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윤희기자] 30년의 시간 동안 IT코리아 건설에 큰 기여를 했다는 공로에도 불구하고 IT서비스 기업들은 '일감 몰아주기'와 '지배구조' 문제에서만은 뭇매를 피하지 못한다.
'정보화의 주역'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IT서비스 기업들은 '재벌의 부당 증여와 상속',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등의 이슈로 '뼈 아픈' 질타와 의혹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매년 되풀이되는 지적임에도 불구하고 IT서비스 기업들은 이같은 논란에서 결코 자유로와지지 못했다. 내부 속사정은 둘째치고 외형만으로 보면 긍정도 부정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IT서비스 기업들은 대다수가 재벌 기업을 모기업으로 하고 있고 이들로부터 오는 매출 비중이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99%에 육박하고 있다. 정치권의 질타에도 불구하고 IT서비스 기업들의 대내 매출 비율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오히려 지난 2009년보다 2010년에 늘어난 기업이 더 많다.
상황이 이렇고 보니 지난 6~8월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섰고 최근에는 감사원이 나서 IT서비스 기업들의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실태를 조사하는 등 공격이 거세다. 물론 이같은 공세에도 IT서비스 기업들은 '묵묵히' 평소 업무를 유지하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와 '부당 상속'의 단골 타깃 IT서비스 기업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라는 지적에서 한 발짝만 들어가 보면 IT서비스 기업들의 속사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다름 아닌 IT서비스 기업들의 태생이다. 각 계열사의 전산실을 통합해 효율성을 높이고자 출범한 것이 IT서비스 기업이기 때문이다. 기업들로선 다소 억울한(?) 감이 없지 않다.
문제는 IT서비스 기업들이 과거 기업 오너들의 상속 수단이나 재산 불리기 수단으로 이용될 소지가 컸다는 데 있다. IT서비스 기업들이 대부분 비상장사이다 보니 감시가 적고 대기업 소유주나 그 자녀들의 지분 소유가 커서 상속을 위한 '수단'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소규모 자본으로 IT서비스 업체를 설립하고 증자 등으로 오너 일가의 지분율을 높인 다음 계열사의 일감을 몰아주며 사세를 확장해 나가면 결국 오너 보유지분의 가치가 상승된다'는 것이 이들에게 가해지는 질타이자 지적이다.
실제로 삼성그룹의 이건희 전 회장이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헐값에 발행한 뒤 이를 아들인 삼성 이재용 사장에게 넘긴 것에 대해 법정 공방이 이뤄지면서 이 구조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렇게 확보한 수익을 계열사 지분 보유 수단으로 활용하면 기업 지배력을 높일 수 있다. SK C&C도 2008년 그룹내 지주사 SK의 주식을 3천500억원가량 사들였다. 이 기업 최대 주주는 최태원 회장이기 때문에 결국 최 회장의 기업 지배력이 강화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IT서비스 기업을 '필요로' 하는 시대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IT서비스 기업 관계자는 "솔직히 (IT서비스 기업들이) 일감 몰아주기의 수혜자였다는 것을 부인할 순 없다"면서도 "하지만 불과 5~6년 전과 비교해도 각 기업들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면서 이제는 법적으로도 크게 문제될 만한 부분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2~3천억원 매출을 기록했던 기업들이 이제는 조 단위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면서 "기업 매출이 조 단위를 넘어섰다는 것은 내부 프로세스나 경영 시스템이 과거와는 달라졌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여전히 기업 내부 매출 비중은 높지만 '일감 몰아주기'라는 관점보다는 IT 관련 신사업을 구상하는 데 있어 IT서비스 기업과의 컨버전스 사업이 증가하는 등 기업의 IT업무 의존도가 늘어났다고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업이 IT서비스 기업을 우대해 주는 시대가 아니라 IT서비스 기업을 통해 사업을 모색하는 시대라는 뜻이다. 건설 계열사가 있는 경우 친환경 사업의 일환인 가정용 에너지관리사업이나 빌딩 에너지 관리 시스템에 참여할 수 있다.
이 경우 일감을 몰아주는 차원이 아니라 R&D 단계에서부터 사업을 함께 구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사례들도 매출 구성으로 따지면 '내부 매출'로 산정되는 까닭에 내부 매출 비중이 줄어들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 자료를 어떻게 남에게? '보안 때문에라도...'
내부 매출이 줄 수 없는 또 다른 중요 이유는 '보안'이다. 기업 정보가 주요 자산으로 부각되면서 각종 데이터 관리가 기업 경쟁력으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관리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는 IT서비스 기업들의 태동 이유와도 무관하지 않다. 계열사의 전산실을 통합한다는 취지에 더하여 IT서비스 기업들은 '각 기업의 중요 정보를 스스로 관리,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외부에는 맡길 수 없는 일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려 하다 보니 자연스레 전문성이 요구됐고 이를 위한 해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통합과 전문화라는 카드를 선택했던 것이다.
한 IT서비스 기업 관계자는 "굳이 계열사에 전문 기업을 갖추고 있으면서 내부 데이터 관리를 외부 기업에 맡길 이유가 없다"면서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도한 공익을 주장하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IT서비스산업협회 채효근 실장도 "기업 입장에서는 정보보안 문제가 있기 때문에 계열 IT서비스 기업을 택하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이익률도 5~10% 정도로 부당 이득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수준"이라면서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감 몰아주기' 보다는 전체 시장 구조 바라봐야
대기업의 IT서비스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 대해선 업계 전반적으로 다소 구시대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유효기간이 지난 카드라는 것이다.
'일감 몰아주기'의 피해자(?)로 지목되고 있는 중견 IT서비스 기업들은 오히려 전체 시장 구조를 건전하게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중견 IT서비스 기업 관계자는 "정보보안 문제를 생각하더라도 대기업이 자회사에 사업을 발주하는 것을 막을 순 없을 것"이라면서 "이 부분 보다는 오픈 마켓에서 대형 IT서비스 기업들을 유효하게 견제해 주는 방향이 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 내부 거래를 지금처럼 옥죄인다면 오히려 대형 IT서비스 기업들이 외부 거래에 집중하게 되면서 중견 기업들이 설자리를 줄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를 표했다.
정부가 기업 내부 거래보다는 중견 IT서비스 기업들의 매출고가 되고 있는 공공 분야를 관리 감독해 시장 건전성을 확보하고, 소규모 사업에서는 그에 맞는 규모의 IT서비스 기업들이 사업을 수주할 수 있는 상생 구조를 만드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가령 공공 사업 발주시 입찰 과정에서 가격 담합은 없는지, 저가 출혈경쟁은 발생하지 않았는지, 혹은 대기업이 2040 하한제의 틈새를 파고 들어 소규모 사업을 수주한 적은 없는지를 따져야 한다는 것.
업계 관계자들은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반복적인 문제제기보다는 IT서비스 기업의 위상 변화를 인정하고 내부 매출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에서 벗어나 해외 시장 진출을 통한 산업 파이 확대, 소규모 사업 참여 제한 등 전체 시장에서 IT서비스 기업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구윤희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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