유닉스(메인프레임을 대체하는 고급형 범용 서버시스템)로만 구축한다'는 것이 불문율이었지만 KT의 클라우드는 저렴하고 구하기 쉬운 x86(일반 범용 서버시스템) 기반으로 구축됐다는 점이었다.
이 소프트웨어 업체 임원들 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통신회사 임원들도 앞다퉈 KT를 찾아왔다. 'x86 기반의 클라우드 시스템을 통신사에 적용했다'는 기이한 일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클라우드, KT 전산 DNA를 바꾸다
지난 2009년 KT는 이동통신 자회사 KTF를 전격 합병했다. 유무선 통합 기업이 출범한 셈인데, 합병후 가장 시급한 과제는 두개로 분리돼 있는 각종 사내 시스템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었다.
당시 KT는 보유 서버의 수량만 해도 1만3천대 이상이었으며, 각종 데이터 처리 규모도 전세계에서 꼽힐 만큼 대형 시스템을 자랑했다. 그럼에도 매년 5%정도의 서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었으며 수백억 규모의 IT 인프라 관련 투자도 이루어 지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서버들은 전국의 데이터센터 네트워크와 연결돼 있어, 자칫 잘못 건드리면 통신망 장애 등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
그러나 KT는 전산시스템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기존 전산시스템과는 완전히 체질을 바꾼 새로운 시스템으로 탈바꿈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당시 시스템이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안정성과 성능을 내기 위해 투입해야 하는 비용이 너무 많았고 효율성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대당 수십억원에 달하는 고가의 유닉스 서버 환경에 최고급 저장장치(스토리지)를 사용하는 등 고사양의 인프라를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죠. 이같은 방식은 비단 우리 KT 뿐만 아니라 대형 시스템을 운영하는 전세계 모든 전산담당자들의 일반적인 방식입니다. 특히 초기 가입자를 예측할 수 없는 통신서비스 특성상 사업부서의 입장에서는 보험에 가까운 투자였죠."
KT의 비싸고 꽉 짜여진 시스템을 x86 기반의 클라우드로 탈바꿈시켜 전세계 IT인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든 주인공 중의 한명인 클라우드추진본부 윤동식 상무는 당시 일을 이렇게 회상했다.
윤 상무는 "당시 KT가 보유한 서버의 CPU 활용률 등을 분석해본 결과 서버 가동률이 최대치일 때도 평균 58.3% 정도였고, 평상시 가동률은 7.7% 수준에 불과했다"면서 "매년 수백억의 IT 인프라 투자가 이루어 지는 것에 비해 그 효율성은 매우 낮은 수준이었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KT는 데이터센터를 효율화하고 유연한 투자 및 운영을 위해 '사내IT 인프라 전반에 걸쳐 클라우드 환경 기반으로의 전환한다'는 커다란 목표를 세웠다.
합병을 추진한 경영진이 이같은 클라우드 전환에 적극 찬성하면서 별도 조직인 '클라우드추진본부'도 발족하고, 사내외 명망있는 인재들을 속속 본부로 집결 시켰다.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중앙 핵심 시스템의 클라우드 기술 적용'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전례없어 시행착오 '쓴 맛'도 여러번
취지도 좋았고 의지도 있었다. 경영진의 전폭적인 지원과 구성원들의 '해보자'는 의욕도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데는 그만큼 위험요소도 많았다. 클라우드 기술이라는 것 자체가 '신생' 기술 취급을 받을 정도로 국내외를 통털어 깊이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 더구나 이 기술을 적용한 시스템이라야 기업의 웹서버 시스템 등 소위 '망가져도 큰 탈 없는' 가벼운 시스템에 적용되다보니 참고할 수 있는 사례조차 전무했다.
"유닉스 기반으로 설계된 기존 핵심시스템 인프라와 구성이 많이 달랐고 당시 국내에는 클라우드 아키텍처 설계 및 구축의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 과정 속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습니다."
윤 상무는 지난 3년여간의 고통을 이 한마디로 표현했다.
가까스로 시스템 설계를 마치고 실제 운영을 하려 해도 초기에는 클라우드 솔루션 자체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보니 관리 기능 부족과 운영 미숙이 속속 발견됐다. 예상했던 것보다 시스템 성능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예기치 못했던 과부하가 일어나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 부서 시스템'이라는 틀을 깨고 공유와 공동 활용을 주 목적으로 하는 클라우드 시스템의 특성을 전 KT 그룹의 조직들이 받아들여야 했지만 '사람의 인식구조'라는 것이 한번에 바뀔리 없었다.
윤 상무는 "실제로 전세계를 통털어 사내에 전면적으로 클라우드 환경을 적용한 조직 형태가 없었다"면서 "KT는 단순히 클라우드라는 기술을 전산시스템에 도입한 것이 아니라 이의 적용으로 회사 조직구조와 일하는 형태 등 'IT 거버넌스' 자체를 만들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이해관계자들과 수많은 협의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수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KT 사내 클라우드의 모습은 초기 가상화 적용 단계를 넘어서 점차 클라우드 지향적인 아키텍처로 변모하게 되었다는 것이 윤 상무의 설명이다.
클라우드 하드웨어 인프라는 단일 형태의 표준 아키텍처 구조를 만들고 오픈소스(리눅스) 기반의 관리 기능을 가상화 기반 인프라부터 점차적으로 적용했다.
아울러 2년간의 시스템 구축 및 운영 과정을 통해 서비스 중요도와 요구 수준에 적합하도록 아키텍처를 구조화 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프로세스도 마련했다.
◆올레닷컴부터 전사 ERP까지 클라우드 변모
클라우드라는 '뜬구름' 같던 개념을 KT에 실체화하기 시작한 2010년, 윤 상무는 그 첫 열매로 '올레닷컴' 홈페이지를 오픈했다.
외적인 형태는 단순한 '기업 홈페이지 리뉴얼'이었지만 그 뒷단에는 기존 유선 서비스 쿡과 무선서비스 쇼를 올레 사이트로 통합하고 모든 KT의 상품 및 서비스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관문을 구성한 것이다.
그 모든 구성을 뒷받침 하는 것은 새롭게 구축된 클라우드 시스템이었다.
올레닷컴이 클라우드로 성공적으로 전환, 오픈한 뒤 윤 상무는 더욱 용기를 얻어 기존 인프라를 클라우드 체계로 전환한 시스템을 속속 오픈했다.
웹서버나 개발서버, 단순 업무용 시스템과 같은 '민감도'가 떨어지는 시스템부터 조심스럽게 '시범사업'으로 시작해 확신을 얻은 후 기업의 가장 핵심적인 업무시스템 중 하나인 ERP(전사적자원관리) 시스템을 클라우드로 일거에 전환했다.
KT는 현재 179개 서비스, 3천73대 서버를 클라우드 환경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 중 94개 서비스, 1천154개 서버가 실제 KT 가입자들에게 제공하는 상용 시스템이다.
"KT가 사내에 구축한 클라우드 인프라 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아니, 최고라는 말보다는 아예 이런 일을 한 기업이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군요. 우리에게 클라우드 솔루션을 공급한 그 기업조차, 자신들의 솔루션이 KT와 같은 이렇게 큰 트랜잭션을 처리하는 핵심 솔루션으로 적용된 것이 처음이었으니까요."
윤 상무의 얼굴은 자랑스러움으로 넘쳐난다. 3천대 이상 규모의 시스템을 클라우드로 구축한 사례는 국내에는 KT가 유일하며, 세계 통신회사 중에서도 베스트 수준이라는 게 윤 상무의 설명이다.
특히 다른 대형 클라우드 사례라 해봤자 대부분 기업 핵심 시스템이 아닌 경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KT가 이를 '내재화'함으로써 얻은 것은 단순히 '비용절감'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윤 상무는 설명했다.
"서비스 개발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가장 큽니다. 기존에는 전사 모든 서비스가 유닉스 기반 대형 서버에서만 개발하는 것으로 생각하던 것이 이제는 x86 기반 오픈소스 중심의 개발로 전환됐습니다."
KT가 유닉스 장비 대신 x86을 사용한 결과를 경제적인 이익으로 계산해보면, 전산투자비용만 80% 가량을 절감할 수 있고 서버 유지보수 등의 운영비용도 60% 이상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 윤 상무의 설명이다.
아울러 신규 서비스에 클라우드 시스템을 적용하면서 전산 시스템의 표준화를 자연적으로 유도할 수 있었다.
클라우드 이전의 환경에서는 서비스 개별적으로 각각 네트워크나 방화벽, 부하분산 시스템을 구축했으나, 클라우드 환경에서는 공용 장비로 표준화된 환경에서 서비스를 구축하고 서비스간의 공통장비를 공유하는 개념으로 변모할 수 있었다.
◆'내 경험' 바탕으로 클라우드 컨설팅 나서
이를 바탕으로 KT는 다른 기업의 '클라우드 전환'을 '컨설팅' 해 줄 수 있는 역량도 확보하게 됐다. KT는 스스로의 경험을 밑천 삼아 적극적으로 클라우드 컨설팅 시장을 공략한다는 방침이다.
윤 상무는 "KT가 독자적으로 사내 시스템을 클라우드 환경으로 전환하는 과정 속에서 수 많은 난관에 봉착하게 됐는데,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며 쌓은 경험은 실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식이 축적된 것"이라면서 "국내외 이와 같은 경험을 보유한 회사는 없기에 이를 고객들에게 전수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KT는 SLA(서비스관리규준) 기반의 아키텍처 표준을 개발하고 적극적으로 상용화 하고 있다.
"클라우드라는 것, 아직도 뜬구름 같다고 생각하는 기업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하지만 KT는 클라우드를 실체로 만들었고, '내 것'으로 현실화 시켰습니다. 이제 통신회사의 가장 핵심인 빌링(결제)시스템에 클라우드를 적용하고 있는데 그 결과도 곧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윤 상무는 KT의 클라우드가 현재 '완성형'이 아닌 '발전형'이라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강은성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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