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엔진 최적화(SEO)란 말이 있다. 구글 같은 검색엔진에 잘 걸리도록 콘텐츠를 가공하는 것을 말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 파묻힌 콘텐츠 업체들에 SEO는 세상과 연결된 생명줄이나 다름 없다.
그러다 보니 국내 온라인 뉴스에 대한 혹독한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기자 역시 온라인 뉴스 생산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현실에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소셜 미디어가 퀄리티 저널리즘을 되살리는 까닭''소셜 미디어 트래픽'이 늘면서 '퀄리티 저널리즘'이 대접받을 가능성이 엿보인다는 것이 이 기사의 골자다. 근거는 간단하다. 소셜 미디어의 주체는 '평판에 민감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공개된 플랫폼(open platform)에서 활동하려다 보니 '평판에 걸맞은' 것들 위주로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단 얘기다. 각종 SEO 기법들로 오염된 검색엔진보다는 소셜미디어의 추천 품질이 훨씬 양호하다는 게 기자의 주장이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데이터도 제시되고 있다. 자사 사이트를 조사해 본 결과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링크를 타고 들어온 독자들이 검색 엔진을 경유한 독자들보다 체류 시간이 29% 가량 더 길다는 것이다. 또 페이지 뷰 역시 20% 가량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는 독자들이 좀 더 열정적인, 탐구욕 강한 편이란 얘기다. 당연히 피처 기사나 심층 분석 같은 콘텐츠를 더 선호한다.
소셜 미디어가 퀄리티 저널리즘을 되살려낼 것이란 주장은 다소 생소해보이는 측면이 분명 있다. '소셜 미디어=시끄러운 곳'이란 등식이 아주 부당하달 순 없기 때문이다. 확인 덜 된 소문들이 순식간에 유포될 땐 섬뜩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최근의 소셜 미디어 열풍에 대해선 우려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닷컴이면 만사 OK'였던 2000년대 초반의 광풍과 흡사하단 것이다.
하지만 기자는 '실명'을 기반으로 한 추천 시스템이 기계적인 알고리즘보다는 나을 것이란 주장이 웬지 끌린다. 그 동안 트위터나 페이스북 공간에서 접했던 파워 유저들에게서 '양질의 감식안'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미국에선 미술관 큐레이터를 살짝 비튼 '콘텐츠 큐레이터(contents curator)'가 각광받고 있다. 콘텐츠 큐레이터란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읽을만한 것들을 꼭 찝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단순히 콘텐츠를 소개하기도 하지만, 때론 콘텐츠에 의미를 부여해주기도 한다. 트위터 이용자들의 신뢰를 받고 있는 몇몇 파워 트위터리안들 역시 일종의 콘텐츠 큐레이터인 셈이다.
미술 작품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으려면 (감식안 있는) 큐레이터의 눈을 사로잡아야 한다. 그런 점에선 온라인 뉴스도 마찬가지다. 소셜 미디어에서 활동하는 수 많은 '콘텐츠 큐레이터'를 감동시킬 수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에 '다시 문제는 리얼리즘이다'는 캐치프레이즈가 많은 문학도들의 가슴을 울린 적 있다. '디지털 만능시대'인 21세기에 케케묵은 문학 용어를 살짝 비트는 것은 시대 착오적인 행동일까? '아니다'는 쪽에 무게를 실으면서 이렇게 외쳐본다.
"다시 문제는 콘텐츠다."
/김익현 글로벌리서치센터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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