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민기자]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20mm 미만의 두께와 1kg 초반의 무게, 성능은 '고성능'에 해당하는 2세대 인텔 i5 또는 i7프로세서를 탑재한다. 게다가 가격까지 1천달러(한화 약 110만원) 이하인 노트북이 출시된다는 얘기를 듣고서다. 기존 노트북은 가격이 저렴하면 성능을, 성능이 좋으면 휴대성을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지난 6월 대만에서 열린 세계 최대 컴퓨터 행사인 '컴퓨텍스2011'에서 인텔은 가격, 성능, 휴대성을 모두 결합시킨 '울트라북' 플랫폼을 세상에 공개했다.
인텔 울트라북이 발표된 후 소비자들은 새로운 디바이스 등장에 들떴다. 마치 약속대로만 출시 된다면 너나 할 것 없이 당장이라도 구매할 분위기였다.
PC 제조사들도 바빠졌다. 침체된 PC시장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울트라북 제품 준비에 매진했다.
그리고 5개월 후 울트라북이 모습을 보였다. 다양한 제품들이 쏟아졌다. A사는 '무게 종결자', B사는 '부팅속도 종결자' 등등 화려한 수식어도 쏟아졌다. 연말이 다가올수록 제조사들은 2012년 울트라북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숨겨왔던 비밀병기를 꺼내듯 제품 공개에 속력을 냈다.
그런데 이상하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새롭지가 않다. 기존 울트라씬 및 프리미엄 제품군에서도 볼 수 있었던 제품군과 너무 유사했다.
일부 제품은 약속한 플랫폼을 지키지 않았다. 제조사들이 모든 조건이 아닌 일부 조건만을 충족한 채 제품을 출시한 것이다. 핑계를 댔다. 앞서 얘기한 조건을 맞추려면 가격이 더 올라가거나 성능을 버려야 한다고. 열심히 만들었으니 이 정도 선에서 애교로 봐달란 눈치다.
평소 알고 지내던 용산 전자상가 내 컴퓨터업체 대표를 만났다. 그와 울트라북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그는 울트라북에 대해 한 마디로 이렇게 말했다. '빛좋은 개살구'라고. 이유는 제조사들이 부각하는 인스턴트 부트 기능과 SSD를 탑재해 부팅시간을 앞당긴 제품은 기존에도 있었다는 것. 좋아지긴 했는데 '울트라북'이라고 불릴 만한 임팩트가 부족하다는 얘기였다.
취재 차 한 PC 제조사 홍보 담당자를 만난적이 있다. 그 역시 같은 고민을 털어 놨다. 일부 제조사들이 반칙 울트라북을 선보이며 시장 질서를 무너뜨린다는 것. 그는 계속 이대로 간다면 울트라북도 넷북 처럼 2~3년 후에 사라질 위기라고 경고했다.
노트북 시장 전체 중 넷북의 판매량 점유율은 꾸준히 하락하며 지난 11월 역대 최하 수준인 6%에 이르렀다. 지난 2009년 점유율 29%까지 기록했던 넷북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있다.
그는 넷북 시장이 붕괴된 단 한가지 이유를 꼽았다. 바로 정체성의 부재. 뜨뜻미지근한 라인업으로 결국 여기저기에 치이며 이 꼴이 됐다고 꼬집었다. 그런데 지금 울트라북이 넷북의 실수를 답습하고 있다고 한다.
소비자들이 울트라북에 거는 기대가 크다. 제조사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하지만 지금 출시된 제품을 보고 울트라북 또는 울트라북 시장이 열렸다고 하기엔 아직 이르다.
그나마 다행이다. 제조사들은 아직 시작 단계라 미흡한 점이 많다고 인정했다. 내년에 출시될 윈도8 운영체제와 인텔 아이비브릿지 CPU가 접목되면 그때서야 비로소 숨겨진 기능이 등장한다고 한다.
울트라북이 약속대로 기존 데스크톱과 노트북을 대체하고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 날이 올까? 아직 울트라북에 거는 기대를 꺾기엔 일러 보인다.
권혁민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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