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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늙은 경제와 새 대통령


[아이뉴스24 이균성 기자] 한국은행이 지난 25일 기준금리를 0.25%p 인하했다. 2~3회 더 추가 인하할 가능성도 시사했다. 그만큼 경기가 안 좋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1.5%로 0.4%p 낮춰잡았다.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1.8%에 불과하다.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 경제의 현주소를 가리키는 수치들이다. 이창용 총재는 “그것이 우리 실력”이라고 말했다. 우리 경제 구조에서 그 이상의 기대는 어렵다는 의미다.

이 총재는 “새로운 산업 없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지난 10년간 새 산업이 도입되지 않았다”고도 했다. 새로운 성장 발판을 키우지 않았기에 저성장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거기서 빠져나올 방법 또한 새 산업을 육성하는 것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정부가 가장 뼈아프게 느껴야 하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새 산업 육성에서 정부 역할이 적지 않다고 판단한 셈이다.

지난 1일 오전 부산항 신선대·감만·신감만부두. 수출입 화물 컨테이너가 가득 쌓였지만, 한국 경제처럼 뿌옇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일 오전 부산항 신선대·감만·신감만부두. 수출입 화물 컨테이너가 가득 쌓였지만, 한국 경제처럼 뿌옇다. [사진=연합뉴스]

이 지적은 타당하고도 중요해 보인다. 이 총재는 “지난 10년간”이라고 말했지만, 어쩌면 “지난 20년간”일지도 모른다. 김영삼 정부가 촉발한 국제통화기금(IMF) 환란 위기 속에서 출범한 김대중 정부의 초고속인터넷 구축 사업이 성공한 ‘새 산업’ 육성 정책의 마지막으로 보인다. 그 이후에도 성장동력이나 혁신이라는 말은 난무했지만 어떤 정부에서도 이렇다 할 ‘새 산업’의 발판을 마련하지 못했다.

2000년 이후 4반세기가 지날 동안 우리 경제에서 새롭게 성장한 기업을 보면 알 수 있다. 초고속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기업 말고 무엇이 있는가. 초고속인터넷을 바탕으로 새로운 투자와 고용을 일으키며 우리 경제와 국민의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었던 기업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던 게 벌써 25년 전이다. 그게 마지막이다. 그 이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5년에 1%p씩 낮아지는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늙으면 힘이 빠지고 아프게 마련이다. 그런데 사람은 늙으면 아프다 죽어야 하지만 기업은 나이가 들어도 더 정정해질 수 있다. 새 피(아이디어·기술·인력·자본)를 수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쉬운 일은 아니다. 혁신은 어렵고 관성은 힘이 세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혁신과 관성의 기로에 선, 나이 들고 늙은 기업에 기대 근근히 버틴다. 그것이 저성장 경제의 현주소다.

경제의 성장성이 떨어지면 사회는 더 분열되고 갈등이 끊기지 않는다. 생산자의 생존을 위해 소비자의 희생이 요구되는 분위기가 확산하기 시작하면 성장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월급 말고 다른 모든 물가가 오르니 소비자는 지갑을 자주 열 수 없고 결과적으로 생산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성장은 안 되는데 물가는 오르고 다시 성장률이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이 총재가 우려한 게 그거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탄과 느닷없는 계엄으로 인한 국정 혼란은 이미 늙어버린 우리 경제 구조에는 엎친 데 덮친 꼴이다. 하지만 극복 못 할 일만은 아니다. 트럼프는 외생 변수다. 우리가 좌지우지할 수 없다. 최선의 대응 전략을 찾을 수밖에 없다. 국정 혼란은 우리 문제다.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문제가 어느 정도로 악화한 것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우리는 아마도 곧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할 것이다. 새로운 선거는 우리 경제가 일본처럼 ‘잃어버린 30년’으로 가느냐, 아니면 선진국병을 깨닫고 새로운 성장의 길로 나아가느냐를 가르는 중대 분수령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걱정하지 않는다. 국민이 지킬 것이다. 위태롭긴 하지만 이번 내란에서 그 저력을 다시 체감하게 됐다. 기업도 걱정하지 않는다. 기업 개별적으로 생존본능을 발휘할 것이다.

중요한 건 ‘새 산업’이다. 개별 기업이나 국민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유능한 정부라야 해낼 수 있는 일이다. 그 점에서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한테 요구되는 시대정신이 무엇이겠는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 키워드는 3개라고 본다. 기술과 자본과 사람. 기술은 산업의 뿌리이고, 자본은 그 젖줄이며, 사람은 창조자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대통령과 그 집단이 나라를 이끌게 하라.

정치권은 그걸 놓고 경합하라. 구시대의 추상적인 늙은 망령으로 국민을 현혹하려 하지 마라. 어떤 새로운 산업을 무슨 방법으로 일으켜 국민이 더 따뜻하게 살 수 있도록 할 것인지 구체적인 설계도를 내놓고 토론하고 경쟁하라. 서로 개처럼 물어뜯으며 허무한 말싸움만 하지 말고 ‘제2의 한강의 기적’이든 ‘제2의 초고속사업’이든 나라 경제를 튼튼히 할 실용적인 정책 대결로 국민께 표를 구하라.

/이균성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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