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가 와이브로를 살리겠다며, 방송통신위원회에 국제표준에 맞는 신규 주파수(2.5㎓)와 신규 대역폭(10㎒)을 요구하고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와이브로 신규 주파수는 새 사업자가 나오면 할당될 것으로 보였는데, 기존 사업자인 KT가 먼저 요구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요구가 방통위의 800·900㎒ 등 저주파수 할당 및 재배치 및 와이브로 투자이행 점검 시점과 맞물리는 데다, KT가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한 와이브로 설비임대를 추진중인 상황에서 나와 KT가 와이브로 전국망 구축이나 음성탑재에 긍정적인 태도로 바뀐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KT 고위 관계자는 "와이브로 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전제는 맞지만, 음성서비스가 가능할 정도로 촘촘하게 전국망을 구축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석채 KT회장은 요즘 차 안에서 와이브로를 시연하다 잘 안되는 곳이 나오면 "우리 돈을 들여서라도 잘 되게 하라"고 말하는 등 투자를 촉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상황이 그러할 때 KT의 행보는 명확해져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부 예산은 아니지만, KT에 와이브로 장비를 빌려주는 SPC의 재원은 기업은행이나 산업은행 같은 공적자금이기 때문이다.
KT로서는 와이브로의 실제 수혜자는 통신업체가 아닌 콘텐츠와 제조업체이니 '정부가 공적자금을 넣어라'고 압박할 수 있겠지만, 특혜 논란에 휘말릴 우려와 함께 실패한다면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또한 정병국 한나라당 의원이 제기한 바 있는 망분리 요구가 다시 나올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와 함께 특정 기술이나 서비스의 성패를 시장이 아닌 국가 개입으로 해결하는 건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에따라 정부는 신규 주파수 할당이나 투자이행 시정 명령을 넘어서는 구체적인 와이브로 생태계 복원 전략을 만들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KT, 공적자금 빌려 와이브로 망투자...정부, 마케팅비 지원 불가
KT는 현행법상 문제를 피하기 위해 SPC가 와이브로 장비를 구입하고 KT가 이를 빌려 망을 구축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설비에 대한 소유는 SPC가 갖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KT가 이를 인수한다.
방송통신위 고위 관계자는 "지난 7월 발표때처럼 SPC가 직접 와이브로망 구축에 나서는 건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에 저촉되지만, KT가 SPC가 소유한 장비를 빌려서 망구축에 나서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와이브로가 국책사업이라고 해도 마케팅비 등을 정부예산으로 보조해 주는 건 논란이 커질 수 있다"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KT는 방송통신위에 와이브로용으로 2.5㎓와 대역폭 10㎒을 요구하면서, 7~8천억원의 투자가 필요하다며 정부차원의 단말기 등 마케팅 비용 지원을 언급한 것으로 알져졌는 데 이는 적절치 않다는 의미다. KT는 또 방통위에 대역 변경시 기존 장비교체에 필요한 1천750억원의 비용(수도권)을 재할당 대가에서 감면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KT가 SPC와 신규주파수를 동원해 와이브로 활성화에 나서겠다고 하자, SK텔레콤의 고민도 커져가고 있다.
SK텔레콤 한 임원은 "주파수를 2.3㎓에서 2.5㎓로 바꾸면 일정기간 동안 장비 개발 등의 이유로 투자가 지연된다"며 "(KT가 투자이행점검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시간을 벌자는 의미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 단말기·콘텐츠 생태계 복원에 힘써야
정부는 지난 2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IT코리아 5대 미래전략'을 보고하면서, '효과적인' 와이브로 전국망 구축 추진을 언급했다.
따라서 KT의 2.5㎓할당 요구나 SPC를 통한 장비 임대 등은 정부와 상당부분 조율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와이브로는 본질적으로 데이터통신망이고 인터넷 생태계 복원이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만큼, 정부는 KT에 대한 망구축 지원 이상의 것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와이브로 게임기 업체 한 사장은 "투자를 받으려 해도 도로(전국망)도 안깔려 있는데 무슨 자동차(단말기) 개발이냐는 이야기를 듣는다"며 "와이브로를 살리려면 정부는 와이브로 콘텐츠나 단말기 업체에 대해 획기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휴대폰과 달리 와이브로 단말기는 게임용, 네비게이터 등 개인이 여러 개를 보유할 수 있는데 현행 와이브로 단말기 기술기준에는 가입자식별모드(USIM)장착이 의무화돼 있어 데이터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유무선 초고속망이 잘 발달된 우리나라에서는 와이브로 전국망 구축 강제보다는 행안부 등과 함께 공공서비스 수요 창출에 나서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방통위 고위 관계자는 "데이터통화료를 인하시키면 KT와 SK텔레콤이 와이브로망에 투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현대중공업이 와이브로를 이용한 기업내 데이터서비스를 하려고 했을 때 통신회사들은 수익이 안 난다면서 거부하는 등 데이터 활성화보다는 안정적인 음성수익을 보장받는 데만 관심있다"고 비판했다.
김현아기자 [email protected]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