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알지?"
"당연히 알지. 오디오 회사 아냐?"
지난해 인텔코리아가 기획한 재즈 콘서트를 보러가는 길에 친구와 나눈 대화입니다. 컴퓨터 프로세서 업체 '인텔'과 오디오 회사 '인켈'을 헷갈렸나 봅니다. "전세계 대부분의 컴퓨터에 인텔 프로세서가 탑재된다"고 설명해주니 "하긴 노트북에 인텔 스티커 붙어 있었던 것 같다"고 하네요.
이 친구처럼 일반 소비자들 중에는 '삼성 센스'의 삼성전자나 '맥북에어'의 '애플'은 무슨 회사인지 정확히 알고 있지만 이 제품들 속에 중앙처리장치(CPU)를 공급하는 인텔은 어디서 많이 들어보긴 했지만 뭐하는 회사인지 잘 모르는 이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인텔은 사실상 PC 업계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기업인데 말이죠.
대체로 완제품 업체가 시장 주도권을 잡고 부품 업체는 소위 '을'이 되기 마련인데, 인텔은 예외입니다. 인텔이 새 CPU를 출시하는 시점이 곧 전세계 PC의 세대교체 주기가 됩니다. '넷북'이나 '울트라씬' 등 인텔이 만들어낸 마케팅 용어는 PC 업계의 표준어가 되곤 하죠.
인텔 실적이 발표될 때마다 세계 증시가 출렁이는 것도 이 회사가 컴퓨터 산업과 나아가 전체 경제의 바로미터이기 때문이죠. 물밑 거인인 셈입니다.
그럼에도 인텔은 B2B 위주이다 보니 마케팅 메시지를 주로 기술적 설명에 초점을 둬 일반 소비자들의 관심을 크게 받지는 못했습니다. 이들은 맥북에어가 예쁘더라, 삼성 노트북 가격이 내렸더라…이런 정보에 민감할뿐이죠.
인텔은 PC 광고시 자사 로고가 노출되면서 '딩딩딩딩~'하는 인텔 인사이드 광고 외엔 소비자앞에 직접 나서진 않았습니다.
이랬던 인텔이, 걸그룹 대표 아이콘인 '소녀시대'를 아시아권 모델로 영입했다고 하네요. 무슨 심적 변화가 있었을까요?
인텔의 프로세서를 사주는 PC 업체 사장님들이 아닌, 아시아 전역의 '삼촌'들을 비롯한 일반인들에게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게 당장 매출 증대에 도움이 되진 않을텐데 말이죠.(물론 사장님들도 소녀시대를 대환영하겠지만).
앞서 인텔은 지난해 재즈 음악가 남궁연과 함께 트위터로 관객을 모아 '재즈2.0' 콘서트를 기획하고 후원하는 등 '감동이 있는 대중 마케팅'에 한창 역량을 쏟았습니다. '크리에이터 프로젝트' 행사를 개최하며 예술가들을 후원하기도 했죠. 인텔코리아 홍보담당자는 지난해부터 부쩍 트위터를 열심히 하며 타임라인을 도배하곤 했습니다
이미 인텔 프로세서는 전세계 80~90% PC에 탑재돼 있고, 나머지 10~20% 시장마저 노린다는 단순한 계산은 아닐거라 봅니다. 그것만 목적이라면 소녀시대 영입 예산을 차라리 PC 업체 대상 마케팅에 쓰겠죠.
'마음을 움직여야 승리한다'는 공식 실천의 일환으로 보입니다. 인텔이 컴퓨터 뿐 아니라 모바일, 자동차, 생활 가전 등 무궁무진한 대중 영역으로 진출을 앞둔 상황이기에 더욱 그렇죠.
인텔코리아 박성민 마케팅 상무는 "향후 PC 뿐 아니라 다양한 시장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대중들에게 좋은 이미지와 신뢰를 얻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특히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모바일 시장을 대대적으로 개편해 버린 '아이폰'발 업계 변화에 인텔은 민첩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마음을 얻어야 승리한다고 증명된 이 시장에서 말이죠.
지난해 9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인텔개발자회의 2010(IDF 2010)'에서도 기술적 설명보다는 '인류학'을 크게 강조했습니다. 이 행사에서 인텔의 저스틴 래트너 CTO는 "아이폰을 통해 기술 자체보다 이 기술로 사람이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프로세서에 코어수와 클럭스피드가 얼마고 전력효율이 얼마고…이런 메시지만으로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텔? 오디오 회사?"라는 오해를 끌어내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소녀시대, 재즈, 예술가, 인류학같은 익숙하면서도 마음을 움직일만한 키워드를 말할때 '인텔'이란 회사가 떠오른다면, 뭔가 어려워서 와닿지 않았던 기업이 어느덧 소비자들의 인지 속에 스며들어가겠죠.
이런 내막들을 거쳐 이뤄진 컴퓨터 프로세서 업체와 소녀시대의 만남. 얼핏 생각하면 잘 어울리지 않을 듯한 이 조합이, 더 이상 전문가들만의 영역이 아닌 IT 업계에 귀감이 될지 주목됩니다.
강현주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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