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4G LTE 상용화에 따라 스마트폰의 트렌드도 변화했다.기존보다 빠른 속도는 음성과 텍스트 시대를 넘어 영상과 이미지 시대를 앞당기면서 손안에 PC로 불린 스마트폰도 여러 형태로 진화했다. 특히, 보다 많은 정보를 구현하기 위해 스마트폰의 화면이 점차 커져갔다.
그 가운데 LTE 스마트폰 트렌드의 새로운 시작을 알린 기념비적인 제품으로 삼성전자 ‘갤럭시노트’를 꼽을 수 있다. 3~4인치로 획일화된 스마트폰 화면 크기를 5.3인치까지 확 늘린 모델이었다. 이같은 특장점 때문에 기존 스마트폰과 변별돼야 한다는 움직임도 일었다. 당시 갤럭시노트를 ‘패블릿’이라 부르기도 했다. '패블릿(Phablet)'이란 '폰(Phone)'과 '태블릿(Tablet)'의 합성어다.
삼성전자의 이같은 도전에 국내뿐만 아니라 외신들도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드러냈다. 그도 그럴 것이 패블릿으로 분류할 수 있는 모델은 ‘갤럭시노트’가 최초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국내 기준으로는 2010년 12월 PC제조사인 델이 선보인 '스트릭'이 출시된 바 있다. 델 스트릭의 화면크기 5인치였다. 다만 성적이 저조했다. 그 때가지만 해도 상대적으로 휴대가 편하고 그립감이 탁월한 4인치대 스마트폰이 더 선호됐다.
국내 제조사는 팬택이 5인치 크기의 '베가 넘버5'를 공개했다. 스트릭이 단순히 화면 크기를 늘린 것이라면, 베가 넘버5는 대화면에 맞는 사용자인터페이스(UI)가 접목됐다. 하지만 이 역시 KT 단독모델로 마케팅 지원이 크지 않아 판매량을 시들했다.
'갤럭시노트'의 시작도 마찬가지였다. 전 모델들보다 큰 5.3인치 화면 크기를 적용하면서 출시 전부터 뭇매를 맞았다. 마치 삼성전자가 첫 폴더블 스마트폰인 ‘갤럭시Z 폴드’를 내놨을 때 특정 외신이 제품 가운데 소세지를 넣어 접는 엽기적 리뷰를 보여준 것과 마찬가지로 갤럭시노트도 덩치가 큰 격투기 선수들을 위한 모델이라던지, 얼굴 전체를 덮는 요상한 제품이라는 점을 보다 부각시켰다. 부정적 평가를 살펴보면 '인류 역사 최악의 디자인', '쓸모없이 너무 크다', '졸작이다'라는 원색적 내용이 주를 이었다.
하지만 출시 후 시장 분위기는 완전히 반전됐다. 2011년 11월 29일 국내 첫 출시된 갤럭시노트는 폭발적인 반응을 기록했다. 출시 2개월만에 글로벌 판매량 100만대를 돌파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시장에서 꾸준한 상승세를 보여줬다. 홍콩과 대만에서도 판매량 5위 안에 진입했다. 대규모 시장인 북미까지 진출하지 않았을 때의 결과라 더 눈길을 끌었다. 당연히 주요 외신들의 평가는 '혹평'에서 '호평'으로 바뀌었다. LTE의 대화면 트렌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결과적으로 갤럭시노트는 해을 넘긴 2012년 누적 판매량 1천만대를 돌파한다. '노트'라는 새로운 영역을 구축했다. 갤럭시노트는 그 때부터 패블릿의 시초로 불리며 삼성전자의 상징처럼 군림했다.
갤럭시노트의 성공은 답답하지 않고 시원시원한 대화면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는 여러 솔루션을 도입했기에 가능했다. 우선 일본 와콤과의 협력으로 S펜을 도입했다. 전자기 유도방식을 적용해 기존 감압식과 정전식에 비해 탁월한 필기감을 선보였다. 이를 통해 S메모와 S플래너, 웹브라우저, 게임 등도 이용 가능했다.
LTE는 빼놓을 수 없는 핵심이다. 네트워크 속도가 빨라졌다는 점은 대용량 고품질 콘텐츠를 기존보다 수월하게 경험할 수 있다는 것. 즉, 이전보다 더 크고 선명한 화면에서 콘텐츠를 소비하고자 하는 니즈가 커진다.
스마트폰의 대화면 트렌드는 계속됐다. LG전자는 4:3 화면비의 옵티머스 뷰를 선보였다. 평단의 혹평없이 순항해 국내서는 출시 6개월만에 판매량 50만대를 돌파했다. 팬택은 전략폰으로 5인치폰인 '베가S5'를 공개했다. 그 영향은 아이폰도 꺾지 못했다. 4인치를 유지했던 애플은 아이폰6부터 ‘플러스’ 모델을 추가해 대화면 기류에 편승했다.
◆ LTE 퀄컴 천하
초기 LTE 시장에서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와 LTE 통신모뎀이 스마트폰의 중요한 핵심 부품으로 부상했다. 새로운 4G LTE 인프라가 구축됐으니, 스마트폰에서도 이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했기에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LTE 초기 시장에서는 퀄컴이 독보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LTE 스마트폰 전체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강력했다. 퀄컴 칩 수급 여하에 따라 제조사들의 스마트폰 공급도 출렁거렸다.
퀄컴이 LTE 초기 시장에서 높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비결은 가파르게 올라가는 스마트폰 성능과 차세대 네트워크 기술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담당하는 모바일AP는 LTE 신호를 받아 오는 통신모뎀과의 연동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퀄컴은 한발 더 나아가 모바일AP와 통신모뎀을 모두 갖춘 원칩 솔루션을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었다. 원칩 솔루션을 통해 면적을 줄이고, 전력효율을 높일 수 있었기 때문에 보다 얇고 오래가는 스마트폰 설계가 가능했다.
퀄컴의 LTE원칩 영향력은 국내 출시된 초기 LTE 스마트폰들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 삼성전자는 2011년 출시한 국내 첫 LTE 스마트폰인 '갤럭시S2 LTE'에 자체 모바일AP인 엑시노스 대신 퀄컴 '스냅드래곤S4 MSM8960'을 도입했다. 같은해 출시된 '갤럭시노트'의 경우에도 3G 모델은 엑시노스가 쓰였지만 국내 출시된 LTE 모델은 퀄컴칩에 적용됐다.
이 밖에도 LG전자와 팬택 등 국내 제조사들뿐만 아니라 글로벌 휴대폰 제조사들도 LTE 스마트폰에 모두 퀄컴 스냅드래곤 MSM8660과 MSM8960 등을 탑재 시켰다.
2012년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에 이어 KT가 LTE 대열에 합류했을 때도 퀄컴 칩 사정으로 인해 국내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속앓이가 이어졌다.
LG전자와 팬택은 삼성전자보다 먼저 LTE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각각 '옵티머스 LTE2'와 '베가레이서2'를 앞다퉈 내놨다. 하지만 퀄컴에 발목이 잡혔다. 퀄컴은 팹리스 업체로 이를 생산하는 곳은 당시 대만 TSMC였다. TSMC의 수율이 떨어져 퀄컴칩 공급량이 부족하게 된 것.
당시 팬택은 퀄컴칩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게 사실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LG전자는 큰 문제가 없다고 일축했지만 자유로울 수 없었다. 업계에서는 두 업체가 전략 모델에 대한 초도물량을 당초 계획한 수량보다 적게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같은 상황은 삼성전자에게도 해당됐다. 당시 삼성전자는 갤럭시S3 3G 모델을 먼저 출시하고, 이후 LTE 모델을 나중에 출시하는 전략을 펼치기도 했다.
모바일AP 업체들은 퀄컴의 종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감힘을 썼다. 인텔은 인피니언 무선사업부를, 엔비디아는 아이세라 등을 인수해 무선 역량을 키웠다. 삼성전자도 2015년 시스템LSI를 통해 원칩화에 성공했다.
◆ 3G 놓치고 싶지 않아…유심→나노심 수작업
LTE 상용화 당시 국내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발 빠른 대응으로 신규 LTE폰을 쏟아냈다. 다만, 글로벌 정세는 3G에서 LTE로 넘어가는 과도기 초반이었다. 3G가 보편화되거나 도입되는 상황인 곳도 있었다. 삼성전자 '갤럭시노트'는 국내서는 LTE용으로 출시됐으나 북미 시장에는 3G폰으로 출시된 배경이다.
이통3사의 초기 LTE 요금제는 3G 대비 단연 비쌌다. 3G 요금제에는 데이터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무제한 조건이 달려 있었기에 전국망 커버리지가 완성되지 않은 LTE보다 3G를 유지하려는 고객들도 상당했다.
다만, 스펙이 뛰어난 프리미엄 스마트폰은 전부 LTE로 출시돼 사용자의 선택을 막았다. 이통3사도 LTE폰은 LTE 요금만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국내 고객 사이에서 해외구매 방식으로 북미용 갤럭시노트 3G를 구매해 유심 이동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같은 니즈를 시장에 적용한 이통사가 KT다. KT는 2G 종료가 지연됨에 따라 타사와 달리 LTE를 도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2011년 12월 8일 LTE 상용화 시점으로 계획했으나 이 마저도 무산되면서 KT는 이미 공급받은 물량 소진뿐만 아니라 가입자 해지 방어를 위해 LTE폰의 3G 요금제 가입을 1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이후 KT는 약속대로 2012년 1월 20일 LTE폰의 3G 요금제 가입을 종료하는 대신 LTE폰에 유심 이동을 통한 3G 요금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열어줬다. 이에 따른 영향으로 SK텔레콤은 3월부터 이같은 유심 이동을 허용했다. LG유플러스는 통신규격상 유심 자체(2G)가 없었기에 이같은 정책에서는 제외된다.
SK텔레콤과 KT가 LTE폰 3G유심이동을 허용하기는 했으나 실제로 이같은 정책의 수혜를 받기란 어려웠다. 당시만 해도 자급제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자급제폰을 얻기 위해서는 일부 제한된 오프라인 매장이나 통신사에서 구매한 단말이 해지되서 공기계가 되거나 해외구매대행 절차를 밟아야 했다.
게다가 LTE 초기에는 같은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이통사별로 달리 제작돼 유통됐기 때문에 가입하고자 하는 이통사, 소위 'SKT향', 'KT향' 제품을 찾아야 했다. 하드웨어 제약에 따라 SKT향 제품을 구매하면 KT에서 개통하더라도 제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 연출됐다.
2012년 12월 애플의 첫 LTE폰인 '아이폰5'에 대한 3G 요금제 유지 열망은 계속됐다. '아이폰5'도 타 제품과 마찬가지로 이통사에서 구매할 때 LTE 요금제만 가입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일부 고객 사이에서는 해외구매대행 또는 해외 애플스토어, 지인 등을 통해 언락폰을 가져와 유심 이동을 시도하기도 했다.
문제는 애플이 아이폰5에서 유심 규격을 바꾼데 있다. 당시 3G폰과 LTE폰의 유심은 마이크로심이었으나 애플이 아이폰5에는 나노심을 채택했다. 나노심은 마이크로심 대비 사이즈가 작기 때문에 유심 이동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하지만 국내 사용자는 이에 굴복하지 않고 3G 마이크로심을 나노심 사이즈로 잘라 쓰기에 이르렀다. 나중에는 나노심 틀을 만들어 누구나 마이크로심을 잘 자를 수 있도록 도왔다.
▶ 다시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목차
1편. 삐삐·카폰 이동통신을 깨우다
① '삐삐' 무선호출기(上)…청약 가입했던 시절② '삐삐' 무선호출기(中)…‘삐삐인생' 그래도 좋다③ '삐삐' 무선호출기(下)…’012 vs 015’ 경합과 몰락 ④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上)…"나, 이런 사람이야!"⑤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下)…’쌍안테나' 역사 속으로2편. 1세대 통신(1G)
⑥ 삼통사 비긴즈⑦ 삼통사 경쟁의 서막⑧ 이동전화 첫 상용화, ‘호돌이’의 추억➈ 이동통신 100만 가입자 시대 열렸다⑩ 100년 통신독점 깨지다…'한국통신 vs 데이콤’3편. 제2이동통신사 大戰
⑪ 제2이통사 大戰 발발…시련의 연속 체신부⑫ 제2이통사 경쟁율 6:1…겨울부터 뜨거웠다⑭ ‘선경·포철·코오롱’ 각축전…제2이통사 확정⑮ 제2이통사 7일만에 ‘불발’…정치, 경제를 압도했다⑯ 2차 제2이통사 선정 발표…판 흔든 정부·춤추는 기업⑰ 최종현 선경회장 뚝심 통했다…’제1이통사’ 민간 탄생⑱ 신세기통신 출범…1·2 이통사 민간 ‘경합’4편. CDMA 세계 최초 상용화
⑲ ‘라붐’ 속 한 장면…2G CDMA 첫 항해 시작⑳ 2G CDMA "가보자 vs 안된다"…해결사 등판㉑ CDMA 예비시험 통과했지만…상용시험 무거운 ‘첫걸음’㉒ 한국통신·데이콤 ‘TDMA’ vs 한국이통·신세기 ‘CDMA’㉓ 한국이동통신 도박 통했다…PCS 표준 CDMA 확정㉔ ‘디지털·스피드 011’ 탄생…세계 최초 CDMA 쾌거㉕ ‘파워 디지털 017’ 탄생…신세기통신 CDMA 상용화5편. 이동통신 춘추전국시대 개막
㉖ 제3 이동통신사 찾아라…新 PCS 선정 개막㉗ ‘LG텔레콤 vs 에버넷’…‘한솔PCS vs 글로텔 vs 그린텔’㉘ PCS 사업자 확정…‘한국통신·LG·한솔’㉙ ‘016’ 한국통신프리텔·‘018’ 한솔PCS·‘019’ LG텔레콤㉚ ‘PCS 경합’…64세 어르신도 번지점프 했다㉛ 이동통신 5사 ‘각자도생’…춘추전국시대 개막6편. 이동통신 혼돈의 세기말
㉜ 3G IMT-2000 향한 첫 항해 시작㉝ 이동통신 1천만 돌파했으나 ‘풍요속 빈곤’…新 브랜드 ‘SKY’ 탄생㉞ 스무살의 011 TTL·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묻지마 다쳐㉟ ‘SK텔레콤+신세기통신’ 인수합병…사상 첫 점유율 낮추기㊱ '한국통신프리텔+한솔PCS' 인수합병…춘추전국→삼국정립7편. 3세대 이동통신(IMT-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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