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주기자]아이폰이 휴대폰 시장 주류가 된 이후, 어느 순간부터 IT 분야를 취재하며 마주치는 업체들의 수많은 기기에 스티브 잡스의 흔적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제2, 제3의 아이폰들이 치열한 경쟁을 하며 경쟁력을 날로 높혀갔고, 맥북에어의 인기는 책받침처럼 얇은 노트북들을 속속 등장시켰다.
애플이 혁신의 선두에 서고, 수많은 '팔로어'들이 재빨리 따라 움직이면서 최근 수년간 IT업계는 과거 어느 때보다 역동적이고 빠르게 변화해갔다. 평이한 제품만을 찍어내며 '판매량'에 급급하던 예전과는 너무 다른 업체들의 모습에 생명력이 느껴지고 신명이 났다.
잡스의 사망은 이제 전세계 IT 업계가 발빠르게 따라야 할 롤모델이자 긴장의 대상인 경쟁자를 잃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에 깊은 안타까움을 느낀다. 잡스가 주도한 혁신 DNA가 애플에 그대로 남아준다면 걱정할 필요 없겠지만 이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과거 이건희 삼성 회장은 '메기론'을 강조한 바 있다. 미꾸라지가 있는 연못에 메기를 풀어놓으면, 미꾸라지들은 메기에 잡아먹히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잘 먹고 열심히 헤엄쳐 다님으로써 튼튼해진다는 이론이다.
스티브 잡스는 타성에 젖어 있던 IT업체들이 생존을 위해 처절한 혁신 노력을 하도록 몰아붙인 '메기'나 다름없었다. 메기의 힘찬 공격에 낙오한 물고기들도 있었다. 하지만 메기의 출현에 자극받아 세계 IT업계는 그 어느때보다 역동적이고 활력이 넘치는 양식장이 될 수 있었다.
잡스의 사망은 결국 세계 IT업계 혁신의 추동력이었던 '메기'가 사라졌다는 의미도 던져준다. 이 때문에 잡스의 사망과 이로 인한 애플 도태의 가능성이 국내 경쟁사들을 포함한 전체 IT 업계에 호재라고 여기면 안된다.
당장은 막강한 경쟁사 리더가 사라진 반사 이익을 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메기'가 사라진 양식장이 다시 활력을 잃고 남은 물고기들이 경쟁력을 키우는 속도가 둔화된다면 이를 반길 수 있을까.
잡스가 떠난 IT업계는 어쩌면 더 두통에 시달려야 할지 모른다. 롤모델이 사라졌으니 혁신을 주도해야 하는 부담이 커진 셈이다. 스스로 변화를 주도해야 허를 찔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가르쳐주고 갔다.
스티브 잡스가 한 번 걸어준 시동으로 받은 탄력은 계속돼야 한다. 애플의 경쟁사들은 당장 시장점유율이 오를 것으로 기대하며 웃기만 해선 안된다. 이제 막 가기 시작한 혁신의 시계가 멈추지 않았으면 한다.
강현주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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