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백과사전의 대명사' 브리태니커가 최근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왔다. 종이로 된 백과사전 발행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대신 인터넷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2년에 한번씩 업데이트하는 시스템으론 더 이상 독자들을 잡아놓을 수가 없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244년 역사를 자랑하는 브리태니커로선 가히 혁명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장면 2] 영국의 저명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해부터 특별한 실험을 하고 있다. '뉴스 데스크 라이브'란 실험이 바로 그것이다. 뉴스 데스크 라이브? 간단하다. 그날 하루의 기사 계획을 그대로 오픈해버리는 것이다. 일종의 오픈소스 방식 뉴스 제작시스템이다. 단순히 독자들의 글을 받고, 그들의 뉴스를 싣는 차원이 아니라, 아예 편집국 회의 자체를 공개해버린 것이다. 아이템 옆엔 기자 이름까지 공개한다. 독자들과 기획 단계부터 바로 소통하겠다는 것이다.
[장면 3] A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신문보다 먼저 페이스북을 살펴본다. 타임라인을 쭉 읽으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읽는다. 주변 사람들의 소식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불특정 다수의 소식을 담고 있는 신문보다 훨씬 흥미진진하다. '나만을 위한 뉴스'들이기 때문이다.
[장면 4] 21세기의 어느 날. 예수가 베드로 앞에 나타났다. 그리곤 "나를 따르라(follow me)"고 말한다. 당연히 그물을 집어 던지고 따를 줄 알았던 베드로. 하지만 그는 뜬금 없는 질문을 던진다. "트위터 주소가 어떻게 되시죠?" 아래 그림은 생뚱맞은 베드로의 반응에 대한 예수의 답변을 그린 카툰이다. (혹시 이런 그림에 민감하게 반응하실 분께 미리 한 마디. 어디까지나 이 그림은 패러디란 걸 명심하고 봐주시길.)
백과사전과 영국의 저명 일간지. 2012년 한국 땅에 살고 있는 A씨. 그리고 예수와 베드로를 소재로 한 카툰 한 장. 언뜻 보기엔 하나로 묶이지 않는 장면들이다. 하지만 위에서 보여준 네 가지 장면의 밑바탕에는 공통된 시대 흐름이 자리잡고 있다. 바로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다.
◆저널리즘 현장에 닥친 무서운 쓰나미
SNS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뉴스 지형도에도 엄청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 동안 뉴스 유통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던 전통 매체들의 위상이 급격하게 약해지는 대신 소셜 미디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뉴스 큐레이션(news curation)'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의 퓨리서치센터가 최근 발표한 자료를 살펴보면 이런 변화가 어느 정도인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2010년과 2011년 사이 매출 증감 현황을 조사한 결과 온라인(23.0% 증가)과 케이블TV(9.0% 증가), 오디오(1% 증가)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전부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네트워크TV(-3.7%), 잡지(-5.6%) 할 것 없이 전부 매출이 줄었다.
특히 신문의 상황은 심각한 수준이다. 2010년 대비 2011년 매출이 무려 7.3%나 감소했다.
반면 소셜 미디어 이용자들은 갈수록 늘고 있다. 전 세계 페이스북 이용자 수는 어느 새 8억5천만 명을 넘어섰다. 트위터 역시 이용자 수 5억 명을 돌파했다. 눈을 나라 안으로 돌려도 상황은 비슷하다. 올 상반기 중에 스마트폰 이용자 수가 3천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1천만 가입자를 돌파한 지 불과 1년여 만이다.
당연히 전통 매체들이 느끼는 위기 의식은 남다르다. 매킨지가 지난 해 전 세계 신문사 에디터 52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보고서를 살펴보면 이런 위기 의식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당시 조사에 응한 에디터들은 5년 이내에 인쇄 매체의 유통량이 전체 미디어 유통량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디지털 미디어, PC, 태블릿 퍼블리케이션이 늘어날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도 55%에 달했다.
속보보다 오피니언과 분석 기사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질 것이란 응답도 70%에 달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앞으론 멀티미디어 툴을 익히고 이를 업무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매스미디어가 중심 역할을 했던 미디어 생태계가 이젠 소셜 미디어 쪽으로 급속하게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한 눈에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소셜 시대, '뉴스 브랜드' 인식이 없어지고 있다
이런 변화는 독자들의 뉴스 소비 행태에도 영향을 미쳤다. 개별 뉴스 브랜드에 대한 인식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역시 지난 해 닐슨과 퓨리서치센터가 공동 조사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한번 살펴보자.
퓨리서치센터는 지난 해 미국 25대 사이트를 대상으로 독자들이 한 달에 몇 번이나 방문하는 지 알아봤다. 당시 조사 결과 특정 사이트를 한 달에 10번 이상 방문한다고 응답한 비중이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범위를 2회 이상으로 대폭 늘려도 35%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반면 한 달에 한 번만 방문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65% 수준에 이르렀다. 이 정도 결과면 아예 특정 브랜드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SNS나 구글 검색 등을 통해 관심 있는 뉴스에 접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별 뉴스 사이트에 대한 조사 역시 비슷한 결과를 나타냈다.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ABC, CBS 등 미국 주요 지상파 방송사 사이트를 한 달에 10번 이상 방문하는 비율은 많게는 4.5%에서 적게는 1% 수준에 머물렀다.
이런 조사 결과를 통해 어떤 것을 알 수 있을까? 거대 조직 중심의 기존 미디어 패러다임 자체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독자들 사이의 기본 평판 시스템 자체가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을 보이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한 가지 조사만으로 과도한 해석을 한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번엔 또 다른 연구 결과를 한번 살펴보자. 마이크로소프트(MS) 연구팀이 몇몇 연구자들과 공동으로 튀니지와 이집트 시위 당시 트위터 유통 현황을 조사한 논문이다.
이 연구 결과 역시 비슷했다. '조직'보다는 '개인'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이들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뉴스 생산업체가 직접 운영하는 트위터와 개인 트위터 간의 유통량을 비교한 결과 3대 7 비율로 개별 계정의 유통량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상대적으로 주류 미디어의 트위터가 훨씬 많은 팔로워를 자랑한다는 점에서 의외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은 이런 연구 결과를 토대로 "비록 주류 미디어 계정들이 더 많은 팔로워를 갖고 있긴 하지만 정보 흐름이란 측면에선 개인들의 역할이 더 컸다"면서 "이는 개인들이 조직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더 믿을만하다는 인식을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연구 결과를 어떻게 봐야 할까?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플랫폼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개별 뉴스 미디어의 브랜드 영향력은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변화는 개별 언론사의 뉴스 정책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는 것 아닐까?
◆밀본과 정기준…그리고 가디언의 변신
여기서 잠시 얼마 전 끝난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를 떠올려보자. 세종의 한글 창제 과정을 다뤘던 그 드라마에는 '밀본'이란 비밀 조직이 등장한다. 밀본은 조선 초기 기초를 닦았던 정도전의 사상을 추종하는 무리들이다. 이들은 사대부가 중심이 되는 나라를 꿈꾼다. 당연히 강력한 왕권을 추구하는 세종과는 대립관계를 형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글이란 변수가 등장했다. 우연히 한글이 얼마나 파괴력이 있는 지 알게 된 총수 정기준은 밀본의 대의보다는 한글 창제를 막는 데 더 큰 힘을 쏟는다. 그 때 그가 했던 대사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자.
“글자는 무기다. 칼보다 더 무서운 무기다. 사대부가 사대부인 이유는 글자를 알기 때문이다. 그게 사대부의 권력이고 힘의 근거다. 모두가 읽고 쓰면 조선의 모든 질서가 무너진다. 한글의 반포를 막아야 한다.”
이 말은 사대부들이 중심이 된 조선 사회를 떠받치는 힘이 어디에 있는 지를 잘 보여줬다. 정기준의 저 말에서 글자를 SNS로, 사대부를 전통 매체로 바꿔서 읽어도 뜻이 통한다. (물론 그러자면 두 번째 나오는 글자는 '정보'로 의역해서 읽어야 한다.) 그래서 사극은, 어느 시대에 방영되느냐에 따라 그 의미와 해석이 달라진다고 하는 지도 모른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 나오는 정기준은 SNS에 대해 뛰어난 통찰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한 가지. 그에겐 통찰력에 힘을 덧붙여줄 반성하는 마음은 갖고 있지 못했다. 결국 그는 SNS 탄압에 앞장섰다가 비참한 최후를 맡는다.
잠시 옆길로 샜다. 다시 가던 길을 계속 가 보자.
SNS가 무서운 건 바로 '평등한 정보 플랫폼'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글자를 막으려는 정기준의 시도가 실패했던 것처럼, SNS를 기반으로 한 평등한 정보 유통에 저항하려는 시도 역시 제대로 힘을 발휘하기 힘들다. 이젠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가디언 얘기로 돌아가보자. 가디언은 지난 해 말부터 파격적인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아예 기사 아이템까지 독자들과 나눌 정도로 오픈을 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데스크회의가 끝나면 바로 사이트에 그날의 기획 아이템을 올려놓는다. 물론 기자 이름도 함께 공개한다. 기자 이름을 누르면 해당 기자의 트위터로 바로 연결된다. 제보를 할 수도 있고, 독자들과 해당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선 경쟁지 기자들이 기사 아이템에서 힌트를 얻을 수도 있다. 가디언은 이 모든 걸 감수하고서도 독자와의 직접 소통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 부분에 대해선 찬반 양론이 갈릴 것이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입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왜?"라는 질문이다. "왜, 가디언은 저렇게 할까? 무엇이 아쉬워서." 실제로 영국에서 가디언이 차지하는 위치는, 미국에서 뉴욕타임스가 차지하는 위치에 견줄 수 있다. 아쉬울 것 없는 매체다. 적어도, 기존 질서 내에서는, 그렇다.
문제는 지금은 질서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한글이란 변수가 등장하면서 사대부 사회가 흔들렸던 것처럼, SNS의 등장으로 전통 매체 중심의 질서 자체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가옴은 최근 가디언의 변신을 전해주면서 이렇게 보도했다.
"가디언이 어느날 갑자기 마케팅 슬로건으로 들고 나온 게 아니다. 현재 미디어 환경에서 일어나는 여러 변화의 물결에 대응하려면, 오픈 저널리즘을 하지 않을 수 없다."
◆12년 전 뿌렸던 혁신 씨앗…또 다른 12년을 기약하며
자, 멀리 돌아왔다. 지금까지 서술한 것들은 어떻게 보면 밑반찬 같은 얘기들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우리 얘기를 한번 해보자. 창간 12돌을 맞은 아이뉴스24를 둘러싼 미디어 지형도 얘기 말이다.
2000년 3월 아이뉴스24가 첫 발을 내 디딜 당시엔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 그 때만 해도 인터넷 언론이란 개념 조차 제대로 형성되지 않을 때였다. 당연히 기존 질서 중심의 언론계에서 아이뉴스24 같은 매체는 이단아였다. 하다 못해 보도 자료 하나 받는 것 가지고도 싸워야만 했다.
하지만, 당시 아이뉴스24는 힘이 있었다. 혁신 정신으로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전통적인 사고 방식에서 벗어난 과감한 실험을 선보였다.
창간 첫 날부터 오프라인 신문의 문법을 과감하게 벗어던지면서 참신한 실험을 선보였다. 뉴스레터를 비롯해 현장중계, 독자들과 직접 대화하는 듯한 감성적인 기사. 그리고 우리끼리 '무제한 저널리즘'이라고 지칭했던 끝장보도까지. 인터넷 저널리즘이란 생소한 장르를 개척했던 아이뉴스24의 초기 성장을 이끈 것은 과감한 실험과 혁신 정신이었다.
물론 당시 혁신의 현장에 아이뉴스24만 있었던 건 아니다. 오마이뉴스, 프레시안을 비롯한 많은 매체들이 인터넷 저널리즘의 새로운 맛을 선사해줬다. 종이신문과 방송에 익숙했던 독자들에게 신세계를 열어줬다. 이런 흐름을 유식한 학술 용어로 포장하면 '미디어 변혁' 혹은 '미디어 모포시스'가 될 것이다.
그리고 맞은 2012년.
이제 아이뉴스24는 모바일과 태블릿이란 새로운 세계를 껴안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SNS를 기반으로 한 차별화된 보도에도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소셜 댓글을 바탕으로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젠 방문을 꽁꽁 틀어 잠그고 고고한 척 앉아 있는 대신, 독자들 속으로 과감하게 들어가려 하고 있다.
하지만 창간 12돌을 맞는 지금. 냉정한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 다른 12년, 아니 120년을 기약하기 위해선 뼈를 깎는 자기 성찰과 노력이 있어야만 한다.
하여, 냉정하게 반성해본다. 과연 우리가 12년 전 불확실한 씨앗을 뿌릴 당시 갖고 있던 '혁신 유전자'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지. 양방향 시대를 맞아 뼈를 깎는 변신을 하려는 용기를 갖고 있는지. '잘 나가는' 가디언 처럼, 아니, 그 보다 더 과감하게 '기득권'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 지.
지금 당장 이런 반성적인 질문에 자신 있는 답변을 내놓을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 솔직히 쉽지 않다. 어느 누가, 저 질문에 과감하게 "그렇다"고 답변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독자들께 하나는 약속할 수 있다. 적어도 변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할 것이라고. 최소한 '한글의 반포'에 끝까지 저항하려는 무모한 시도를 했던 '밀본' 같은 존재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독자들에 대한 믿음과 신뢰는 끝까지 내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김익현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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