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아이폰에 사용할 낸드플래시를 중국 YMTC(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로부터 공급 받으려던 애플이 미·중 갈등 여파로 삼성전자에게 도움의 손길을 청했다. 미국 정부의 대(對)중국 규제 강화로 YMTC를 통해 제품을 공급 받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21일 대만 IT 전문매체 디지타임스에 따르면 애플은 오는 2023년부터 삼성전자의 낸드플래시를 구매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애플은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주요 경쟁사 대비 최소 20% 저렴한 가격에 납품이 가능한 YMTC의 메모리 반도체를 이르면 올해부터 아이폰에 탑재할 예정이었다. 또 지난 달 초 YMTC의 아이폰용 128단 3D 낸드플래시 메모리 인증을 위한 수 개월 간의 절차도 마무리했다.
YMTC가 생산하는 반도체는 주로 중국 시장에 판매되는 아이폰에 사용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에 따르면 애플은 전 세계에 공급할 아이폰에 필요한 물량의 40%가량을 YMTC로부터 구매하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애플은 비용 절감과 공급망 다변화 차원에서 YMTC와의 협력을 추진했으나, 최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에 나서면서 발목이 잡혔다.
앞서 미국 상무부는 지난 달 7일 미국 기업이 ▲18㎚(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하 D램 ▲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 14㎚ 이하 로직 칩을 생산하는 중국 기업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하는 내용의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또 수출 통제 우려 대상으로 지정한 '미검증 명단(Unverified list·수출 통제 우려 대상)'도 공개했는데, 이번에 YMTC가 포함되면서 애플의 계획은 틀어졌다. 해당 명단에 오른 중국 업체들과 거래를 하려면 물품을 보내기 전에 실사를 통해 합리적인 사업인지 확인 조사를 수행하고, 당국에 추가로 허가증을 신청해야 한다.
브렌트 프레드버그 미국 브랜즈인베스트먼트파트너스 투자 담당 이사는 "애플은 중국 현지 시장에서 YMTC의 제품을 사용하고 싶어할 것"이라며 "하지만 현재 규정대로라면 YMTC가 애플이 원하는 낸드플래시를 수 년간 공급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이 같은 조치로 YMTC가 다음 달 6일쯤 수출 통제 명단에 포함될 처지에 놓이자 애플은 국내 업체인 삼성전자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동시에 YMTC에 물밑 지원하며 키우려는 움직임도 함께 보이고 있다. 당장 YMTC의 제품을 사용할 수 없지만 장기적인 협력을 지속해 향후 낸드 공급망을 다변화 시키려는 의도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애플이 SK하이닉스·키옥시아(일본)에 이어 세 번째 낸드 공급 업체로 YMTC를 낙점 했을 때 업계에선 다들 의아해 하는 분위기였다"며 "YMTC가 국내 반도체 기업들과 비교하면 점유율도 낮고 기술력은 몇 년 정도 뒤처져 있는 수준이지만, 애플이 자사의 소프트웨어 기술과 노하우를 이용해 YMTC 제품의 부족한 기술력을 보완해주려고 본격적으로 나섰다면 상황이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애플이 의도와 다르게 미국 정부의 YMTC 제재로 인해 제품 구매를 할 수 없게 되면서 삼성전자에겐 기회가 되고 있다. 지금까지 애플에 주로 D램을 공급해 왔던 삼성전자가 이번 일로 낸드플래시까지 공급하게 돼서다.
다른 업체들과 달리 "인위적인 감산은 없다"고 밝혔던 삼성전자의 입장도 고수할 수 있게 됐다. 애플 물량을 확보한 덕분에 앞으로 제품 판매 확대에 따른 재고 소진도 가능할 것으로 관측된다.
애플에 공급될 물량은 삼성전자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에서 생산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은 3D 낸드플래시를 주로 생산하며 삼성전자 전체 낸드플래시 생산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다른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은 암울한 상황이다. 미국 마이크론은 내년에 20%를 감산키로 했고, SK하이닉스도 내년 투자 규모를 올해 대비 50% 이상 감축키로 했다. 일본 키옥시아는 10월부터 웨이퍼 투입량을 30% 정도 줄였다. 이는 수요 감소로 반도체 재고가 급증한 탓이다.
디지타임스는 "공급과잉과 수요 위축으로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폭락할 때마다 삼성전자는 오히려 버티기와 투자를 통해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는 기회로 활용했다"며 "다른 메모리 반도체 업체와 달리 감산 없이 판매 확대로 재고를 소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품질이 좋은 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업체를 선택하고자 하는 애플 입장에선 삼성전자가 현재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애플이 공급 받으려던 YMTC의 낸드 물량이 많지 않았던 만큼 삼성전자 매출엔 아직 큰 영향이 있을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일로 '반도체 굴기'에 나섰던 중국 정부도 답답한 상황에 놓였다. 현재 낸드 시장에서 3%(1분기 기준)인 YMTC도 애플에 제품을 공급해 올해 말 5%까지 점유율을 높일 것으로 관측됐으나, 당분간 쉽지 않게 됐다. YMTC는 올해 말 2공장을 준공해 현재 월 기준 웨이퍼(반도체의 원료인 둥근 원판) 10만장을 가공하는 생산능력을 3배로 높이고, 지난 달 세계 최고 수준인 232단 낸드 개발 완료에 이어 연말부터 이를 양산하는 등 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움직임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반도체 굴기'에 나선 이후 전량 수입해 오던 낸드플래시 독립을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미국의 장벽에 막혀 쉽지 않은 모습"이라며 "애플을 앞세워 시장에 실제 제품을 공급하는 사례를 처음 만들려고 했지만 이번에 막히면서 YMTC나 중국 정부 입장에선 다소 답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YMTC의 점유율이 미미해 이번 일로 다른 업체에 영향이 있을 것 같진 않지만, 한국 추격에 나선 중국의 움직임을 늦출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업체에는 일단 호재"라면서도 "YMTC가 당장 기술 한계로 저가 시장을 겨냥하고 있는 상태지만 수년 내 고가 시장에 진입해 한국 업체들을 위협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이 다음 세대를 겨냥한 개발에 게을리해선 안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유미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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