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기자] 지난 19일(현지 시간) 애플의 실적 발표 현장에선 '카니발리즘(cannibalism)'이란 단어가 눈길을 끌었다.
카니발리즘은 원래는 식인주의를 의미하는 말. 하지만 산업계에서 카니발리즘은 한 상품이 다른 상품의 성장세나 점유율을 갉아 먹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날 애플은 '순익 125% 증가'란 어마어마한 성적을 내놔 경쟁업체들의 기를 죽였다. 애플이 엄청난 실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아이폰과 아이패드 판매 호조가 결정적이었다.
지난 분기 아이폰은 2천30만대, 아이패드는 930만대가 판매됐다. 26년 동안 '애플'이란 선산을 지켜왔던 맥은 395만대가 팔렸다.
그러다 보니 아이패드가 맥북 시장을 잠식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팀 쿡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이날 컨퍼런스 콜에서 "아이패드가 맥 판매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일부 고객들이 새로 나온 맥북 대신 아이패드를 구입했다"고 대답했다.
물론 그는 "윈도PC 대신 아이패드를 구매한 고객이 훨씬 더 많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아이패드의 '카니발리즘'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나 다름 없다.
◆아이패드 출시 이후 맥 판매 성장률 주춤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정말 아이패드의 '카니발리즘'이 맥북에까지 영향을 미쳤을까?
이 질문과 관련해 재야 애플 전문가로 꼽히는 아심코가 25일(현지 시간) 의미 있는 분석 그래프를 선보였다. 그 그래프를 중심으로 한번 살펴보자.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맥 출하량은 2009년 중반까지는 분기당 250만대 내외에 머물렀다. 특히 2008년 4분기와 2009년 1분기엔 전년 대비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정도로 부진했다.
하지만 2009년 들어 맥북에어가 본격적으로 인기몰이를 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해 4분기엔 맥 출하량 증가율이 30%를 웃돌면서 고성장세를 구가했다.
맥의 인기는 2010년 아이패드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조금씩 누그러들기 시작했다. 아이패드가 시장에 본격 출하된 것은 지난 해 2분기. 그 무렵부터 맥 출하량 증가세가 조금씩 꺾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팀 쿡이 "지난 분기 일부 고객들이 신형 맥 대신 아이패드를 선택한 것으로 믿고 있다"고 실토한 것도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다. 아이패드의 '윈도PC 카니발리즘'이 훨씬 심하긴 하지만 맥 역시 아이패드 후폭풍의 무풍지대는 아니란 얘기다.
아심코 역시 비슷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는 "맥이 PC시장 평균 성장률의 5배, 윈도PC 성장률의 7.5배에 이르긴 하지만 아이패드 현상의 영향을 벗어나진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결국 관건은 애플이 야심적으로 준비한 맥OS X 새 버전인 '라이언'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냐는 점이다. 애플은 '라이언'과 선더볼트를 탑재한 맥북 에어 새 버전을 내놓으면서 전통적인 컴퓨팅 환경을 뒤흔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라이언'이 카니발리즘 막을 수 있을까
26년 동안 애플이란 '선산'을 묵묵히 지켜온 맥은 지난 분기 매출 규모 면에서도 출시 1년 된 아이패드에 추월당했다. 지난 분기 애플은 총 920만대의 아이패드를 판매해 60억달러 매출을 올렸다. 반면 같은 기간 맥은 390만대가 판매돼 매출 규모가 51억달러 수준에 머물렀다.
이처럼 아이패드가 인기 몰이를 하면서 '터치'를 기반으로 한 모바일 인터페이스가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애플이 차세대 PC 전략의 핵심으로 들고 나온 라이언에 아이폰, 아이패드의 전유물인 '터치 기능'을 대거 수용한 것은 이런 시대 변화를 읽은 때문으로 풀이된다. 라이언은 또 파일 관리도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와 비슷한 방식으로 하도록 했다. 모바일 세대를 겨냥한 '포스트 PC 전략'을 들고 나온 셈이다.
과연 이런 전략이 '아이패드 카니발리즘'으로부터 맥을 구해낼 수 있을까?
다른 PC업체들에겐 '행복한 고민'으로 들릴 지 모르지만, 잘 나가는 애플에겐 '아이패드'와 '맥'의 수요 충돌 문제를 정리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김익현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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