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강지용 기자] '주요국들이 날아갈 때 대한민국은 걸어가고 있다.'
올해 전기자동차 시장 동향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이와 같다. 북미와 유럽 제조사들의 전기차 판매가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세 자릿수의 성장률을 기록할 동안 국내 업체는 제자리걸음에 가까운 성장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가 발표한 '2023년 상반기 미국 전기동력차 시장동향'에 따르면 국내 전기차 브랜드는 올 상반기 미국 시장에서 3만6886대 판매에 머물렀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9% 성장했으나, 시장 점유율(PHEV·FCEV 포함)은 7.2%로 집계돼 오히려 3.3%포인트(p)나 쪼그라들었다.
이 기간에 북미 제조사의 전기차 판매는 전년 대비 55.8% 성장했다. 실적 견인의 일등공신은 역시 테슬라였다.
모델Y와 모델3가 미국 시장 판매 순위 1위와 2위를 기록했고, 이 두 모델의 합산 점유율은 전체 전기차 판매의 절반이 넘는 56%로 집계됐다. 아울러 유럽계 브랜드는 전년 대비 125.5% 증가해 세 자릿수 성장률을 찍었다. '전기차 지각생' 일본 업체들 역시 111.1%나 성장했다.
우리 업계의 실적 부진은 예고됐던 시련이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상 세액공제 방식의 보조금을 받지 못한 영향이라고 업계와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풀이한다. 북미 내에서 제품을 생산해야 1대당 최대 7500달러를 받을 수 있다. 한화로 1000만원에 육박하는 금액이기 때문에 현대차·기아의 제품이 북미산에 비해 가격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쉽지 않다.
현대차그룹은 북미에 전기차 전용 공장이 없다. 현재 단 한 차종도 보조금 대상이 아니다. 짓고 있는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 가동 전까지 최대 격전지 북미에서 고전할 수밖에 없다. 다만 미국 정부가 추가 지침을 통해 리스 등 상업용 차량은 보조금 조항의 예외로 두기로 해 숨통은 트였다. 현대차·기아도 이 틈새를 공략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 정부의 안일한 인식이다. 그간 정부는 IRA 보조금 배제가 현대차그룹 미국 판매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주장해 왔다.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미와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IRA 문제를 핵심 의제로 다뤄야 한다는 여론이 주를 이루자,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돼 얻어낼 것이 없다는 취지로 발표해 빈축을 샀다.
정상회담이 마무리된 뒤 이번에는 일각에서 "IRA 해법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자,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이 진화에 나섰다. 브리핑을 통해 "한국 기업의 부담과 불확실성을 줄여준다는 방향에 대해 양 정상이 명확히 합의했다"며 "우리 기업에 예외적 조치를 하기 위해서는 세부적인 국가 간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상 간의 합의와 지침 확인이 우선이며, 구체적인 조치는 그 이후에야 나올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로부터 5개월여가 지났다. 통계로 확인되듯 우리 기업들의 피해가 현실이 됐지만, 예외적 조치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 사이 한국은 미국이 IRA로 성과를 내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국가로 등극했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이후 현재까지 발표된 외국기업의 대미 투자 계획 중 1억달러(약 1340억원) 이상 규모를 집계한 결과, 한국 기업이 내놓은 프로젝트가 20건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연합(EU) 회원국 기업들의 프로젝트가 19건으로 뒤를 이었다. 유럽 전역의 투자 약속보다 한국이 더 많은 것이다.
이런 한국을 미국은 어떻게 대하고 있나. 취임 후 윤 대통령은 빈번하게 바이든 대통령을 만났으나 경제적 실익을 별로 챙기지 못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의 "(한미 정상회담이) 말의 성찬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정곡을 찌른다.
지난 13일 정대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는 한국을 방문한 라민 툴루이 미국 국무부 경제·기업 담당 차관보를 만나 IRA 등 양국간 산업·통상현안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 이제라도 늦었지만 일말의 예외 조치라도 얻어 내야 한다.
윤 대통령은 현재 미국에서 유엔(UN) 총회 참석 등 순방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이번 일정에 대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달내 가장 많은 정상회담을 연 대통령으로 기네스북 등재를 신청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국민은 그보다 윤 대통령이 '외교 무대에서 가장 많은 실익을 얻어낸 대통령'으로 기록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강지용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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