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질문: 최근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의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발사체본부) 관련 책임자들이 줄줄이 보직사퇴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항우연의 조직개편을 둘러싼 의견 충돌로 보인다. 발사체본부 조직은 그동안 과기정통부가 ‘운영관리지침’을 통해 항우연과 독립적으로 운영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같은 여러 문제가 이번에 한꺼번에 표출된 게 아닌지.
답: 간단히 말하자면 맞은 지적이다. 다만 조금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복잡한 이슈들이 많다. 과기정통부, 항우연, 발사체본부 등 서로 입장이 모두 다르다. 이 틈바구니에서 내년에는 ‘우주항공청’이 설립된다. 이를 두고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우주정책을 두고 현재 우리나라는 여러 의견이 중첩되고 얽혀 있다. 어떤 측정값이 나올 것인지 아직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항우연 조직개편을 두고 최근 갈등의 골이 깊어가고 있다. 항우연은 내년부터 발사체본부를 발사체연구소로 조직을 개편한다. 이를 두고 발사체본부가 반발하고 있다. 고정환 발사체본부장이 보직 사퇴서를 과기정통부에 제출했다. 이어 옥호남 나로우주센터장도 이번 조직 개편에 반대하며 보직 사퇴 의사를 표시했다.
발사체본부는 조광래 전 항우연 원장(현 항우연 연구위원)의 철학이 녹아있는 곳이다. 일각에서는 이런 조 전 원장을 두고 ‘상왕(원장위에 있는 분)’이라고 까지 표현한다.
겉으로 보기에 이번 사태는 항우연의 내홍과 갈등 등 안 좋은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 항우연이 그동안 걸어온 길을 보면 이 같은 내홍과 갈등은 언제든 나올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에도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 이 참에 항우연의 ‘중첩과 얽힘’에 대한 측정값을 도출해 보는 것도 지금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라는 의견도 있다.
아울러 우리나라 우주정책을 종합적으로 고민하는 계기로 삼자는 주장도 나온다.
과기정통부(이종호 장관 기자송년간담회 발언), 항우연(공식 입장), 발사체본부(조광래 전 원장 페이스북 의견)는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부터 정리해 본다.
◆고정환 발사체본부장 보직사퇴, 배경은
발사체본부: “발사체본부장의 사퇴를 두고 조직개편에 반발하는 ‘항의성’이라는 보도를 봤다. 맞다. 항의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왜 항의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일부에서는 세력 다툼, 알력 등의 프레임 씌우기로 상황을 폄하하려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항우연: “고정환 발사체본부장은 항우연은 물론 발사체 분야의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3차 발사, 기술이전을 수행하는 고도화사업에서도 누리호 사업을 이끌어온 분으로서 책임을 계속 맡아서 국민의 성원과 기대에 부응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기관 차원에서 인력 등 필요한 모든 지원 아끼지 않을 것이다.”
과기정통부: “항우연 조직 개편이 있고 그 과정에서 아마 서로 의견이 좀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사람이 일을 하다보면 통일된 의견만 낼 수 없다. 각자 의견을 두고 충분히 논의하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분(고정환 본부장)은 보직 사퇴의사만 밝혔지, 항우연을 떠난 게 아니다. 항우연 연구원으로 있다. 발사체본부장의 중책을 맡아 잘 해주길 바란다.”
◆발사체본부장, 조직개편으로 버림받았다?
발사체본부: “발사체본부장직 사퇴의 본질은 본부장이 버림받은 것이라는 데 있다.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발사체본부장에게 누리호 3차 발사(내년 상반기) 책임을 지우는 것이다.
차세대 발사체를 위한 선택이라고 하는데, 그 사업은 내년에 시작하는 사업이다. 내년 상반기 안에 누리호 3차 발사를 마무리하고 조직개편을 해도 늦지 않다고 했는데도 묵살됐다. 굳이 왜 3차 발사를 목전에 둔 지금 이 시기에 발사체본부를 해체해야 하는지 이해할 없다.”
항우연: “항우연은 내년도 조직개편을 두고 오랫동안 논의를 해 왔다. 내년부터 누리호 발사체 고도화사업은 물론 차세대 발사체 개발사업, 소형발사체 개발사업 등이 계획돼 있다. 이 같은 일련의 새로운 사업을 두고 현재의 발사체본부로서는 불가능해 조직개편을 하게 된 것이다. 고정환 본부장도 그동안 논의에 함께 했다.”
과기정통부: “항우연 인사에 우리는 개입하지 않는다. 보고만 받는다.”
◆과기정통부와 항우연 사이에 ‘낀’ 발사체본부
발사체본부: “누리호 개발사업을 과기정통부가 직접 관장한 것은 사실이다. 과기정통부가 직접 본부장을 선정, 임명했다. 발사체본부에 연구개발조직을 두라고 규정한 ‘운영관리지침’이 존재하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항우연은 이번 조직개편을 두고 이 같은 ‘운영관리지침’을 정면으로 위반했다. 과기정통부는 모르는 척 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누리호 개발팀은 버림받았다고 느끼고 있다. ‘토사구팽이 이런 것이구나!’라고.”
항우연: “발사체본부 소속 연구원들은 조직개편에 따라 발사체연구소 내에서 임무 중심으로 역할하게 될 것이다. 조직개편에 따라 새롭게 보직을 맡게 되는 연구원들도 모두 누리호 개발에 장기간 참여한 분들이다.
현 조직개편은 누리호 3차 발사 성공, 산업체 기술이전, 차세대발사체 산업 활성화를 동시에 수행하며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현재 항우연의 최우선 과제는 3차 발사 성공이다.
항우연은 기술이전과 산업 활성화 지원을 통한 우주경제 실현, 차세대발사체 개발, 달과 화성탐사의 체계적 분비 등 성공적 과제 이행을 위해 최선 다할 것이다.”
과기정통부: “(내년에 우주항공청 설립을 눈앞에 두고 있다). 우주항공청장은 전문가 조직이고 프로젝트 조직이다 보니 이런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분, 여기에다 전문성도 갖춘 사람이 청장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기정통부, 항우연, 발사체본부 등 ‘3각 체제’의 ‘얽히고 중첩돼 있는’ 의견에서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모두들 “발사체 사업은 매우 중요하다”는 데 있다. 이 참에 발사체본부장 보직 사퇴로 불거진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과학자들은 자연을 관찰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서 논의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정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정치인, 자신뿐이다.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정치가 세상을 절대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정치는 세상을 더 왜곡시킬 뿐이다.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정치적 회의론이자 비판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자꾸만 세상을 왜곡시키는 현실을 그나마 제 자리로 조금씩 돌려놓는 분야가 과학이다. 물론 과학도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뉴턴이든, 아인슈타인이든, 리처드 파인만이든, 스티브 호킹이든 그동안 유명한 과학자들은 세상을 바꾼 게 아니다. 잘못 알려진, 왜곡돼 있는 세상을 제대로 파악해 알려준 것에 다름 아니다.
최근 항우연 사태도 이와 다르지 않다. 여러 의견들이 중첩되고 얽혀 있다. 이를 통해 측정하면 더 빠른 해결책을 찾아낼 수도 있다. 중첩되고 얽혀 있다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내년 우주항공청 설립을 앞두고 최근 벌어지고 있는 항우연 조직개편 논란이 더 발전적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정종오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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