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은영기자]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지난 20일(이하 현지시간) 마이크로소프트(MS)와 모토로라 간의 특허권 소송에서 MS측의 손을 들어줬다. 모토로라의 일부 안드로이드 폰이 MS의 특허권을 침해한 점을 인정한 것.
ITC는 19일에는 애플과 HTC의 특허 공방에서 애플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다. 내년 4월부터 HTC 제품을 미국으로 수입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오라클은 아예 구글을 직접 겨냥했다. 앤디 루빈 구글 모바일 총 책임자가 과거에 작성했던 이메일을 근거로 구글이 자바 특허 침해 문제를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영국의 브리티시텔레콤(BT)도 같은 날 안드로이드 폰과 구글의 일부 서비스가 자사 특허 6개를 침해했다면서 새로운 소송을 제기했다.
애플은 ‘특허괴물’ 디지튜드 이노베이션을 내세워 파상 공세를 펼치고 있다. 애플의 특허를 무기 삼은 디지튜드 이노베이션은 이달 초 총 4건의 특허를 침해한 혐의로 삼성, HTC, 모토로라 등 여러 안드로이드 폰 제조사들을 제소했다.
◆특허 ‘냉전’ 시대…쌍방 공격 이어져
올 들어 안드로이드 진영을 겨냥한 특허 공세가 연일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안드로이드 맹주'인 구글의 방어력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 리트거스대학의 마이클 케리어 교수는 아스테크니카와의 인터뷰에서 “특허 전쟁은 기본적으로 전면전이기 때문에 기업이 보유한 특허를 총 동원해 소송에 맞서야 한다”면서 “구글은 다른 기업들이 가진 만큼 특허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 경쟁사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구글이 충분한 특허를 확보하기도 전에 안드로이드 OS가 급성장해버렸다는 것. 그러다 보니 구글은 막대한 돈을 들여서 '구멍난 특허 포트폴리오'를 메울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구글 역시 이런 상황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올 들어 특허권을 확보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 것도 그 때문이다.
우선 구글은 지난 4월 파산 신청한 캐나다 통신업체 노텔의 특허권 인수 경쟁에 참여했다. 하지만 애플, MS, 리서치인모션(RIM)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에 밀렸다. 당시 9억달러를 제시했던 구글은 MS 컨소시엄이 45억 달러를 제안하는 바람에 밀리고 말았다.
결국 구글이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모토로라다. 125억 달러를 투자해 총 1만7천 개의 특허를 보유한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손에 넣은 것이다.
문제는 모토로라 인수가 너무 늦게 이뤄졌다는 점. 그러다 보니 돈은 돈대로 쓰면서도 효율적인 특허 방어전략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제임스 그리멜만 뉴욕대 법학교수는 “만약 구글이 사전에 특허 ‘폭풍’을 대비했더라면 125억 달러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모토로라의 특허 포트폴리오를 살 수 있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모토로라 인수로 18개 핵심부문 방어벽 확보
특허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기업들이 최우선적으로 할 일은 플랫폼의 핵심 기능이 남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송에 맞설 수 있도록 방대한 특허 포트폴리오를 축척하는 걸로 보완해야 한다.
구글이 비판받고 있는 것은 바로 두 번째 부분이다. 안드로이드 진영을 법적 공격으로부터 충분히 보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한 것도 이런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조치다. 그럼 구글의 모토로라 인는가 안드로이드를 둘러싼 특허 전쟁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히타치 등 일부 기업의 특허 소송을 맡은 바 있는 패트릭 패트라스 변호사는 아스테크니카와의 인터뷰에서 “이론상으론 단 한 개의 특허를 가졌더라도 경쟁사들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안 쓰곤 배길 수 없는 특허라면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단 얘기다. 그게 아닐 경우엔 가능한 많은 특허를 보유해야만 한다.
구글은 모토로라 인수로 최소한 18개의 주요 특허를 갖게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18건의 특허는 ▲위치정보 서비스 ▲안테나 설계 ▲전자메일 송수신 ▲터치 스크린 동작 ▲소프트웨어 응용 프로그램 관리 ▲3G 무선 통신 등을 두루 포괄하고 있다.
패트라스 변호사는 “특허 ‘냉전’ 시대에선 자신만의 ‘핵무기’를 비축하면서 상대의 움직임에 대해 항상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면서 “실제 여러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방대한 양의 특허로 무장하는 것만이 자신을 공격하는 상대방을 막아내는 것은 물론 경쟁사의 제품을 시장에서 배제시킬 것을 법원에 요청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음을 확인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애플과 MS는 안드로이드 진영을 위협할 수 있는 막강한 특허 파워를 과시했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로열티가 오가기도 했다.
MS는 삼성전자와 HTC를 포함, 안드로이드 OS 기기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제품의 제조사들과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MS는 안드로이드 기기 한대당 5달러에서 최대 15달러에 해당하는 특허료를 획득하게 됐다. 최근 MS는 안드로이드 OS 기반의 누크 태블릿에 대해서도 특허 침해로 제소하며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도록 반스앤노블 측에 압력을 넣고 있다.
애플 역시 오래 전부터 스마트폰 시장에서 특허 전쟁을 준비해 왔다. 2007년 아이폰과 멀티터치 기술을 처음 선보인 자리에서 당시 애플 최고경영자(CEO)였던 스티브 잡스는 “우리는 이 기술에 대한 특허를 획득했다”고 말했을 정도다.
◆17,000개 특허라면 충분, 하지만 이미 피해는 입은 상태
특허 전쟁에서 관건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과연 구글이 안드로이드 진영의 든든한 방패막이가 될 수 있겠냐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패트라스 변호사는 모토로라의 특허 포트폴리오는 향후 구글의 행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패트라스에 따르면 구글은 양적인 측면에서는 이미 충분한 특허를 보유한 상태다. 그는 “이제 1만7천 개의 특허를 손에 쥔 구글은 그 가운데 애플이나 MS에 ‘고통’을 줄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야만 한다”면서 “그렇게 된다면 MS와 같은 경쟁사와 크로스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는데 있어 구글이 꽤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반면 케리어 교수는 다소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구글이 모토로라의 특허 포트폴리오를 획득하긴 했지만 그것 만으로 안드로이드 진영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 같은 특허 소송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각종 특허료 지불로 인해 안드로이드 폰의 가격이 상승할 경우 경쟁 우위를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이다”고 말했다. 만약 구글과 파트너 제조사들이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거나 해당 기능을 제거해야만 한다면, 그 순간 안드로이드 폰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자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케리어 교수는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일부 전문가들은 구글이 레드햇 사례를 모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용 서버 시장의 강자 레드햇은 오픈소스 기업으로서 소프트웨어 특허 시스템을 반대하면서도 방어를 위해 자사의 특허 포트폴리오를 축척했다. 이를 토대로 사안에 따라선 공격적으로 대응했다.
물론 구글과 레드햇은 경우가 다르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든 구글은 매우 급격한 성장을 보이며 단기간에 최상위를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에 사전에 크로스 라이선스 계약 체결을 협상하거나 특허 침해 공격을 방어 할만한 포트폴리오를 마련할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구글은 어떤 지혜를 보여줄까? 모토로라 인수를 통해 확보한 1만7천개 특허만으로 충분한 방어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앞으로 벌어질 스마트폰 특허 전쟁에서 구글의 행보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원은영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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