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기자] 이번에도 영국에선 삼성이 승리했다. HTC와 마찬가지로 특허 침해를 하지 않았다는 확인 판결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외신들에 따르면 영국 고등법원의 콜린 버스 판사는 9일(현지시간) 갤럭시 탭 10.1, 8.9, 7.7인치 등이 애플 아이패드 디자인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영국 법원의 이번 판결은 얼마 전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지역법원 판결과 맞물려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미국 법원에선 똑 같은 제품인 갤럭시 탭 10.1이 "일반인의 눈으로 보기에도 아이패드와 흡사하다"면서 판매금지 조치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영국 법원이 상반된 판결을 내린 이유는 뭘까?
언뜻 애플이 미국 기업이라는 점과, 영국 법원이 특허침해 소송에 비교적 관대하다는 점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재판에서 엇갈린 판결이 나온 데는 '태블릿 디자인의 고유한 특성'을 어디까지로 볼 것이냐는 철학적인 차이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통상적인 정보를 가진 사용자 관점에서 판결
이번 재판은 삼성이 '특허 침해하지 않았다'는 확인 판결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삼성의 소송에 애플은 특허 침해 혐의로 맞제소했다.
이 두 소송은 이번에 함께 심리됐다. 법원이 삼성의 요청을 받아들인 때문이다. 또 영국 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애플 디자인 특허의 효력에 대해선 다루지 않았다. 삼성이 청구한 것이 디자인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확인 판결이기 때문이다.
버스 판사는 판결에 앞서 '통상적인 정보를 가진 사용자(informed user)'란 개념을 적용했다. 갤럭시 탭과 아이패드 간 특허 침해 여부는 일반인이 아니라 통상적 정보를 가진 사용자가 식별할 수 있을 지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 것.
'통상적인 정보를 가진 사용자'는 삼성 측이 제시한 기준을 받아들였다. 즉, 일반적인 소비자와 달리 특별하게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을 통상적인 사용자로 보기로 한 것. 또 일반적인 디자인 형태나 기능에 대한 지식과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디자이너나 기술 전문가, 제품 제조자나 판매자처럼 그 분야에 대해 고도의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과는 다른 존재다.
버스 판사는 이런 기준을 토대로 갤럭시 탭 7.7인치 제품을 갖고 비교했다고 밝혔다. 문제가 된 세 종류 갤럭시 탭 중 7.7인치 제품의 시각적인 특징이 가장 덜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갤럭시 탭 7.7이 아이패드 디자인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면 나머지 제품도 특허 침해를 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애플, '앞부분 유사성' 집중적으로 강조
미국 소송 당시 루시 고 새너제이 지역법원 판사는 "일반인의 눈으로 보기에도 아이패드와 갤럭시 탭은 흡사한 제품이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삼성은 나이트리더의 피들러 단말기 등을 선행 기술로 제출했다. 애플 아이패드 역시 독창적인 디자인은 아니란 주장을 했던 것이다.
새너제이 지역법원의 루시 고 판사도 삼성의 이런 주장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항소심에서 이 부분이 뒤집어지면서 결국 갤럭시 탭에 대한 판매금지 판결이 내려지게 됐다.
이 부분에서 영국 법원은 미국과는 다소 다른 관점을 견지했다.
물론 영국 고등법원의 콜린 버스 판사 역시 갤럭시 탭의 앞부분의 전체적인 디자인이 아이패드와 흡사하다는 점엔 인식을 같이 했다. 평면 스크린을 이용한 부분이나 얇은 테두리, 그리고 간단하고 평이한 모서리 디자인 등이 아이패드와 매우 비슷하다고 본 것.
그는 또 두 제품 모두 별다른 버튼이 없으면서 단순한 디자인을 지향한 점 역시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얇은 디자인을 추구한 점 역시 흡사한 것으로 봤다.
애플도 이런 부분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태블릿을 쓸 때 전면을 집중적으로 본다고 주장한 것. 따라서 갤럭시 탭은 아이패드를 그대로 베낀 제품이라는 것이 애플 측의 논리였다.
◆ 콜린 버스 판사 "통상적 사용자에게 앞부분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버스 판사는 '통상적인 정보를 가진 사용자'들에겐 이런 전체적인 유사성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특히 앞부분이 비슷한 점은 중요한 의미를 갖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그는 판결문에서 자신은 '통상적인 정보를 가진 사용자가 아니다'고 규정했다.)
이 대목부터 영국 법원은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역법원과 다른 판단을 내렸다.
통상적 사용자들은 아이패드와 갤럭시탭의 전면 디자인은 이미 이전에 존재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미국 재판 당시 선행 기술로 제출됐던 나이트 리더를 비롯한 다른 제품들에서도 이미 나타난다는 것이 영국 법원의 판단이었다.
따라서 통상적인 정보를 가진 사용자들은 갤럭시 탭이 아이패드까지 포함되는 여러 태블릿 제품군의 하나 정도로 인식할 가능성이 많다고 버스 판사는 지적했다.
이 대목에서 버스 판사는 갤럭시 탭과 아이패드가 두 가지 점에서 차이가 난다고 평가했다. 하나는 삼성 갤럭시탭이 아이패드보다 훨씬 더 얇다는 부분이요, 또 하나는 뒷부분 디자인이었다.
판사는 아이패드가 갤럭시탭 두께의 두 배 수준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애플 제품이 옆 부분의 곡선 때문에 더 얇아보이지만, 같은 효과를 넣을 경우 삼성 제품이 훨씬 더 얇아 보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통상적 정보를 가진 사용자들이 보기엔 갤럭시 탭이 단순히 아이패드를 좀 더 얇게 한 제품이란 인상은 주지 않는다고 버스 판사는 주장했다. 아이패드와는 다른, 좀 더 얇은 태블릿이란 생각을 갖게 만든다는 것이다.
◆영국 법원, 뒷부분 차별점에 주목
버스 판사가 좀 더 주목한 부분은 뒷부분 디자인이었다. 태블릿에서 디자인 차별 포인트를 둘 수 있는 곳이 뒷 부분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판사는 일단 갤럭시 탭의 뒷부분 곡선이 아이패드와는 다르다고 평가했다. 현저히 두드러질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차이는 있다는 것.
판사는 갤럭시 탭 7.7 뒷 면을 보면 디자이너가 자율적으로 변화를 줄 수 있는 부분을 많이 강조했다고 평가. 이 정도로 차별 포인트를 둔 것은 통상적 정보를 가진 사용자들에겐 흔치 않은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버스 판사는 "삼성 제품은 뒷부분이 매우 얇아서 (아이패드까지 포함한) 태블릿 제품 군에선 '거의 상상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제품(insubstantial members)' 이라고 판단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아이패드까지 포함되는) 태블릿 제품군에서 나름대로 독창적인 특징을 갖고 있는 제품이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그는 또 삼성 갤럭시탭이 애플 아이패드처럼 극단적인 단순성을 추구했다고 보긴 힘들다고 판단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갤럭시 탭은 아이패드만큼 상큼하지(cool) 않다"면서 "전체적인 인상은 다른 제품이다"고 평가했다.
이번 판결 직후 외신을 비롯한 많은 언론들은 "갤럭시 탭이 아이패드 만큼 상큼하지 않다"는 판사의 평가 부분에 주목했다. 하지만 그런 평가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삼성 입장에선 그다지 유쾌한 평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제품 이미지에 큰 타격을 가할 정도로 심각한 판결은 아니기 때문이다.
◆삼성, 유럽 지역 재판서 큰 힘 얻을 듯
불과 몇 주 사이에 미국과 영국 재판에서 완전히 상반된 판결이 나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혼란을 느낄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디자인 특허 소송'에선 '어디까지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보느냐'에 따라 상반된 판결이 나올 수도 있다.
콜린 버스 판사도 판결문에서 토로했듯, "전체적인 인상을 보고 판단한 뒤 글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전달 과정에 오해가 생길 여지도 적지 않다.
그런 점에도 불구하고 영국 법원의 이번 판결은 태블릿의 앞부분은 독창적인 디자인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전기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콜린 버스 판사의 관점을 받아들일 경우, 아이패드의 앞부분 디자인 역시 선행 제품들을 개선 발전시킨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영국 법원의 이번 판결이 적어도 유럽 다른 나라엔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많다는 점에서 삼성에겐 큰 힘이 될 전망이다.
김익현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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