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혜경 기자] 판교 데이터센터(IDC) 화재 원인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당시 전력 공급을 전면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전기실 내 리튬이온배터리 랙(Rack) 5기가 전소되면서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와 유사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일반 화재와는 달리 리튬이온전지 화재는 진화가 어렵고, 원인 규명을 위해선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사고 재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리튬이온전지 기반의 IDC 설비 기준과 안전 개선을 비롯해 독립적 분산 전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5일 오후 3시 33분께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SK 판교캠퍼스 A동 지하 3층에서 불이 났다. 전기실 외에 서버실은 이번 화재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 SK(주) C&C의 설명이다. 화재 진압 과정에서 데이터센터 전원공급이 차단되면서 입주사인 카카오, 네이버 등이 제공하는 서비스 중단 사태가 빚어졌다.
데이터센터 화재만 놓고 봤을 때 쟁점은 ▲건물 전체 전력 공급이 중단된 시점과 이유 ▲비상 전원 가동 여부 ▲전기실 내 설비 설계와 시공 ▲배터리 발화 원인 등이다.
화재는 2시간여 만인 오후 5시 46분께 큰 불길이 잡혔고, 오후 11시 45분께 완진됐다. SK C&C에 따르면 화재 발생 후 1시간여 동안은 전력이 공급되고 있었다. 데이터센터 내부는 구획이 분리돼 전기실에서 발생한 화재 진압이 가능했다면 전체 전력 공급이 중단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변수는 리튬이온전지를 비롯한 배터리였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번 화재로 데이터센터 전기실 내 리튬이온배터리와 납축전지, 전력케이블이 소실됐다. 데이터센터연합회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데이터센터의 전기 설비는 ▲무정전 전원 장치(UPS) ▲배터리 등 전력공급을 위한 보조장치 ▲UPS 외 비상시 자가발전을 위한 장비 ▲발전소 전력을 공급‧배분하는 수배전 등으로 구성된다.
발화 지점은 배터리로 추정되고 있지만 UPS 배터리인지 혹은 또 다른 보조 배터리 장비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UPS란 발전소로부터 전기공급이 중단되거나 전압변동, 주파수 변동 등 장애 발생 시 전력을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다. 내장된 배터리를 통해 전원을 공급하므로 일종의 에너지저장장치(ESS)다. 재생에너지 연계용이나 주파수조정용 ESS 보다는 규모가 훨씬 작아 소규모 ESS로 불린다.
리튬이온전지 화재는 일반 화재 대비 진화가 어렵고 훨씬 위험하다. 열폭주로 인한 배터리 폭발 가능성과 감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불길이 약해질 때까지 기다리거나 폭발 위험을 상쇄할 만큼의 다량의 물을 활용해 작업을 진행한다. 현장 상황에 따라 특수 약재를 사용하기도 한다.
소방당국의 결정에 따라 건물 전체 전력 공급을 중단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앞서 지난 16일 판교 데이터센터 B동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김완종 SK C&C 클라우드 부문장은 "화재 진압을 위해 다량의 물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누전 우려가 제기됐고 화재가 발생한 곳은 제한된 장소였지만 안전을 위해 데이터센터 전체 전원을 차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SK C&C 측에 따르면 전력 공급 중단 이후 약 30분 동안은 UPS가 가동됐다. 주 전력과 UPS 공급 전력을 합쳐 화재 발생 이후 1시간 30분 정도는 전력 공급이 이뤄졌던 셈이다. 화재 발생 이후 약 1시간 동안 현장에선 전력 공급을 유지할지 혹은 전력 차단 후 화재를 진압할 것인지 고민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전압 문제로 비상발전기 가동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지만 UPS 가동과 유지 시간, 비상 전원 가동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들여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발화 지점이 배터리라고 하더라도 풀어야할 문제는 산적하다. 단순 전기적 요인을 비롯해 배터리 셀 결함, 배터리관리시스템(BMS) 등 시스템적인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한 이유다.
18일 대전에서 열린 한국연구재단 등 53개 기관 대상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변재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에게 "이번 판교 화재 문제는 철저한 원인 규명이 있기 전까지는 언급하기 조심스럽지만 데이터센터의 전원 공급 시설 설계와 운영에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2020년 KT 사고 때는 통신망에 대한 피해는 전혀 없없다"고 말했다.
배터리 전문가인 박철완 서정대 교수는 "화재 유형 자체가 전례 없는 형태"라면서 "5시 40분께 초진이 가능했던 것은 전원공급이 중단 이후 다량의 물을 이용하는 등 소화 스케일을 확장할 수 있었던 이유가 컸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다른 곳에서도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리튬이온 2차전지 기반의 UPS 격리 여부 등 관련 설비 기준과 안전 기준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재석 경상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비상 전력공급시스템을 강조했다. 최 교수는 "이번 사고와 유사한 상황에서의 전력 공급 해법은 마이크로그리드(Microgrid)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라며 "서버, 백업 시스템 관련 전원공급장치는 독립적인 패러다임 기반으로 구축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중화 전원보다 훨씬 강도 높은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안전성 측면에서의 공급 신뢰도를 높여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혜경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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