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내년 경기 한파가 예고된 가운데 재계가 연일 법인세 인하 촉구에 나섰다.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 정부 방침대로 법인세라도 깎아 기업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 되고 있지만,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부자 감세'라고 주장하며 물러서지 않는 모양새다.
7일 재계에 따르면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6단체는 지난 6일 법인세 인하 관련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또 전경련과 대한상의, 경총 등 주요 경제 단체들은 잇따라 한국의 법인세 경쟁력과 관련된 발표 자료를 쏟아내며 더불어민주당 측을 압박하고 나섰다.
◆ '부자 감세' 비판 나선 野…"법인세 인하, 0.01% 위한 것"
앞서 국회에선 지난달 30일 소득세법·법인세법 개정안을 비롯한 25건의 법안을 내년도 세입예산안 부수법안으로 지정했다. 법인세법 개정안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25%에서 22%로 낮추는 내용이 담겼다. 법인세 세율구간도 종전 4단계에서 2~3단계로 변경하고, 매출액 3천억원 미만 중소·중견기업에 대해서는 과표 5억원 이하에 10% 특례세율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은 '부자 감세'에 해당한다며 그동안 반대해 왔다.
하지만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에 대해 정부는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내년 경기 둔화 흐름을 방어하고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낼 유인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법인세율 인하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일단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세법개정안을 심사한 뒤 전체회의에서 의결한다는 목표지만,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측은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세제개편안대로 법인세를 인하하면 그 혜택이 상위 0.01% 대기업에게 돌아간다고 주장하고 있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인세 인하로 낙수효과는 발생하지 않고 오히려 부의 양극화가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됐다"며 "정부는 조세 형평성을 훼손하는 부자 감세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고물가·고금리·고환율로 고통받는 서민의 삶을 살피고 적극적인 민생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 역시 "3천억원 이상의 이익을 내는 법인의 최고 세율을 낮춰주는 것에 대해선 대한민국 0.01% 슈퍼 부자를 위한 감세 혜택"이라며 "양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경제 관련 시민단체들도 민주당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경제위원회 등 14개 시민단체는 지난 6일 기자회견을 열어 법인세 인하 반대 입장을 밝혔다.
유호림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대재벌과 대자산가, 고소득 투자에 대한 감세를 중심으로 세제 개편이 이루어지는 것은 궁극적으로 재정 여력이 악화될 뿐만 아니라 양극화를 초래할 것"이라며 "세제 개편안이 통과된다고 전제를 한다면 재정 여력이 악화되는 건 너무나 당연하고, 그 과정에서 부족한 세수를 보충하기 위해 서민에 대한 대대적인 증세를 단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 연일 목소리 높이는 경제단체…'법인세 감면' 없던 일 될까 '전전긍긍'
야당의 반대로 법인세 인하 움직임에 제동이 걸리자 주요 경제 단체들은 연일 반발하고 있다. 국회에서 169석에 이르는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 합의 없이는 세법 개정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반대 입장을 계속 고수한다면 정부가 공약한 6조8천억원 규모 법인세 감면은 결국 없던 일이 된다.
이에 전경련은 이날 예고에도 없던 '법인세법 개정안 통과 필요 5가지 이유'라는 자료를 긴급하게 냈다. ▲기업의 주요 재무지표 적색경보 ▲내년도 본격적인 경제한파에 대비 ▲기업의 국제경쟁력 제고 ▲법인세 감세로 투자·고용 확대 등 경제 선순환 효과 기대 ▲중소·중견기업에 더욱 큰 감세효과 등을 이유로 들며 법인세법 개정안 통과가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내년도 우리경제는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얼어붙는 극심한 침체국면에 진입해 기업들의 어려움이 가중될 우려가 크다"며 "기업들이 당면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국회가 법인세법 개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한상의도 이날 자료를 통해 2018년 법인세 인상 이후 한국과 미국 기업간 세후이익률 격차가 확대됐다는 점을 지적하며 국회에 계류 중인 정부제출 법인세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미국 법인세는 당초에 세율이 15~39%로 총 8개의 과표구간을 가진 복잡한 구조였으나 2018년 트럼프 정부가 '세금감면 및 일자리법'을 통과시켜 세율을 21%로 낮추고 과표구간을 단일화했다. 반면 한국은 같은 해 법인세율을 22%에서 25%로 인상하고, 과표구간을 3개에서 4개로 늘렸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이로 인해 한국 기업들은 법인세제상 미국보다 불리한 여건에 놓이게 됐다"며 "여기에 한국에만 있는 투자상생협력촉진세(세율 20%)도 추가 법인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기구 역시 우리나라 법인세율을 인하해야 한다고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IMF는 우리나라가 과표구간 단일화 등으로 법인세 왜곡을 없애 효율성을 제고할 것을 주문했고, OECD는 경기 하방요인으로 2018년 법인세율 인상에 따른 기업의 투자감소를 지적했다.
국내 기업들은 높은 법인세 부담으로 순이익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2∼2017년 미국과 한국 기업의 법인세 과세 전후 순이익률 차이는 평균 7.3%p로 조사됐다. 하지만 법인세율을 인상한 2018년 이후 4년 동안 평균차는 14.5%p로 크게 벌어졌다.
이에 한국 기업들은 높은 법인세를 피해 미국 투자를 늘리고 있다. 법인세 부담이 늘어난 2018년 이후 한국의 미국 직접 투자 금액은 연평균 175억1천400만 달러로 조사됐다. 지난 2012년부터 2017년까지 평균 수치(89억6천300만 달러)와 비교하면 두 배에 가까운 금액이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우리나라 법인세가 미국보다 불리한 것은 기업들은 잘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라며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에서 법인세 인하는 기업들의 투자 집행 및 계획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 6단체들은 지난 6일 법인세 인하 요청 공동 성명에도 나섰다. 이들은 "최근 금리상승에 따른 자금시장 경색으로 유동성 확보마저 어려워졌다"며 "특히 내년에는 글로벌 경제환경의 불확실성 확대로 수출경기가 크게 나빠지고, 금리인상 등에 따른 가계 소비여력 약화로 내수마저 얼어붙을 것으로 보여 기업들의 경영애로는 더욱 가중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어 "법인세를 낮추면 기업의 투자와 고용이 촉진되고, 주주·근로자 등 이해관계자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 사회 구성원 전반에 긍정적 파급효과를 가져오게 된다"며 "기업의 잉여소득을 간접적으로 확충함으로써 현재의 극심한 자금사정 압박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금융방어적 수단이 된다"고 덧붙였다.
/장유미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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