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㊷ 연기 또 연기…3G WCDMA 초라한 등장 [김문기의 아이씨테크]


[다시 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8부. 3G 시대 개막

우리나라가 정보통신강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첫발인 한국전기통신공사(KT), 한국데이터통신(LGU+), 한국이동통신서비스(SKT)가 설립된 지 꼬박 4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간 이동통신 역시 비약적으로 성장해 슬로우 무버에서 패스트 팔로우로, 다시 글로벌 퍼스트 무버로 도약했습니다. 5G 시대 정보통신 주도권 싸움은 더 격렬해졌고, 다시 도전에 나서야할 절체절명의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과거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부족하지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동통신 연대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담긴 독자의 제보도 받습니다 [편집자주]
LG전자가 세계 최초로 3세대 이동통신 서비스(WCDMA) 기반의 지상파DMB(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 : 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 휴대폰을 개발했다. [사진=LG전자]
LG전자가 세계 최초로 3세대 이동통신 서비스(WCDMA) 기반의 지상파DMB(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 : 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 휴대폰을 개발했다. [사진=LG전자]

[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2001년 12월 10일.

한국통신은 사명을 KT(Korea Telecom)로 변경한다. 11일에는 창립기념식을 개최하고 사명 변경을 널리 알렸다. 사명 변경은 민영화를 앞두고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해서였다. 공기업 분위기를 바꾸자는 의미도 있었다. 대부분의 계열사 역시 앞자리를 ‘KT’로 변경했다.

당초 비동기식 IMT-2000을 상용화하겠다고 나선 SK텔레콤과 KT는 결국 시기를 연기했다. 정보통신부에 2003년 하반기 WCDMA를 상용화하겠다고 전달했다. LG텔레콤도 비슷한 시기에 동기식 CDMA2000 1x EVDV 서비스를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LG전자와 삼성전자가 나란히 WCDMA용 휴대폰을 개발하고 시스템 연동시험과 서비스 시연에 성공하면서 2002 한일월드컵을 통해 세상의 빛을 받게 됐다. 아울러 SK IMT와 KT아이컴은 서둘러 네트워크 장비업체 선정에 나섰다.

다만, 글로벌 동향이 심상치 않았다. 앞서 비동기식 WCDMA를 상용화한 일본 NTT도코모의 가입자 증가 추이가 저조했고, 영국과 오스트리아 등도 나섰지만 쉽지 않았다. 네트워크 장비와 시스템 구축, 단말이 준비돼야 하는데 인프라 성립의 시차가 맞지 않았다.

그 사이 KT와 파워콤이 완전 민영화에 성공했다. KT는 SK텔레콤과 꼬여 있던 각자의 지분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각 IMT 컨소시엄의 합병 걸림돌을 없앴다. 파워콤은 데이콤으로 넘어가면서, 어려웠던 LG텔레콤의 숨통을 틔어줬다.

WCDMA의 미래 불확실성이 점차 사라지면서 2003년 상용화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KTF와 KT아이컴은 12월 14일 이사회를 통해 2003년 3월 1일 합병법인 출범을 결의했다. SK텔레콤 역시 같은달 20일 이사회를 통해 SK IMT를 내년 4월 흡수 합병키로 결정했다.

이로써 다사다난했던 2002년말 SK텔레콤과 KT, LG텔레콤이라는 3강 체제가 서서히 시장에 안착화됐다.

◆ SK텔레콤 KTF, IMT 흡수

SK IMT와 KT아이컴은 3천500억원 규모의 WCDMA 네트워크 장비업체를 선정했다. LG전자와 삼성전자가 선택됐다. 에릭슨과 노키아, 알카텔, 노텔 등은 탈락했다. 그나마 예비입찰자로 추후를 도모할 수 있게 됐다.

2003년 새해가 밝자 KT아이컴은 4월 WCDMA 시범 서비스에 돌입하고 6월 상용화하겠다는 기존 계획을 확정했다. SK IMT도 9월 상용화를 위해 막판 저울질에 나섰다. 단말도 기지개를 폈다. 1월말 LG전자가 CDMA2000 1x와 WCDMA를 동시 지원하는 듀얼밴드 듀얼모드(DBDM) 휴대폰인 LG-K8100 개발 성공을 알렸다.

비동기식 IMT-2000 도입 상황이 순탄하게 흘러감에 따라 관건은 다시 IMT-2000을 관장하던 별도 법인을 모체로 흡수하는 작업이었다. 상용화 가시권에 돌입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통합화였다.

KTF는 서둘러 이사회를 열고 이경준 사장 대신 남중수 재무실장을 합병될 회사의 대표로 선임했다. KTF와 KT아이컴은 1월 28일 임시주주총회를 개최하고 두 회사의 합병계약을 승인했다. 다만 정보통신부 인가가 늦어지면서 당초 계획했던 3월 1일에서 3월 6일로 합병기일을 늦췄다. 그 가운데 4일 정보통신부로부터 조건부 인가가 떨어졌다. 이에 따라 최종적으로 KT아이컴은 KTF로 흡수됐다.

다만, 이 과정에서 문제도 발생했다. KT아이컴의 경우 그간 독자적으로 IMT-2000을 상용화할 것을 예견해 규모를 키웠던게 화근이었다. KTF로 흡수되면서 중복인원들이 늘어나게 됐다. 이에 따라 인력감축이라는 피바람을 감내해야 했다.

SK IMT는 2월 21일 정부로부터 합병승인을 받아 정기주주총회를 개최해 SK텔레콤과 합병하기로 했다. 정보통신부 인가는 4월 29일 결정됐다. 5월 7일 최종적으로 SK IMT는 SK텔레콤으로 흡수됐다. 인가 조건도 KTF와 비슷했으며 그간 흡수를 염두에 두고 조직을 이끌어왔기에 물리화학적 결합에 어려움은 없었다.

◆ SK텔레콤 ‘준’ vs KTF ‘핌’…등 떠밀린 WCDMA

비동기식 IMT-2000 상용화가 코앞으로 다가왔으나 SK텔레콤과 KTF는 돌연 서비스 연기론에 다시 불을 지폈다. 투자비를 축소하는 한편 슬그머니 상용화 시기를 밀고, 서비스 지역을 축소시켰다.

이같은 조치는 경제적 불황도 한 몫 했으나 비동기식 IMT-2000에 대한 미래 불확실성이 계속해서 발목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앞서 상용화한 CDMA2000 1x EV-DO 서비스가 예상보다 선전했다. WCDMA를 상용화하더라도 초기 EV-DO 대비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뿐더러 단말기 교체에 따른 부담과 킬러 콘텐츠까지 마련해야 했다. 더욱이 SK텔레콤의 EV-DO 브랜드 ‘준(june)’과 KTF ‘핌(Fimm)’의 인기가 상당해 마케팅 역량을 집중하다보니, 여유가 많지 않았다.

결국 정보통신부는 비동기식 IMT-2000을 도입할 SK텔레콤과 KTF에게 2003년말 서울지역에서 우선 상용화한후 전국 시지역은 2006년 6월까지 확대하는 방향을 확정했다. LG텔레콤도 마찬가지로 2006년 6월까지 시한을 연기했다. 과잉투자 방지를 위한 WCDMA 공동망 구축 역시 무산됐다.

속이 타는 쪽은 정보통신부였다. 공모를 통해 사업자를 선정했으나 해당 기업들이 상용화에 난색을 표함에 따라 미래 예측 가능성 상실에 더해 정책 실패를 감내해야 했기 때문. 상용화에 강한 의지를 보인 KTF가 9~10월에 진행한 시범서비스에서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하고 사업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린데 이어 SK텔레콤도 도입 시기를 연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따라 정보통신부는 선정 조건에 부합한다면 사업권을 반납해야 한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한편, 때로는 WCDMA 단말에 대한 보조금 지급하겠다며 달래기도 했다. 정부의 멱살잡이에 사업자들의 상용화 일정은 10월에서 11월로 다시 연내로 계속해서 밀렸으나 실제 도입은 함흥차사였다.

하지만 정보통신부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연내 상용화를 밀어 붙였다. 사업자의 이용약관이나 마케팅 프로그램 마련은 어렵지 않으며, 투자 역시도 의지의 문제일 뿐 상용화를 못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라고 못박았다.

2003년 12월 19일 마침내 국내 비동기식 IMT-2000 서비스인 WCDMA가 SK텔레콤과 KTF로부터 첫 상용화됐다.

고집으로 탄생한 WCDMA 상용화 첫날은 초라함 그 자체였다. SK텔레콤은 종로와 압구정, 구로, 코엑스, 김포공항 등 5개 대리점을 지정했고, KTF는 강남과 강서, 강동, 서부, 동부, 북부, 중앙, 노량진, 테크노마트 등 10개 대리점에 WCDMA 창구를 마련했다. 다만, 단말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고, 직원들의 교육도 미비한 상태였다. 물론 고객도 없이 한산했다.

꿈의 이동통신이라 불린, 3세대 통신(3G)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WCDMA의 첫날 진풍경이었다.

또한 IMT-2000은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 희노애락이 반복됐다. 2004년 1월 1일 도입된 번호이동성 제도와 010통합식별번호 제도 때문이다. 각 사의 마케팅 수위가 높아짐에 따라 WCDMA 투자계획을 확정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 아니러니하게도 번호이동건수가 높아지면서 WCDMA에 가입하는 고객들은 늘어났다. 결론적으로 소비자 불만이 상당할 것이 예고된 셈. 악순환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 다시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목차

1편. 삐삐·카폰 이동통신을 깨우다

① '삐삐' 무선호출기(上)…청약 가입했던 시절

② '삐삐' 무선호출기(中)…‘삐삐인생' 그래도 좋다

③ '삐삐' 무선호출기(下)…’012 vs 015’ 경합과 몰락

④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上)…"나, 이런 사람이야!"

⑤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下)…’쌍안테나' 역사 속으로

2편. 1세대 통신(1G)

⑥ 삼통사 비긴즈

⑦ 삼통사 경쟁의 서막

⑧ 이동전화 첫 상용화, ‘호돌이’의 추억

➈ 이동통신 100만 가입자 시대 열렸다

⑩ 100년 통신독점 깨지다…'한국통신 vs 데이콤’

3편. 제2이동통신사 大戰

⑪ 제2이통사 大戰 발발…시련의 연속 체신부

⑫ 제2이통사 경쟁율 6:1…겨울부터 뜨거웠다

⑭ ‘선경·포철·코오롱’ 각축전…제2이통사 확정

⑮ 제2이통사 7일만에 ‘불발’…정치, 경제를 압도했다

⑯ 2차 제2이통사 선정 발표…판 흔든 정부·춤추는 기업

⑰ 최종현 선경회장 뚝심 통했다…’제1이통사’ 민간 탄생

⑱ 신세기통신 출범…1·2 이통사 민간 ‘경합’

4편. CDMA 세계 최초 상용화

⑲ ‘라붐’ 속 한 장면…2G CDMA 첫 항해 시작

⑳ 2G CDMA "가보자 vs 안된다"…해결사 등판

㉑ CDMA 예비시험 통과했지만…상용시험 무거운 ‘첫걸음’

㉒ 한국통신·데이콤 ‘TDMA’ vs 한국이통·신세기 ‘CDMA’

㉓ 한국이동통신 도박 통했다…PCS 표준 CDMA 확정

㉔ ‘디지털·스피드 011’ 탄생…세계 최초 CDMA 쾌거

㉕ ‘파워 디지털 017’ 탄생…신세기통신 CDMA 상용화

5편. 이동통신 춘추전국시대 개막

㉖ 제3 이동통신사 찾아라…新 PCS 선정 개막

㉗ ‘LG텔레콤 vs 에버넷’…‘한솔PCS vs 글로텔 vs 그린텔’

㉘ PCS 사업자 확정…‘한국통신·LG·한솔’

㉙ ‘016’ 한국통신프리텔·‘018’ 한솔PCS·‘019’ LG텔레콤

㉚ ‘PCS 경합’…64세 어르신도 번지점프 했다

㉛ 이동통신 5사 ‘각자도생’…춘추전국시대 개막

6편. 이동통신 혼돈의 세기말

㉜ 3G IMT-2000 향한 첫 항해 시작

㉝ 이동통신 1천만 돌파했으나 ‘풍요속 빈곤’…新 브랜드 ‘SKY’ 탄생

㉞ 스무살의 011 TTL·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묻지마 다쳐

㉟ ‘SK텔레콤+신세기통신’ 인수합병…사상 첫 점유율 낮추기

㊱ '한국통신프리텔+한솔PCS' 인수합병…춘추전국→삼국정립

7편. 3세대 이동통신(IMT-2000)

㊲ ‘SK·한통·LG·하나로’ IMT-2000 도전…춤추는 정부

㊳ 하나로통신 007 작전…’정부·재벌’ 허 찔렸다

㊴ SK텔레콤·한국통신 IMT-2000 입성…LG·하나로 ‘탈락'

㊵ LG텔레콤 vs 하나로통신…동기식 IMT-2000 주인 찾았다

8편. 3G 시대 개막

㊶ IMT-2000 표류…CDMA2000 비상

㊷ 연기 또 연기…3G WCDMA 초라한 등장

/김문기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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