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통신시장을 보면 '요지경'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가계통신비가 식비와 교육비 다음으로 높아 서민들의 불만이 폭발할 지경인데, 통신회사들은 점점 경영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주가는 반토막이 났고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바닥을 치고 있다. 요금을 내려달라고 외치는 소비자의 목소리는 높은데 시장에서 팔리는 것은 100만원짜리 스마트폰 뿐이다. 도대체 우리 통신시장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아이뉴스24는 이같은 요지경 통신시장이 '잘못 꿰어진 첫단추' 때문이라고 인식하고 이를 시리즈를 통해 진단한다.[편집자주]
[강은성기자] #1. 지난 2010년 9월 아이폰4를 구매한 직장인 A씨(32세). 이전에 A씨는 일반폰을 이용하면서 월 통신 요금 3만원대를 유지했다. 그러나 아이폰을 이용하기 시작한 뒤로 A씨는 월 통신요금이 6만원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다. 5만4천원 정액요금제에서 제공하는 무료통화량을 꼭꼭 확인하며 지켜 사용해도 6만3천원을 넘겼고 아차 방심하면 7만~10만원까지 통신요금이 청구됐다.
#2. 지난 2010년 8월 14차 예약가입을 통해 갤럭시S를 손에 넣은 직장인 B씨(42세)는 최근 스마트폰을 교체하고 싶어 대리점을 기웃거리고 있다. LTE 신제품이 눈을 현혹시키는 가운데 99만9천원이라는 갤럭시노트를 '공짜'로 준다는 말에 B씨는 눈이 번쩍 뜨였다. 믿을 수가 없어 여러 통신사 대리점을 다녀봤더니 갤럭시노트는 공짜에 주고, 남은 B씨의 갤럭시S 단말기 할부금까지 갚아주겠다는 대리점도 나왔다.
#3. 통신회사 임원 C씨는 1분기 실적발표를 앞두고 한숨부터 내쉰다. '사면초가'라는 말이 요즘 C씨의 머리 속에는 꽉 들어차 있다. 지난 4분기, 최악이다 싶을 정도의 실적을 기록했지만 1분기에 나아질 낌새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애널리스트들의 전망 보고서는 하나같이 '악재가 겹쳐 당분간 실적 호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내용 일색이다.
◆요금 오르는데 통신사 실적은 '마이너스'
스마트폰 가입자가 2천500만명을 훌쩍 넘기며 본격적인 '스마트 라이프' 시대가 열렸지만, 이와 함께 가계통신비 부담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 2월24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1년 연간 가계동향 조사결과에 따르면 월평균 통신비 지출비용이 전년(2010년) 대비 4천300원 오른 14만2천900원을 기록했다. 이는 스마트폰이 확산된 이후 가정의 통신비가 오르고 있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A씨의 사례를 보면 정액요금제를 이용하면서 이전 일반폰 이용 때보다 요금이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을 볼 수 있다. A씨처럼 스마트폰으로 바꾼 뒤 통신요금이 올랐다는 것은 전반적인 시각이다.
그런데 요지경인 것은 통신비가 올랐다는 이용자들이 늘어났는데도 통신회사들은 오히려 전보다 경영환경이 어려워졌다고 연일 호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2일 SK텔레콤이 발표한 2012년 1분기 실적을 보면 이 회사는 지난해 같은기간 대비 영업이익이 26.4% 감소했다. A씨처럼 요금을 2배 이상 많이 내는 스마트폰 가입자가 이 회사에만 1천500만명에 육박하고, 이중 300여 만명은 일반 스마트폰 가입자보다도 높은 요금을 내는 'LTE'가입자다. 그러나 SK텔레콤의 실적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곧이어 실적을 발표할 KT와 LG유플러스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LG유플러스의 경우 경쟁사에 비해 LTE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설비 투자를 공격적으로 단행했기 때문에 이번 1분기 실적에서 크게 부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NH투자증권 김홍식 연구원은 "지난 4분기 실적에서 통신3사가 크게 부진했지만 1분기에 이를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통신3사 모두 증권가 예상치보다도 부진한 영업이익과 순이익을 기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특히 "현재 통신3사의 주가가 모두 바닥을 치고 있다. 1분기 실적시즌을 맞이했지만 주가가 상승할 만한 종목은 없다"면서 "지속되는 요금인하 압박과 LTE 투자로 인한 감가상각비 증가, 그리고 요금할인으로 인한 가입자매출(ARPU) 하락으로 당분간 실적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천정부지 단말가격, 통신업체가 요금으로 보조
B씨의 사례처럼 최근 휴대폰 대리점에 나가보면 100만원짜리 단말기를 공짜로 뿌리는 사례가 허다하다.
휴대폰 유통업계 관계자는 "요즘 소비자들은 매장에 들어오면 '이곳은 보조금을 얼마나 주는지'부터 물어본다"면서 "보조금을 주지 않으면 가입자를 유치하기 힘들다"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보조금을 많이 지급하는 것일까. 통신업체 고위 임원은 "이미 국내 이동통신가입자는 5천만명을 넘어, 서비스 보급률 100%를 넘어선 포화시장이다. 이런 시장에서 통신3사가 점유율을 수성하려면 공격적으로 나오는 경쟁사의 마케팅 전략에 대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통신사들의 뺏고 빼앗기는 점유율 경쟁이 이어지면서 100만원짜리 스마트폰이 공짜로 둔갑하고 있는 셈이다. 2년 약정을 할 경우 40만~50만원을 요금으로 할인해주고 대리점 현장에서 추가 보조금을 제공하면 100만원 스마트폰을 사실상 공짜나 다름없이 손에 넣을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영업이익과 순익, 가입자매출은 곤두박질치지만 단말기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있고, 가입자들은 이 단말기 가격을 보조해 주지 않으면 철새처럼 떠나가버리니 통신사 입장에서는 진퇴양난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통신업체 고위 임원은 "요즘 상황을 보면 정말 '개미지옥'같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잘못 발을 디뎠더니 한없이 밑으로 꺼져 들어가기만 하고 빠져나오려 해도 미끄러운 모래때문에 도저히 밖으로 탈출할 수 없는 그 개미지옥이 현재 통신업체들이 처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는 "스마트폰 할인요금제를 통해 고가의 스마트폰 단말기 가격을 보조해주기 시작했는데 이 할인요금제가 부메랑이 돼 매출을 갉아먹고 있다"면서 "제조업체들은 거리낌 없이 100만원짜리 단말기를 출시하는데 소비자는 별 부담없이 이 단말기를 구입하고 있고, 그 간극은 통신업체가 채우고 있다"고 호소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가계통신비는 이동통신사의 요금인 '통신서비스'와 휴대폰 단말기 가격인 '통신장비 구입비(할부금)'로 구분돼 있다. 조사에서 통신서비스는 2010년보다 2.5% 올랐지만 단말기 구매비용은 49.3%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 복지통계과 김신호 과장은 "실제로 오른 통신요금은 통신서비스가 4.1%, 단말구매비용이 55.4%로 조사됐지만, 지난해 10월부터 이동통신3사가 기본료를 1천원 내려 통신서비스 요금 인상 폭의 수치가 다소 줄었다"고 설명했다.
통신업체 임원은 "그나마 남은 단말기 가격이 청구서에 표기되는데, 이마저도 가입자들은 '통신요금'이라고 생각해 요금이 과도하게 나온다고 여긴다"면서 "단말기 가격이 필요이상으로 비싸고 고급제품이라는 것도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강은성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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