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차세대 모빌리티 분야를 주도하기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섰다. 3년 전 만나 논의했던 협력 방안의 결실이 점차 가시화되는 분위기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분야에서, 삼성디스플레이는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를 공급하며 현대자동차와의 협력에 나선다.
◆ 든든한 우군 얻은 삼성…현대차 손잡고 전장 시장서 존재감 드러내
우선 삼성전자는 현대자동차의 차량에 프리미엄 인포테인먼트(IVI, In-Vehicle Infotainment)용 프로세서인 '엑시노스 오토(Exynos Auto) V920'을 공급한다. 양사는 2025년 공급을 목표로 협력할 예정으로, 양사가 이 분야에서 협력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엑시노스 오토 V920'은 삼성전자의 프리미엄 IVI용 프로세서로 이전 세대 대비 대폭 향상된 성능으로 운전자에게 실시간 운행정보는 물론 고화질의 멀티미디어 재생, 고사양 게임 구동과 같이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지원해 최적의 모빌리티 경험을 제공한다.
특히 이번 제품은 Arm의 최신 전장용 중앙처리장치(CPU, Central Processing Unit) 10개가 탑재된 데카코어(Deca Core) 프로세서로 기존 대비 CPU 성능이 약 1.7배 향상됐다.
또 고성능·저전력의 LPDDR5를 지원해 최대 6개의 고화소 디스플레이와 12개의 카메라 센서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최신 그래픽 기술 기반의 차세대 그래픽처리장치(GPU, Graphics Processing Unit)도 탑재해 이전 대비 최대 2배 빨라진 그래픽 처리 성능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사용자는 고사양의 게임을 비롯해 더욱 실감 나는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 Graphical User Interface)를 경험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엑시노스 오토 V920'에 최신 연산코어를 적용해 신경망처리장치(NPU, Neural Processing Unit) 성능 또한 약 2.7배 강화했다. 운전자 음성을 인식하고 상태를 감지하는 운전자 모니터링 기능은 물론 주변을 빠르게 파악해 사용자에게 더욱 안전한 주행 환경을 제공한다.
또 '엑시노스 오토 V920'은 차량용 시스템의 안전기준인 '에이실-B' (ASIL, Automotive Safety Integrity Level)를 지원해 차량 운행 중 발생 가능한 시스템 오작동을 방지하는 등 높은 안정성을 제공한다.
이 외에도 삼성전자는 '엑시노스 오토' 시리즈를 폭스바겐, 아우디 등에도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재걸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부사장은 "현대자동차와의 이번 협력을 통해 인포테인먼트용 프로세서 시장에서의 리더십을 공고히 다질 수 있게 됐다"며 "운전자에게 최적의 모빌리티 경험을 제공하는 최첨단 차량용 반도체 개발과 공급을 위해 전 세계 다양한 고객 및 파트너사와 협력을 지속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디스플레이도 최근 현대자동차와 손잡고 차기 '제네시스' 모델에 OLED를 공급키로 했다. 업계에선 운전석 등에 적용될 가로로 긴 25인치 OLED를 공급할 것으로 예상했다.
앞서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 2021년 현대차 '아이오닉5'에 디지털 사이드미러 모니터용 OLED를 공급하며 고객사로 두고 있었다. 이번에는 운전석 계기판과 센터페시아(운전과 조수석 사이 조작부)까지 포함되며 더욱 넓은 영역에 삼성디스플레이 제품이 활용된다. 또 현대차 프리미엄 브랜드인 '제네시스'에 처음으로 제품이 공급된다는 점에서도 업계에선 높게 평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프리미엄 브랜드 완성차 업체일수록 가격이 비싸지만 내구성이 좋고 시야 확보에 유리한 OLED를 채택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최근 페라리와 공급 계약을 맺은 삼성디스플레이가 제네시스까지 영역을 넓히면서 시장 내 우위를 선점하는 듯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 못 다한 '자동차 마니아' 이건희 꿈…이재용, 전장사업 확대로 이뤄
이처럼 재계 1위 삼성과 3위인 현대차가 최근 활발한 협력에 나서고 있는 것은 두 그룹을 이끌고 있는 총수들의 역할이 컸다. 이 회장과 정 회장은 지난 2020년 5월 첫 단독 회동을 기점으로 수 차례 만남을 가지며 미래차 사업 분야 협력을 논의했다.
이전까지 삼성과 현대차는 과거 수직계열화 시기 현대의 반도체산업, 삼성의 자동차산업 진출 등으로 경쟁 관계였다. 이 탓에 차량 부품업체 하만으로부터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카오디오를 공급 받았던 현대차는 삼성전자가 2017년 하만을 인수하자 협력사를 LG전자, 보스(BOSE) 등으로 교체하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과 현대차가 각각 해당 사업을 접으면서 경쟁 분위기는 다소 약화됐다. 또 이 회장과 정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성과가 나오고 있는데, 지난 2021년 현대차 첫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5'에 디지털 사이드미러용 OLED 공급한 것이 협력의 시발점이 됐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가 전기차, 자율주행차로 발전하면서 삼성과 현대차에서 갈등보다 협력이 훨씬 더 큰 시너지와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고 판단,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며 "LG·SK와 달리 현대차와 거래가 거의 없는 배터리 등 차세대 먹거리 사업 분야를 중심으로, 삼성이 현대차와 전장 부품 분야 협력을 더 확대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현대차 역시 테슬라 질주로 격화된 미래차 기술 경쟁에서 앞서가기 위해선 배터리를 포함해 첨단 부품 업체들과의 협력이 필수"라며 "2030년까지 전기차 364만 대를 생산해 글로벌 톱3 업체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만큼 앞으로 삼성 외에도 파트너들을 더 보강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일로 삼성은 이 회장이 공들이고 있는 전장 사업 확대에 더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은 전장 사업의 성장성을 높게 보고 하만 인수를 통해 시장에 첫 진입했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 등에 따르면 글로벌 전장부품 시장은 2024년 4천억 달러(약 527조원)에서 2028년 7천억 달러(약 923조원)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이 회장은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을 직접 찾아 전장용 MLCC(적층세라믹커패시터) 시장 선점에 적극 대응할 것을 주문하는 등 관련 사업 확장에 각별히 힘을 쏟고 있다. 최근에는 완성차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남을 이어가며 직접 세일즈까지 나섰다. 지난해 올리버 집세 BMW그룹 회장을 만난데 이어 지난달 10일 미국 실리콘밸리를 찾아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회동했다.
특히 삼성과 테슬라는 완전자율주행 반도체 공동 개발을 비롯해 차세대 IT 기술 개발을 위한 교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이 회장과 머스크의 만남을 계기로 삼성의 전장용 시스템반도체 영토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간헐적으로 이뤄지던 삼성전자와 완성차 업체의 협력이 자동차 전장화·지능화로 더 넓고, 깊게 확대될 것 같다"며 "고 이건희 선대회장의 자동차 사업 확장에 대한 꿈이 이재용 회장의 전장 사업으로 활짝 펼쳐진 듯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장유미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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