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민혜정 기자] 반도체 시장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잠잠하던 업체간 인수·합병(M&A) 움직임이 최근 들어 감지되고 있다. 전기차 판매 확대로 활용도가 높아진 차량용 반도체 업체가 인기 매물로 부상했고, 반도체 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M&A로 규모의 경제를 이뤄보겠다는 기업도 나타나고 있다.
5일 로이터 등에 따르면 독일 차량용 반도체 업체 인피니언은 약 4조원 규모로 반도체 기업 M&A를 추진하고 있다.
요헨 하네벡 인피니언 CEO는 최근 독일 포커스머니 매거진과 인터뷰에서 "최대 30억 유로 규모로 M&A를 검토하고 있다"며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인피니언은 전기차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실리콘카바이드(SiC) 반도체 투자에 힘을 쏟고 있다. 생산량을 확대하기 위해 말레이시아 쿨림에 20억 유로(약 2조9천억원) 규모의 공장을 짓고 있다. M&A도 이같은 전략의 일환이 될 가능성이 크다.
탄화규소 기반의 SiC 전력반도체는 기존 규소(Si) 전력반도체보다 전압 10배와 수백도 고열을 견딜 수 있다. 두께도 10분의 1 수준이다. SiC 전력반도체는 전기차 에너지 효율을 약 7% 개선해 전기차 핵심 부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테슬라는 전체 전기차에서 3분의 1에 SiC 전력반도체를 도입했다.
세계 자동차 부품 업체 1위 보쉬는 지난달 미국 SiC 반도체 업체인 TSI를 인수했다. 보쉬는 구체적인 인수액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차량용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TSI를 인수했으며 향후 15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보쉬는 반도체 기업으로 전환을 꾀하고 있다. 오는 2026년까지 30억 유로를 반도체 생산에 투자할 계획이다. 특히 차량용 반도체 주력할 예정이다.
낸드플래시 반도체 세계 2위인 일본 키옥시아와 4위인 미국 웨스턴디지털의 합병 논의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두 기업의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3분기 기준 키옥시아가 20.6%, 웨스턴디지털이 12.6%다. 단순 합산하면 삼성전자(31.4%)를 뛰어넘는다.
두 기업의 합병 소식이 다시 본격화한 데는 반도체 시장 불황 영향이 크다. 양사는 2021년 합병 협상을 진행했으나 가치평가 등에 대한 의견 차로 인해 불발됐다.
결렬된 논의는 지난해부터 금리가 오르고 전세계적으로 반도체 수요가 감소하면서 다시 시작됐다. 반도체 가격이 떨어질수록 손실을 버틸 수 있는 기업 규모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도 연초부터 M&A를 추진하고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1월 CES에서 "지난해에는 대외 환경 이슈가 많았다"며 "M&A는 잘 진행되고 있으니 좋은 소식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물론 현재 시장 여건이 M&A에 좋은 상황은 아니다. 업체마다 실적 악화로 자금 출혈이 여의치 않고, 반도체 패권주의로 각 국마다 M&A 승인에 깐깐한 잣대를 들이밀고 있어서다. 그러나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성장을 위해 지금이 M&A 적기일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시장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차량용 반도체 수요는 견고해서 이 분야 투자나 M&A는 다른 분야보다 활발한 분위기"라며 "또 대형 기업은 현재 같은 분위기에서 모험을 걸어 점유율 확대를 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민혜정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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