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우리 삼성은 사회와 함께 해야 합니다. 고객과 주주, 협력회사, 지역사회와 함께 나누고 더불어 성장해야 합니다."
삼성이 지역 균형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전국에 위치한 계열사 사업장을 중심으로 향후 10년간 총 60조1천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평소 '동행' 경영 철학을 강조해 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취임 직후 밝혔던 진심이 대규모 지역 투자로 이어진 모습이다.
삼성은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삼성전기 등 삼성 계열사들이 앞으로 충청·경상·호남 등에 위치한 주요 사업장을 중심으로 제조업 핵심 분야에 각각 투자할 예정이라고 15일 밝혔다.
이번 투자 계획은 ▲지역 풀뿌리 기업과 산업 생태계의 경쟁력을 높이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지역 산업을 진흥함으로써 ▲지역 균형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특히 삼성은 반도체 패키지, 최첨단 디스플레이, 차세대 배터리, 스마트폰, 전기부품, 소재 등 지역별로 특화 사업을 지정해 투자를 집행함으로써 각 지역이 해당 분야에서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또 투자 외에 지역 기업의 자금, 기술, 인력 등을 입체적으로 지원, 육성함으로써 회사와 지역 경제가 더불어 성장하는 '지속가능한 상생 모델'을 구현해 나갈 방침이다.
삼성의 이번 투자 계획은 '비수도권'이 대상으로, 각 지역을 '글로벌 생산거점'으로 도약시키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투자 대상은 반도체 패키지, 최첨단 디스플레이, 차세대 배터리, 스마트폰, 전기부품, 소재 등 삼성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수출 산업으로, 대한민국의 경쟁력과 직결되는 미래 산업이기도 하다.
이번 투자를 통해 삼성은 각 분야의 글로벌 초격차를 유지·확대하고, 충청·경상·호남 등 지역은 첨단 수출 산업이자 미래 산업의 '글로벌 생산거점'으로서의 입지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의 투자 계획은 '지역과의 상생', 수도권과 비교한 지역 균형 발전 차원을 넘는다"며 "대한민국의 다양한 지역별 특화 산업의 '글로벌 생산 거점' 도약을 통해 궁극적으로 '제조강국 대한민국'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도 담겼다"고 평가했다.
◆삼성 전 계열사, 지역 살리기 '총 출동'…"글로벌 기지로 활용"
삼성의 이 같은 움직임은 미래 생존과 대한민국 지역의 글로벌 도약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각 지역별로는 충청권에서 ▲반도체 패키지 특화단지 ▲첨단 디스플레이 클러스터 ▲차세대 배터리 마더 팩토리(Mother factory) 등을 조성하기로 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반도체 패키지 분야 경쟁력 제고를 위해 천안·온양 사업장의 차세대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하고, 생산량 확충을 위한 시설 투자를 확대할 예정이다. 차세대 반도체 패키지 기술은 난도가 높고 파운드리·소재·장비 분야의 파트너 회사들과 긴밀한 협력이 중요해 향후 국내 반도체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 제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패키징(반도체 칩을 전자기기에 부착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공정)은 '후공정'으로 불리며 팹리스(설계)나 파운드리(생산) 등 전공정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반도체 업체간 '미세공정 경쟁'이 기술적인 난제와 엄청난 비용이라는 문제는 물론 주요 IT 업체들이 독자 칩을 개발하는 추세까지 본격화하면서 맞춤형 반도체를 공급할 수 있는 첨단 패키징 역량은 반도체 사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했다. 단일 칩에서 구현할 수 있는 기술적인 난제가 급증하면서 오히려 여러 종류의 반도체 칩을 하나의 기판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담을 수 있는가가 중요해진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천안·온양의 '반도체 패키지' 사업 투자는 파운드리 사업에서도 글로벌 1위로 도약하기 위한 삼성전자의 장기 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중소형 IT기기 ▲TV·디지털 사이니지 등 대형 기기 ▲VR(가상현실) 및 AR(증강현실)을 비롯한 신규 디지털 기기 등 다양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아산에 '디스플레이 종합 클러스터'를 구축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아산 지역에서 OLED, QD(퀀텀닷) 등 최첨단,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비중을 확대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아산의 '디스플레이 클러스터 구축'은 반도체와 함께 대한민국 산업 경쟁력을 상징해 온 '디스플레이 산업'의 기술 리더십을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며 "'디스플레이 산업의 미래가 시작되는 대한민국, 아산'이라는 글로벌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도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삼성SDI는 차세대 배터리 기술 연구 및 양산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천안에 기존의 리튬이온 배터리에 비해 용량이 크고 더욱 안전한 '전고체 배터리' 마더 팩토리 등을 구축할 예정이다. '마더 팩토리'는 첨단 생산 기술과 핵심 공정을 선제적으로 개발, 적용해 해외 생산 공장으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는 '글로벌 표준 공장'이자 '핵심 생산 기지'다.
삼성전기는 전자회로 패키지 기판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제품 부가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세종에 생산 거점을 확대할 예정이다.
경상권은 ▲차세대 MLCC 생산 거점 ▲글로벌 스마트폰 마더 팩토리 ▲고부가가치 선박 생산 거점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삼성전기는 MLCC용 핵심 소재 내재화를 위한 연구에 집중 투자해 부산을 '첨단 MLCC 특화 지역'으로 육성할 예정이다. MLCC(Multi-Layer Ceramic Capacitor, 적층 세라믹 캐피시터)는 현재 일본 업체들이 글로벌 시장의 약 60%를 점유하고 있는 시장으로, 이번 투자는 급성장하는 MLCC 시장에서 삼성을 비롯한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영향력 확대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MLCC는 전자 회로가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전류 흐름을 일정하게 조절하고 부품 간 전자파 간섭을 막아주는 핵심 부품으로, 대부분 전자제품에 들어가 '전자산업의 쌀'로 불린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는 현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삼성이 '부산'을 글로벌 MLCC 생산의 거점으로 끌어올리고자 한 듯 하다"며 "삼성과 부산의 'MLCC 글로벌 명가' 도약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현재 갤럭시S23, 폴더블폰 등 삼성전자의 프리미엄 플래그십 스마트폰을 연간 1천600만 대 생산 중인 구미사업장을 '글로벌 스마트폰 마더 팩토리'로 구축할 계획이다. 또 구미에서 개발한 생산 기술을 전 세계의 생산 공장으로 확산시킬 예정이다.
더불어 삼성전자는 경북대 등 지역 대학들과 계약학과를 운영해 지역 IT 인재 양성을 지원하고 지역 내 고용을 확대하기로 했다.
삼성SDI는 구미를 QD 등 반도체·디스플레이용 첨단 소재 특화 생산 거점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특히 TV, 반도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생산에 사용되는 전자 소재 경쟁력을 강화하고, 차세대 에너지용 첨단 소재까지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추가 투자를 집행하기로 했다.
또 울산에선 배터리 성능을 결정짓는 '양극활 물질' 등 배터리 핵심 소재에 대한 연구와 생산 시설 투자를 확대할 방침이다.
삼성중공업은 LNG 운반선 등 고부가 제품 중심으로 수주를 확대해 회사 수익성을 개선하는 한편, 양질의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거제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방침이다.
호남권은 스마트 가전 제품 중심으로 생산량을 확대해 삼성의 미래 가전 사업에서 더욱 큰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삼성전자는 현재 광주사업장에서 생산 중인 가전제품을 프리미엄 스마트 제품 중심으로 확대·재편해 '글로벌 스마트 가전 생산 거점'으로 육성할 방침이다.
◆정점 찍은 이재용 '동행' 철학…"韓 신성장 엔진 마련 계기 될 것"
삼성의 이 같은 결정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영향이 컸다. 이 회장은 지난해 10월 말 취임 이후 다양한 지방 사업장을 둘러보며 생산 현장을 점검하고 임직원들과의 대화를 통해 각 업종별, 사업장별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해 왔다.
또 이 회장은 취임 후 첫 현장 행보로 삼성전자 광주사업장과 지역 협력회사를 방문하는 등 '지역·협력회사·중소기업'과의 미래 동행 의지를 피력해 왔다.
재계에선 이번 일을 두고 삼성의 계열사가 뿌리 내리고 있는 각 지역의 산업 생태계를 육성하는 것이 삼성의 미래 경쟁력에 직결된다는 이 회장의 경영철학이 반영된 행보라고 분석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의 60조1천억원 투자계획은 '지역, 협력회사, 중소기업'과 함께 글로벌 도약을 이루기 위한 삼성의 '10년 청사진'이 구체화된 것"이라며 "이번 투자는 지역과 협력업체, 중소기업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 경제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삼성은 이번 투자 외에도 지역 및 지역 기업과의 '미래 동행'을 위해 자금과 기술, 인재 등 기업 활동에 필수적인 입체적인 지원도 전개하고 있다. 특히 2조4천억원 규모의 '상생 펀드'는 지역 기업을 포함한 국내 중소 협력회사들의 설비투자 및 기술개발 자금을 지원하며 지역 발전에 힘이 되고 있다.
또 삼성은 그동안 1조원 규모의 '물대 펀드'를 조성해 납품대금과 운영자금도 지원해 왔다. 올해 운영이 종료되는 '물대 펀드'를 대신해 1조원 규모의 'ESG 펀드'를 신규로 조성해 지역 중소기업들의 온실가스 감축 및 ESG 투자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더불어 삼성은 기술적 지원에도 힘을 쏟고 있다. '스마트공장 구축 지원 사업'이 대표적인 예로, 삼성과의 거래 관계 여부를 떠나 중소∙중견 기업들에게 삼성의 제조 혁신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3천여 개 업체를 지원했으며 지원 받은 업체들은 높아진 제조 경쟁력에 기반해 생산성과 매출을 끌어올리며 일자리를 창출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삼성은 중소기업들이 삼성의 특허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양산할 수 있도록 기술설명회도 진행하고 있다. 또 지난해까지 중소기업 2천여 개 사에 특허 1천800건을 무상 양도했다.
지방의 미래 인재 양성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삼성은 중소중견기업들의 우수 인재 확보를 돕기 위해 이들 기업과 청년 구직자들을 연결하는 '채용 한마당'을 2012년부터 매년 실시하고 있다. 이와 병행해 '지역 기업 임직원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제조, 품질, 구매, 마케팅 등 500종류의 교육 과정을 개발해 협력 회사의 업무 역량 개발도 돕고 있다.
여기에 국내 창업 생태계 활성화를 돕는 'C랩 아웃사이드' 프로그램을 지방으로 확대, 'C랩 대구'를 개소했으며 3월 중에 'C랩 광주'도 신설할 계획이다. 또 전국 5개 거점에 위치한 'SSFAY'를 통해 지방 청년들을 대상으로 소프트웨어(S/W) 교육 기회를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재계에선 삼성의 이번 지역 투자가 '인재와 기술, 새로운 투자'를 새롭게 지역으로 이끌어 내는 마중물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했다. 선진국에 진입한 대한민국이 '지역의 도약'이라는 새로운 성장엔진을 갖춰 한 단계 더 높게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란 평가다.
재계 관계자는 "충청과 경상과 호남 등이 첨단 산업의 글로벌 생산거점이 돼 경제적 도약을 이룬다면 대한민국의 각 지역 경제권이 일본과 대만 등 주요 국가의 핵심 산업과 경쟁을 벌이는 가슴 벅찬 '제2의 한강의 기적'을 맞게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장유미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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