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이재용 회장이 취임 후 처음 단행된 삼성전자 정기 인사에서 미래 먹거리인 '네트워크'와 '반도체' 사업에서 성과를 나타낸 인물들을 사장으로 대거 발탁했다. 역량 있는 여성 부사장도 사장으로 첫 승진시켜 여성 인재들에게 성장 비전을 제시하고 과감히 도전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했다.
삼성전자는 사장 승진 7명, 위촉 업무 변경 2명 등 총 9명 규모의 '2023년 정기 사장단 인사'를 5일 발표했다.
이 회장은 이번 인사에서 글로벌 경영 환경이 악화된 만큼 '안정 속 혁신'을 기조로 사장단을 대부분 유임시키는 한편, '성과주의'를 기조로 핵심사업의 미래 대비 경쟁력 강화의지를 확고히 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DX부문장인 한종희 부회장과 DS부문장인 경계현 사장의 '투 톱' 대표이사 체제는 1년 더 유지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대외 불확실성이 한층 더 커진 상황에서 사령탑을 교체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앞서 삼성은 지난해 조직 개편 전 반도체·가전·모바일사업 3개 부문 대표를 동시 교체하는 큰 폭의 인사를 실시한 바 있다.
이재용 회장의 오른팔로 불리는 정현호 부회장도 사업지원TF(태스크포스)장 자리를 계속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정 부회장은 2017년 국정농단 사태로 해체된 미래전략실에서 경영진단팀장과 인사지원팀장을 역임한 바 있다.
다만 주목을 받았던 그룹 차원의 컨트롤타워 복원은 이번에 진행하지 않았다. 삼성 안팎에선 그 동안 ▲사업지원TF(전자 계열) ▲EPC경쟁력강화TF(건설 계열) ▲금융경쟁력제고TF(금융 계열) 등으로 분산된 지원 조직이 하나로 합쳐져 컨트롤타워가 복원될 것이란 관측을 내놓은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 내부에서도 여러 여건이나 정황상 컨트롤타워가 다시 생기기엔 적기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듯 하다"며 "이 회장이 여전히 재판을 받고 있는 데다 승계를 하지 않고 이사회 중심으로 투명 경영을 하겠다고 내걸었던 만큼, 컨트롤타워가 복원된다면 모순적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아직 조직 개편이 나오지 않아 확신할 수 없으나, 정 부회장이 TF장을 계속 맡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사장단 인사에서) 기존 2인 대표이사 체제를 유지해 불확실한 대내외 환경 하에서 경영 안정을 도모하는 동시에 미래 준비를 위한 과감한 변화와 혁신을 통해 고객 중심의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사장으로 승진한 인물 중에선 이영희 삼성전자 DX부문 글로벌마케팅실 사장이다. 삼성전자 내 비(非)오너일가 출신의 최초 여성 CEO가 됐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의 경우 23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지만 그 동안 여성 CEO는 이 회장의 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유일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4대 그룹에서 가장 많은 여성임원(65명)을 보유하고 있지만 CEO는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발표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 내 여성 임원 비율은 2010년 1.4%에서 2020년 6.6%로 늘었다. 삼성전자가 자체적으로 세운 목표(여성 임원 비율 10% 이상)에는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하지만 최근 재계에서 여성 임원이 계열사 CEO로 발탁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이 회장의 마음도 움직였다. LG그룹의 경우 지난달 4대 그룹사 중 최초로 여성 임원을 계열사 CEO에 임명했다. 이정애 LG생활건강 음료사업부장(부사장)이 사장(CEO)으로 승진했고, 지투알은 박애리 부사장을 CEO로 선임했다.
이에 이 회장도 2012년에 부사장으로 승진해 10년째 자리를 지킨 이영희 사장을 승진시켰다. 내부 일각에선 다소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지만, 삼성전자 브랜드 가치 제고에 크게 기여했다고 판단해서다.
또 이 사장은 로레알 출신의 마케팅 전문가로 2007년 삼성전자에 입사 후 갤럭시 마케팅 성공 스토리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 사장은 여러 성과를 거두며 고객 가치·경험 중심 회사로의 성장을 선도해 왔다"며 "사장 승진 후 고객 중심의 마케팅 혁신 등의 역량 발휘와 함께 삼성전자 최초의 여성 사장으로서 조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성과주의' 기조를 바탕으로 핵심사업의 미래 대비 경쟁력 강화 의지도 이번에 확고히 했다.
특히 김우준 삼성전자 DX부문 네트워크사업부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켜 차세대 통신 중심의 네트워크 비즈니스 기반을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김우준 사장은 서울대 전자공학 박사 출신으로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 상품전략그룹장, 차세대전략그룹장, 전략마케팅팀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하면서 영업·기술·전략 다양한 분야에 걸쳐 비즈니스 성장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경훈 삼성전자 DX부문 CTO 겸 삼성 리서치 사장이 자리를 옮긴 것도 이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전경훈 사장은 포항공대 교수 출신으로 2012년 삼성전자 입사 후 차세대통신연구팀장, 네트워크 개발팀장, 네트워크사업부장을 역임하며 5G 세계 최초 상용화 등의 성과를 거두며 네트워크 사업 성장에 기여한 통신기술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승현준 삼성전자 DX부문 삼성 리서치 글로벌R&D협력담당 사장도 이 회장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번에 업무가 변경됐다. 승현준 사장은 AI 분야 최고 전문가로 평가 받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전경훈 사장은 기술 리더십과 전략적인 안목을 바탕으로 삼성 리서치장으로서 DX사업 선행연구를 총괄하며 삼성전자의 미래 먹거리 발굴을 주도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승현준 사장은 우수한 연구능력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지속 활용해 해외 주요 대학 및 선진 연구소와의 R&D 협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우수인재 영입에 집중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남석우 삼성전자 DS부문 글로벌 제조&인프라총괄 제조담당의 사장 승진은 이 회장의 반도체 초격차 확보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남석우 사장은 반도체 공정개발 및 제조 전문가로 반도체연구소에서 메모리 전제품 공정개발을 주도한 인물로, 메모리·파운드리 제조기술센터장과 글로벌 제조&인프라총괄을 수행하며 반도체 공정 및 제조경쟁력 강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송재혁 삼성전자 DS부문 CTO 겸 반도체연구소장 사장의 승진도 이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송재혁 사장은 D램·플래시 메모리 공정개발부터 양산까지 반도체 전 과정에 대한 기술 리더십을 발휘하며 메모리 사업 글로벌 1위 달성에 기여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송 사장은 반도체 사업 CTO로서 반도체 전 제품의 선단공정 개발을 리딩하며 반도체 기술 경쟁력 강화를 주도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백수현 삼성전자 DX부문 커뮤니케이션팀장 사장은 그 동안의 성과를 인정 받아 이번에 승진 명단에 포함됐다. 백수현 사장은 SBS 보도국 부국장 출신의 홍보 전문가로 2013년 삼성전자로 입사 후 국내홍보그룹장, 커뮤니케이션팀장을 역임하면서 회사 내부 뿐만 아니라 외부와의 소통 활성화에 기여했다. 이번 승진을 통해 대내외 전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해 삼성전자의 비전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중앙일보사 편집국장 출신의 언론 홍보 전문가인 박승희 삼성전자 CR담당 사장도 이번에 승진했다. 박승희 사장은 지난 2020년 12월부터 삼성물산 건설부문 커뮤니케이션팀장을 맡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박 사장은 풍부한 네트워크와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바탕으로 CR담당으로서 대내외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가교 역할을 원활히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기대했다.
양걸 삼성전자 중국전략협력실 사장은 중국 내 사업 확대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이번에 승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양걸 사장은 다양한 해외 판매법인을 경험한 반도체 영업마케팅 전문가로, 중국총괄과 중국전략협력실 부실장을 역임했다. 또 사장 승진 후에는 중국전략협력실장으로서 본인이 보유한 중국 네트워크와 비즈니스 안목을 바탕으로 원활한 협력과 지원을 이끌어 낼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이번 사장단 인사에 이어 조만간 부사장 이하 2023년 정기 임원인사와 조직개편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부사장 급에선 작년처럼 능력을 검증 받은 젊은 리더가 대규모로 부사장급으로 발탁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지난해 인사에서는 40대 부사장 10명과 30대 상무 4명을 선임했다.
그러나 60세 이상 임원은 2선으로 물러난다는 이른바 '60세 룰'을 앞세워 내년 만 60세 이상이 되는 부사장급 인사 상당수도 이번에 대부분 교체 대상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삼성전자는 이달 1일 해외법인에 이어 다음 날인 2일에 국내 사업장 내 일부 임원들에게 퇴임을 통보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미 정기 인사와 조직개편을 단행한 LG그룹을 비롯해 현대자동차그룹, SK그룹 등이 대부분 중요 포지션은 소폭, 부사장 이하는 대폭 인사를 진행하는 안정 속 혁신 기조를 보여준 만큼 삼성도 이를 따라가는 듯 하다"며 "이번에도 성과주의에 근거해 작년처럼 30대 상무와 40대 부사장 등 젊은 리더들이 다수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 회장이 성별이나 국적에 관계 없이 능력을 우선시하는 인사를 단행하는 분위기"라며 "반도체, 5세대(G)·6G,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젊은 개발 인재를 다수 발탁하는 인사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장유미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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