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네이버가 방대한 디지털 아카이브를 오픈하면서 앞으로 국내에서도 '잊혀질 권리'가 화두로 떠오를 가능성이 많다. 자칫하면 '공소시효'까지 지난 사건이 새롭게 많은 이들의 입에서 오르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얼마 전 모 가수의 스캔들 때문에 그 아버지인 또 다른 가수의 30여 년 전 사생활이 만천하에 공개됐다.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의 <잊혀질 권리>는 이처럼 디지털 환경에서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망각의 권리'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이다.
'잊혀질 권리'에 관심이 쏠리게 된 건 물론 디지털 기술의 발전 때문이다. 정보를 찾고 확산하는 데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던 아날로그 시대와 달리 디지털 시대엔 정보 복제, 배포가 순식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본인이 잊고 있던 먼 옛날의 일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례도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저자 역시 이 책에서 한 때 마이스페이스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에 장난처럼 올렸던 글이나 사진 때문에 훗날 피해를 본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소셜네트워크가 보편화하면서 '잊혀질 권리'는 시대의 화두로 떠올랐다.
이 책에서 저자는 디지털 시대의 원형 감옥이 몰고 온 다양한 피해 사례와 함께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디지털 금욕주의와 같은 몇 가지 선택 가능한 대안들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
이 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정보만료일' 제도를 도입하자는 제안이다. 디지털 정보를 입력할 때마다 만료일을 설정해 그 날이 되면 해당 정보가 자동 삭제되도록 설계하자는 것이다. '정보만료일' 제도를 어떻게 도입할까? 이어지는 저자의 설명에 잠시 귀를 기울여보자.
"우리가 디지털 정보 저장 용도로 쓰는 기기들에 정보 만료일을 지원하는 코드를 포함시키는 규정이 필요하다. 또한 사용자들이 디지털 정보를 저장할 때 이러한 만료일 정보를 넣어서 정보의 수명이 만료되면 자동 폐기되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258쪽)
이 책은 디지털 환경에서 지워지지 않는 기록 문제를 다양한 측면에서 다룬 첫 작품이라는 데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유럽과 달리 국내에선 아직 단편적으로 소개되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이 책 출간을 계기로 '잊혀질 권리'에 대해 좀 더 활발한 토론과 논쟁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 지음/ 구본권 옮김, 지식의날개 1만3천원)
김익현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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