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오기자] 얼마 전 국내 인터넷서점을 통해 소설 장르의 전자책을 구매한 적이 있다. 오프라인 책보다 40% 싼 가격이었다. 관련 콘텐츠를 내려 받아 태블릿PC를 통해 콘텐츠를 펼쳤다. 아연실색했다. 문단 구분은 돼 있지 않고 목차도 엉망으로 돼 있고, 글자를 크게 하면 문단 자체가 깨지거나 다음 장을 넘기는데 한참이나 시간이 걸렸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전자책에 작가의 e메일조차 없었다. 한마디로 오프라인 책의 내용을 스캔이나 복사를 통해 그대로 전자문서로 옮겨놓은 것에 불과했다. 이런 전자책을 내놓은 출판사의 그 황당한 ‘무례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같은 전자책은 디지털 시대, 독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은 기막힌 상술이자 독자를 우롱하는 처사에 다름 아니다.
풍요속의 빈곤이다.
가장 먼저는 소통이다. 글이란 기본적 목적이 소통하기 위해 쓰인다. 소통되지 않는 글이란 존재할 이유가 없다. 읽기에는 쓴 사람과 읽는 사람이 있다. 작가와 독자이다. 그동안 작가와 독자는 떨어져 있었다. 독자가 없으면 작가도 존재하지 않으며 작가가 존재하지 않으면 독자도 있을 이유가 없다. 작가와 독자는 아주 긴밀한 소통의 관계에 놓여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작가와 독자는 ‘글을 통해’ 만나지만 서로 소통하는 것에는 소홀했다.
전자책은 작가와 독자의 소통을 한층 더 높여 준다는 면에서 아주 매력적인 장치이다. 디지털이란 최첨단 기기의 향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더 치밀하고, 세심하게 서로 소통하느냐가 디지털의 매력이다. 오프라인 책을 스캔이나 복사를 통해 전자문서로 옮겨놓은 것은 엄밀히 말해 전자책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독자를 더욱 짜증나게 하는 '풍요속의 빈곤'을 느끼게 할 뿐이다.
소통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끈'을 잡고 있어야 한다. 전자책에는 작가와 독자를 맺어주는 ‘끈’을 많이 준비해야 한다. 작가의 e메일은 기본으로 트위터와 연동하기, 관련 커뮤니티와 연결되기 등의 기능을 필히 구비할 의무가 있다. 이런 디지털 장치를 통해 작가와 독자는 언제 어디서나 소통할 수 있다. 소통의 '끈'을 전자책에 다양하게 만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독자들은 작가와 소통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멀티미디어적 기능이다. 디지털은 다양한 멀티미디어적 기능을 선보인다. 오감각을 총 동원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글을 보여주는 시각, 소리를 들려주는 청각, 영상을 보여주는 이미지…여기에다 사전적 기능까지 추가된다면 더 없이 좋은 전자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출판사는 투자를 하지 않는다. 이유는 뻔하다. 잔자책에 돈을 투자해 실익을 거둘 수 있을 지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출판사는 어느 조직보다 보수적인 조직이다. 섣불리 투자하지 않고 자신들이 지닌 기득권에 기대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심지어 독자들을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으로 끌어 들이려는 오만도 가지고 있다. 이제 그런 기득권과 속성은 버릴 때다.
주변의 환경을 둘러보면 왜 버려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태블릿PC가 급증하고 스마트폰이 일상화될 것이라는 통계자료 때문만이 아니다. 독자들은 오랫동안 작가와 소통을 꿈꿔 왔다. 이제 디지털 시대의 읽기에서 독자들은 그것을 알아가고 있다. 이런 독자들의 습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애써 외면한다면 미래의 출판 시장에서 생존하기란 힘들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읽기는 독자와 친밀한 소통이며 그것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만들어주느냐가 경쟁력이다.
/정종오 엠톡 편집장 [email protected]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