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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가린 정부, 학교폭력엔 오직 '게임탓' 처방


[게임죽이기의 진실-1]게임없애면 학교폭력 사라진다?

게임이 학교폭력의 근원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게임의 '마약성'을 부각시켜 마약과 같이 청소년들의 정신을 갉아먹는다는 주장도 수면 위로 올라왔다. 청소년 문제의 어두운 그늘에 게임이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게임의 병폐로 생기는 청소년 문제가 있다면 하루빨리 원인을 찾아 치유하고 청소년을 보호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의 게임분야 취재를 통해 게임과 폭력, 게임의 중독에 대한 인과관계가 단순히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한다. 안타까운 중학생의 죽음으로 인해 촉발된 마녀사냥식 한풀이가 한바탕 지나간 지금, 좀 더 냉철한 시각으로 문제의 본질을 접근해야 할 때다. 아이뉴스24는 게임이 학교폭력의 수단이 되고, 청소년들이 빠져든다면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본질을 들여다보고, 적절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이번 시리즈를 통해 집중 진단한다.

[특별취재팀: 강호성 팀장, 허준 기자, 박계현 기자]

"친구가 같이 게임을 키우자고 협박을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매일 컴퓨터를 오랫동안 하게 됐고, (친구는) 게임에 쓴다고 제 통장의 돈까지 가져갔고, 매일 돈을 달라고 했어요."

지난해 12월 친구들의 폭력과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구 중학생 권모군의 유서에 쓰인 내용이다. 이 내용이 공개되자 전국민이 충격에 휩싸였다. 가해 학생들의 괴롭힘이 상세히 묘사된 유서의 내용은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상처를 남겼다.

특히 수사과정에서 가해 학생들이 게임을 하라고 시키고 게임에서 대신 캐릭터를 키우라고 강요했다는 점이 드러났다. 순식간에 게임이 학교폭력의 원인으로 부각됐다. 일부 보수 언론들은 게임이 대구 중학생을 자살로 몰아갔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게임이 없었다면 자살도 없었을 것이라는 내용이 연일 지면을 장식했다.

학부모들도 게임이 문제라며 일어났다. 눈치를 보던 교육과학부는 학교폭력 근절을 위해 게임을 규제하겠다고 나섰다. 교육과학부는 청소년의 게임 이용을 하루 최대 4시간, 연속 2시간 미만으로 제한하는 '쿨링오프제'를 들고 나왔다.

◆노스페이스도 두시간만 입어?

문제는 '학교폭력=게임'이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러다보니 게임업계가 일제히 반발했다. 한국게임산업협회와 한국대중문화예술산업총연합(이하 문산연)은 성명을 내고 문화 콘텐츠 산업을 규제하려는 교육과학부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게임산업협회는 "학교폭력 문제의 근원적인 원인을 따져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산업을 주요원인으로 인식하는 것은 과연 정부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산연도 "학교폭력의 원인을 만화, UCC, 게임으로 몰아세우는 선정적인 정책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강력히 반대한다"며 "이는 대중가요 가사에 담배와 술이 있다고 청소년유해물로 지목하려 했던 여성부의 시대착오적 정책과 같다"고 비판했다.

네티즌들도 정부의 일방적 '게임 죽이기'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를 중심으로 정부의 게임 규제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계속 터져 나왔다.

학교폭력의 근본원인은 누구라도 알 수 있다. 원희룡 새누리당 의원은 "게임은 학생들의 생활일상과 환경의 하나에 불과하며, 학교 폭력의 원인은 공교육의 붕괴와 이웃사회의 돌봄 부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전병헌 통합민주당 의원은 "MB정권은 게임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며 "술과 담배의 사회적 부작용을 법으로 막을 수 없는 것처럼 게임도 법보다는 사회적 부작용을 줄여가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대처법 부재를 비판했다.

학교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가정의 붕괴와 그에 따른 공교육시스템의 붕괴 등에 따라 나온 증상이라는 시각이다. 바꿔 말해 청소년들의 게임 이용을 전면 중단한다면 권모군 같은 안타까운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까?

학교폭력의 가해자들이 게임을 즐기지 않는다면, 게임으로 괴롭히지 않았을 것이다. 교과부의 사고방식처럼 게임을 하지 못하게 한다면 내버려둘까? 앞서 설명한 권모군의 유서에는 비단 게임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괴롭힘을 당했다고 쓰여 있다.

네티즌들 가운데는 정부 당국의 대처법에 일침을 가하는 얘기들이 적지 않다. "노스페이스 점퍼를 갈취하는 식의 학교폭력도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노스페이스 점퍼를 규제하라.“

◆청소년 여가문화 1순위, 편견부터 버려야

그럼에도 게임이 학교폭력의 원인으로 지목된 이유는 부모 세대가 가지고 있는 '게임=나쁜 것'이라는 인식에서 시작된다. 과거 컴보이같은 게임기부터 오락실까지 부모들은 게임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만화도 같은 대접을 받았다. 만화는 이제 '애니메이션'으로 업그레이드되며 성장동력 문화콘텐츠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지만, 게임에 대한 대접은 아직도 인색한 것이 현실이다.

요즘 학생들은 여가시간에 게임을 가장 많이 즐긴다. 서울지역 한 초등학교 교사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게임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다. 그만큼 많이 한다는 것 아니겠느냐"며 "아이들이 여가시간에 게임 외에 다른 취미생활을 즐기지 않을 정도로 게임은 청소년들의 주류 문화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온라인게임 등 청소년들이 즐기는 게임문화가 활성화된 것은 10여년 밖에 흐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아직 부모 세대들에게 '게임에 몰두하는' 자녀들이 걱정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학부모정보감시단 김성심 사무국장은 "학부모들이 게임을 하는 것에 대해 유독 통제하려는 이유는 게임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며 "게임업체들이나 정부가 게임의 역기능이나 올바른 지도방법을 학부모들에게도 잘 알려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청소년들이 게임을 하려는 것을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는 것보다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오랜 시간 투자를 해야 하거나 절제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유형우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소장은 "게임은 공부에 지친 청소년들이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으로 삶의 일부가 된지 오래됐다"며 "제도적 도입만으로는 게임중독과 학교폭력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들의 하루 평균 게임 이용시간은 1시간이 채 되지 않는 46분이다.

생각보다 적거나 많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개개인마다 게임하는 시간이 천차만별일 수도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해 조사한 청소년 게임이용실태 조사 자료에 따르면 게임을 과하게 즐기는 청소년들은 전체 청소년의 약 6.5% 정도다. 나머지 93.5%는 과하지 않게 즐기고 있다.

특별취재팀 강호성 팀장, 허준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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