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기자] '세기의 특허 대결'이 마침내 시작된다. 이번 대결 승자에겐 모바일 시장 최강자란 월계관이 기다리고 있다. 반면 패하는 쪽은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 만큼 사활을 건 한판 승부가 예상된다.
삼성과 애플이 오는 3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새너제이 법원에서 특허 침해 본안 소송을 시작한다. 지난 2011년 4월15일 애플이 삼성을 제소한 지 473일 , 정확하게 1년 108일만이다.
현재 삼성과 애플은 9개국에서 50여건이 넘는 소송을 벌이고 있다. 유럽과 오스트레일리아 지역에선 승부가 난 곳도 있다.
하지만 그간의 각축전은 이번 소송의 전초전에 불과하다. 규모나 파괴력 면에서 미국 시장에 비견될만한 곳은 없기 때문이다. 이번 소송에서 승리하는 쪽이 '스마트폰 세계 1위' 타이틀을 가져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애플 vs 삼성' 문제된 특허 무엇인가
이번 특허전쟁은 애플의 선제 공격으로 시작됐다. 애플은 지난 2011년 4월15일 삼성을 전격 제소했다. 갤럭시S 등이 자사 디자인과 특허를 침해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선제 공격을 당한 삼성도 그냥 있지 않았다. 일주일 만에 애플을 맞제소했다.
삼성전자는 애플이 자사 통신 기술 특허를 침해했다며 지난 2011년 4월22일 한국 서울지방법원과 일본 도쿄 법원, 독일 만하임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두 회사는 이번 소송에서 확연하게 다른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애플은 주로 아이폰의 고유한 디자인과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삼성은 통신 기술 특허 쪽을 무기로 내세우고 있다.
애플은 삼성이 광범위한 디자인 특허와 사용자인터페이스(UI)를 베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곡선 모서리, 홈 버튼 등 하드웨어적 디자인 요소뿐 아니라 ▲밀어서 잠금해제 ▲포토플리킹(사진을 손으로 넘기는 기술) ▲바운싱(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기는 기술) 등 UI적 요소가 애플이 내세우는 주요 특허다.
삼성은 데이터분할전송, 전력제어, 전송효율, 무선데이터통신 등 통신 관련 특허를 애플이 침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정에서 주로 다뤄지고 있는 특허는 ▲터보인코딩 ▲블록 인터리빙 등 제어정보신호의 전송 오류를 줄이기 위한 신호 암호화 기술이다.
◆시작 전부터 치열한 공방…본 대결은 이제부터
본안 소송이 시작되기도 전에 두 회사는 치열한 설전을 벌이고 있다.
애플은 삼성이 고의로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디자인을 베꼈다는 점을 적극 부각시키고 있다. 안드로이드 공급 업체인 구글조차 삼성 제품이 애플 아이폰, 아이패드와 지나치게 유사하다고 경고했다는 얘기도 흘리고 있다.
반면 삼성은 애플 아이폰 디자인이 독창적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삼성은 이 같은 주장의 근거로 지난 2006년 소니 제품 디자이너인 아시다 다카하시 등이 비즈니스위크와 인터뷰한 기사를 제시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소니 디자이너들은 "소니의 정신은 복제품이 아니라 독창적인 제품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티브 잡스 당시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많은 애플 경영진들이 이 잡지 기사를 회람하면서 아이폰의 원형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애플은 곧바로 법원에 이 증거를 채택해선 안 된다는 요청을 했다.
소송을 앞둔 삼성에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이메일 삭제' 건이다. 캘리포니아법원의 폴 그레월 연방판사가 지난 25일 삼성이 "법원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이메일 증거자료를 제대로 보존하지 못했다는 애플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 그레월 판사는 소송을 담당하고 있는 루시 고 판사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배심원들에게 통보했다.
반면 애플 측은 아이폰이 독창적인 제품이 아니란 삼성의 주장이 부담스럽다. 이런 설득이 배심원들에게 먹혀 들어갈 경우 자신들에게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애플 측이 서둘러 "삼성이 제출한 비즈니스위크 기사는 증거로 채택해선 안 된다"고 요청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번 재판이 왜 중요한가
현재 삼성과 애플은 9개국에서 50여 건의 소송을 벌이고 있다. 가히 세계 전쟁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새너제이 법원에서 열리는 이번 소송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만큼 미국 시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단 시장 규모 면에서 미국은 유럽 일부 국가나 오스트레일리아와 비교가 안 된다. 최근 발표된 IDC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해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출하량 기준) 21.3%로 1위를 차지했다. 올해는 중국에 추월될 것이란 전망이 있긴 하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세계 최고 시장이다.
삼성 입장에선 미국 시장에서 전략제품을 판매금지 당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된다. 점유율 2, 3% 수준인 오스트레일리아나 영국 같은 나라와는 비교가 안 된다.
물론 그 동안 미국에서도 두 나라는 공방을 벌였다. 갤럭시탭과 갤럭시 넥서스에 대해 판매금지 판결이 내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간의 공방은 가처분 소송이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본 게임이 벌어지기 전의 샅바싸움 수준이었다.
반면 이번 소송은 정면 대결 성격이 강하다. 두 회사의 핵심 특허를 놓고 공방을 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소송의 승자는 당분간 스마트폰 시장에서 상당한 우위를 누릴 수 있다. 삼성과 애플 모두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인 셈이다.
◆또 다른 변수 구글, 어떻게 작용할까?
이번 재판은 표면적으론 삼성과 애플 간 공방이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두 회사의 1대 1 다툼이 아니다. '안드로이드 진영'과 애플 간의 싸움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애플이 삼성 갤럭시 제품군에서 문제 삼고 있는 것중 상당 부분은 안드로이드의 핵심 기능들이다. 구글로서도 결코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실제로 구글은 이달 초 새너제이 법원이 갤럭시 판매금지 조치를 확정한 직후 이례적으로 "판매금지 명령을 피해갈 수 있는 소프트웨어 패치를 내놓겠다"고 선언했다. 구글은 또 갤럭시 넥서스 판매금지 가처분 소송에 대한 삼성의 항소심도 적극 도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연히 갤럭시 넥서스를 둘러싼 본안 소송에도 삼성과 적극 공조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번 소송은 엄밀히 말해 삼성과 구글이 힘을 합해 애플과 싸우는 전쟁이라고 봐도 크게 그르지 않다. 이번 재판에서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를 점치기 힘든 이유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재판 결과가 몰고 올 파장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새너제이 법원이 본안 소송 직전까지 삼성과 애플 측에 계속 화해를 종용한 것 역시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팀 쿡 애플 CEO와 최지성 삼성 부회장은 법원 명령으로 두 차례나 회동했지만 합의점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새너제이 법원은 이번 소송을 이례적으로 빠르게 진행한다. 일주일에 두, 세차례 정도 공판을 진행해 한 달 만에 끝낸다는 계획이다.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선 법원에서 어떤 판결이 내려질 지 전혀 예상할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점칠 수 있을 것 같다. 법원의 빠른 재판 진행에도 불구하고 두 회사간 승부는 결코 쉽게 가려지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어느 한 쪽이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기 쉽지 않은 사안인데다. 지는 쪽은 곧바로 상급법원으로 재판을 끌고 갈 것이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선 또 다른 지리한 공방의 시작점이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김익현-김현주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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