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반도체 한파와 미·중 등쌀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SK하이닉스가 조직 개편을 통해 돌파구 마련에 본격 나섰다.
2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지난 1일자로 조직개편과 임원인사를 단행하며 박정호 부회장, 곽노정 사장 투톱 체제를 일단 유지키로 했다. 반도체가 회복 사이클에 진입할 때까지 변화보다는 안정이 더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SK하이닉스의 올해 3분기 매출은 전분기 대비 20.5% 줄어든 10조9천829억원, 영업이익은 60.5%나 줄어든 1조6천55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7%, 60.3% 감소했다.
이는 메모리반도체 판매량과 가격이 모두 떨어진 것이 악영향을 줬다. 노종원 SK하이닉스 사업담당 사장은 "D램과 낸드플래시 모두 평균판매가격(ASP)이 전분기와 비교해 20% 수준 하락했다"고 밝혔다.
출하량도 모두 줄었다. 노 사장은 "D램 출하량이 전분기 대비 한 자릿수 중반 정도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낸드플래시 역시 "컨슈머 제품의 수요 약세로, 출하량이 솔리다임 포함 기준으론 전분기 대비 10% 초반, 본사 기준으로는 한 자릿수 후반 감소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자회사인 솔리다임의 실적은 더 악화됐다. 솔리다임의 1분기 당기순손실은 1천547억원이었고 2분기엔 1천9억원으로 손실 규모가 줄었지만, 3분기엔 6천133억원으로 다시 늘었다. 3분기까지 누적 손실이 8천717억원에 달한다.
솔리다임이 반영된 SK하이닉스 낸드 성적표도 좋지 않다. SK하이닉스의 3분기 낸드 매출은 전분기보다 29.8% 감소한 25억4천만 달러(약 3조6천억원)였다. 점유율은 19.9%에서 18.5%로 하락하면서 순위도 키옥시아에 밀려 2위에서 3위로 떨어졌다.
이에 SK하이닉스는 이번 조직 개편을 통해 노 사장을 솔리다임 최고사업책임자(CBO)에 선임했다. 또 노 사장이 맡고 있던 사업담당 조직을 안전개발제조담당 조직과 함께 폐지시켰다. 이에 SK하이닉스에서 여러 역할을 맡았던 노 사장은 이번 일로 미주사업담당 TF장과 솔리다임 CBO 역할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초대 CEO를 맡았던 인텔 출신 로버트 크룩 사장의 돌연 사임 후 비어 있는 솔리다임 CEO 자리는 적임자를 찾지 못해 곽노정 사장이 SK하이닉스와 공동 경영하는 체제를 계속 유지키로 했다. 이석희 전 솔리다임 이사회 의장이 물러나며 생긴 공백도 박정호 부회장이 계속 메우기로 했다. 최근에는 투자 전문가인 우디 영 사외이사를 경영지원부문 사장으로 임명하며 차기 CEO 찾기에 나선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솔리다임이 출범한 지 불과 1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CEO가 사임하며 리더십 공백이 생긴 데다 실적도 악화돼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SK하이닉스가 10조원 가까이 들여 솔리다임을 인수했지만 '승자의 저주'에 빠진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이번 인사를 기점으로 노 사장은 솔리다임의 시너지 창출을 위해 미국 사업에 좀 더 집중하게 될 것"이라며 "미국 시장은 서버가 중심인 만큼 이 부분에 더 집중해 성과를 조기에 달성할 수 있도록 나설 듯 하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미국과 중국 간 반도체 패권 전쟁에 따른 어려움도 호소하고 있다. 특히 중국 공장으로의 첨단 반도체 장비 반입에 제동이 걸린 것이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저지하기 위해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 제한 조치를 시행했는데, SK하이닉스에는 해당 조치를 1년간 유예해 허가없이 장비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1년 후는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노 사장은 "향후 유예 조치가 1년씩 연장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도 "확실치 않고, 상황이 매우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중장기적으로보면 생산 거점을 다변화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하지만 단기적으론 쉬운 상황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중국 우시 공장 첨단화를 위한 EUV 노광 장비 도입에 대해서도 "현재로선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유예 조치가 연장되지 않으면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르게 EUV 관련 공장 운영에 어려움이 닥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업계에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모두 중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미국의 반도체 장비 제재 움직임이 SK하이닉스에 더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봤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상무부 제재가 네덜란드 ASML의 EUV 노광 장비 수출 제한부터 시작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를 반입하지 못했을 때 타격을 받는 기업이 가장 피해를 볼 수 있다"며 "낸드는 현존 기술로는 공정상 EUV 노광 장비가 아직 필요하지 않지만, D램은 14나노미터 EUV 장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D램을 생산하는 SK하이닉스 우시 공장의 피해가 클 듯 하다"고 예상했다.
이에 SK하이닉스는 이번 조직 개편을 통해 미래전략 산하에 글로벌 전략을 신설했다. 글로벌 전략을 이끌 인물은 내부에서 선임된 상태로, 공개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또 글로벌 생산 시설 확장과 지역별 이슈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글로벌 오퍼레이션 TF도 최고경영자(CEO) 산하에 구성했다. TF장은 미래기술연구원 차선용 담당이 겸직하기로 했다.
하지만 메모리반도체 시장 불황이 내년 상반기까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 SK하이닉스의 어려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시장 조사 기관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에 따르면 내년 반도체 시장 매출 전망치는 5천565억6천800만 달러로, 올해 매출(5천801억2천600만 달러) 대비 4.1% 감소한 수치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 매출은 올해 12.6% 감소한 후 내년에도 17.0%가량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업계에선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가장 타격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삼성전자(43.6%)와 SK하이닉스(27.7%)는 지난해 전 세계 D램 시장 매출의 71.3%를 차지하고 있다. 트렌드포스 기준 낸드 플래시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31.4%로 1위, SK하이닉스가 솔리다임을 포함해 18.5%로 3위다.
이 같은 분위기를 고려해 SK하이닉스는 최근 수익성이 낮은 제품은 감산하고 고부가 제품 판매를 확대해 매출 확대를 꾀하고 있다. 또 이번 조직 개편 및 정기 인사를 통해 GSM(Global Sales & Marketing) 조직을 글로벌 세일즈와 마케팅·상품기획으로 양분했다. 제품과 고객 지원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GSM담당에는 미주 조직을 맡았던 김주선 담당이 선임됐다.
더불어 사내 의사결정 체계를 축소해 경영 판단의 속도와 유연성을 높이기로 했다. 이에 따라 기존 안전개발제조담당과 사업담당 조직을 폐지하고, CEO와 주요 조직 경영진 간 의사결정의 속도를 높일 계획이다. 또 안전을 기업이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고, 김영식 제조·기술담당을 CSO(Chief Safety Officer)에 임명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3분기 업계 최초로 238단 4D 낸드를 개발했고, 내년에 양산 규모를 확대함으로써 원가경쟁력을 확보해 수익성을 지속 높여갈 것"이라며 "수익성이 낮은 제품을 중심으로 생산량을 줄여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솔리다임은 낸드 전체 경쟁 지형을 볼 때 추가적인 여러 조정이 있어야 한다"며 "1~2년 내에 통합 작업이 완성된다면 SK하이닉스가 가지는 이점이 현재 어려움보다 훨씬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유미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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