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5개의 이동통신 사업자가 치열한 경합체제에 돌입하기 전, 전세계는 다음 세대의 통신기술 개발에 매진했다. 아날로그 1세대를 넘어 디지털로 전환된 2세대, 그리고 전세계를 하나로 묶기 위한 3세대 통신에 대한 꿈에 부풀었다. 이를 두고 세간에서는 말 그대로 ‘꿈의 통신시대’라 불렀다.
다만, 전세계를 잇기 위해서는 모두를 관통하는 통일된 기술체계가 필요했다. 즉, 기술에 대한 표준이 마련돼야 했다. 문제는 어떤 기술을 표준으로 선택하는가에 있었다. 역으로 환산한다면 누군가는 기술을 개발해야 하고 그 기술이 표준으로 쓰인다면, 이동통신 시장에서 그 누군가가 그야말로 승기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술 표준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현재까지도 중요 핵심 구실을 하고 있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을 통해 표준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ITU는 국제주파수 분배 및 기술표준화를 위한 국제연합(UN) 산하 정보통신기술(ICT) 전문기구다. 최초의 국제 전신망을 관리하기 위해 1865년 설립됐다. 수년에 걸친 기술진화에 따라 ITU는 음성 전화의 발명, 무선 통신의 개발, 최초의 통신 위성 발사, 최근에는 통신기반 정보 시대를 포괄할 수 있을만큼 확장됐다. UN의 전문기구 중에서 전기통신 관련 세계 최고의 국제기구이기도 하다.
2020년 기준 ITU에 가입된 국가는 193개로 약 900개 기업과 대학, 국제 및 지역 조직이 포함돼 있다. 우리나라는 1952년 가입했다. 조직은 최고 의사 결정 기관인 전권위원회의와 이사회, 무선통신부문을 담당하는 ITU-R, 전기통신 표준화 부문인 ITU-T, 전기통신개발부문인 ITU-D로 구성됐다.
한마디로 ITU는 전기통신 기술과 관련된 전세계적인 약속을 공식화 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역시 주요 인사들이 각 작업반에서 핵심과제를 이끌고 있다.
◆ 전세계 잇기 위한 표준경쟁 시작
전세계는 3세대 통신으로 쓰일 표준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물밑 경쟁을 벌였다. 성공한다면 거대 생태계를, 실패한다면 갈라파고스에 빠져 자멸할 수 있었다. 이동통신은 단순히 경제적인 진흥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보안성으로도 그 중요성이 컸다.
물론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려웠다. 세를 키울수록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다. 적은 곧 동지가 되고 동지는 또 다시 적으로 만나야 했다. 경쟁과 상생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치 속에서 변증법적 결과물을 내야 하는 난제에 직면했다.
예를 들어 다국적 기업 Q사가 신규 자동차 제조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최고속도 20Km/h를 달성하는 자동차를 만드는 과제다. 이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다양한 기업들이 참가했다. 이들은 가솔린이나 경유, 전기, 수소 등 다양한 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를 제작했다. 이 중 가솔린을 활용한 A 자동차가 목표 속도를 달성하는데 성공했다.
A는 가솔린 자동차의 설계도면을 Q에게 제출하고 심사 끝에 최종 승인을 결정한다. 이에 따라 A가 설계한 자동차는 세계 곳곳을 누비게 되고, A는 돈방석에 앉는다. 또한 가솔린을 제공하는 정유사나 A가 활용하는 부품, 그간 파트너십을 맺었던 관계사들까지도 매출 상승의 기쁨을 누렸다.
물론, 현실은 이렇게 쉽게 일이 풀리지는 않는다. 전기를 연료로 하는 자동차를 개발하던 B는 20km/h 달성을 위해서 시작부터 C, D와 협업을 전개했다. 수많은 배터리 기업들이 B, C, D의 협업개발에 힘을 주기 위해 설계도 작성에 참가했다. 전반적인 부품업계도 친환경적인 전기차 개발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이에 따라 B, C, D는 ‘BCD협력체’를 만들어 더 많은 참가자들을 모집했다. 결국 전기로 20Km/h를 달리는 자동차를 만드는데 성공하고 설계도를 Q에 제출해 최종 승인을 받게 된다.
이에 따라 대세는 가솔린 자동차에서 전기 자동차로 기울게 된다. 전기 자동차가 더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한 가솔린 진영은 A를 뒤로 하고 속속 BCD협력체에 가담한다. 정유업계도 어려움에 빠지자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제안하기도 한다. 결국 A의 설계도면이 앞서 채택되기는 했으나 BCD의 설계도가 세상의 중심이 된 셈이다.
실제 현실과는 다른 가상 시나리오이기는 하나 이같은 절차가 표준이 제정되고 전세계에 적용되는 하나의 사례를 보여준 셈이다. A가 최종승인을 받기 전에 BCD가 먼저 선점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또는 BCD에 대항하기 위해 A가 규합한 ‘AEF연합체’가 꾸려질 수도 있고, 또 다른 G가 등장할 수도 있다.
이렇듯 표준은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되는 양상을 보인다.
◆ 韓 표준 세우자…민관 협력 ‘따로 또 같이’
3세대 이동통신 표준명은 초기 미래공중육상이동통신서비스(Future epublic land mobile telecommunication system)라 불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줄인 플림스(FPLMTS)라는 명칭이 쓰였다. 공중 주파수 사용과 단일 기술표준으로 세계 어느 곳에서도 하나의 단말기로 음성과 데이터, 동영상 등 고속 멀티미디어 통신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차세대 이동통신을 가리킨다. 최대 속도 2Mbps를 낼 수 있어 모니터 달린 단말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다만, 용어가 복잡하고 어려워 ITU에서 보다 쉬운 IMT-2000(International mobile telecommunication-2000)으로 표준명을 정립했다. 활용되는 주파수 대역이 2000MHz(2GHz), 상용화 시기가 2000년대임을 고려한 결과였다. 즉, 플림스와 IMT-2000은 시기의 차이가 있을뿐 거의 동일한 의미로 통용된다.
표준명이 곧 기술표준과 동등관계는 아니다. 각각의 기술 후보군이 경합을 벌여 표준이라는 영예를 얻게 되는 셈이다. 그 영예는 단독이 될 수도 복수가 될 수도 있다. 핵심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술이 표준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
2G에서의 기술들은 미국이 이끈 CDMA와 TDMA, 유럽의 GSM, 일본 단독의 PDC 등 다양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CDMA를 택했다. 3G는 이같은 근간을 보다 확장시킨 개념이다. GSM은 이후 HSCSD, GPRS, EDGE로, TDMA는 EDGE로, CDMA는 CDMA200 1xRTT로 진화했다. 각 국가와 진영들은 자신의 기술이 표준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더했다.
각각의 강점 역시 영향을 줬다. 네트워크 장비기업과 단말 시장에서 위용을 갖춘 유럽과 운영체제(OS)와 애플리케이션 생태계가 굳건하고 유선 인프라에 막강한 화력을 보유한 미국, 아시아 지역에서 독자 생존체계를 마련하고자 했던 일본과, 중국 등이 이동통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눈치싸움을 벌였다.
우리나라는 2차 신규 통신사업자(PCS) 선정 결과 발표 이후부터 3세대 통신 관련 이슈가 부상했다. 이미 이동통신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사업자의 경우 앞서 다음 세대를 대비해야 했고, 삼성과 현대, 대우 등 10여개 대그룹과 중견그룹은 탈락의 실패를 거울 삼아 다음 세대에서 신규 사업자 선정의 기회를 잡아야 했다. 정부 역시 이를 주도적으로 지원해야 했다.
정보통신부는 1996년 10월 25일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IMT-200 기술을 2001년까지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우선적으로 ITU 국제 표준화 계획을 고려해 1999년까지 정부와 업계가 각각 약 1천억원을 투자해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를 중심으로 표준 모델을 개발하기로 했다. 모델의 기능을 검증한 후 ITU에 제안해 국제 표준화를 이끌겠다는 포부였다. 표준으로 확정된다면 2001년 상용화를 추진하겠다는 로드맵을 짰다.
ITU는 1997년 4월부터 각 국가와 기관들로부터 표준안을 제출받고 1999년 12월 최종 표준안을 결정하기로 했다. 미국은 모토로라와 루슨트 등이 각기 다른 CDMA와 TDMA 기술을 확보하고 있었기에 독자 세력을 구축했다. 일본은 중국을 포섭해 CDMA 키우기에 나섰고, 유럽은 유럽표준화기구(ETSI)를 중심으로 UMTS 표준을 제안하고자 했다. 우리나라도 ETRI를 중심으로 100여개 업체가 모여 표준 모델 경합에 나선 셈이다.
1997년 1월 30일 차세대 이동통신기술개발협회의가 출범했다.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첫 회의에는 서용희 한국통신 무선사업본부장과 김영기 삼성전자 상무가 각각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맡았으며, 16명의 운영위원이 함께했다. 한국통신과 ETRI,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 데이콤, 삼성전자, 현대전자, 태일정밀, 태림전자 등이 이름을 올렸다.
같은해 10월 정보통신부는 국제 정세에 부합하기 위해 복수 표준체계를 확립했다. 한국통신은 퀄컴과 루슨트, 노던텔레콤이 주도하고 있는 북미 방식을, SK텔레콤은 NTT 도코모와 함께한 일본 방식 개발을 주도했다. 한쪽이 아닌 양쪽 모두에 대한 가능성을 쥐고 있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SK텔레콤은 1994년부터 광대역 CDMA 개발을 착수해 1995년 비동기 방식의 핵심 기술인 모뎀 ASIC를 개발했다. 1996년에는 모뎀 ASIC 기능 개선을 이뤘다. 또한 정보통신부로부터 실험용 주파수를 통해 IMT-2000 기술을 개발한 SK텔레콤은 1997년 9월 대전중앙연구원에서 국내 최초, 세계에서 3번째로 128Kbps급 IMT-2000 시험 시스템 개발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뤘다.
또한 1998년 초 384Kbps급 시험 시스템 개발에도 성공한 후 2월 18일 김대중 대통령 취임 행사에서 IMT-2000 시연회를 열어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한국통신 역시 1997년 8월 6일 정식으로 IMT-2000 실험용 2.1GHz 주파수에 대한 무선국 허가를 받고 기술 개발을 본격화했다.
새천년을 앞둔 1999년 7월 27일. 정보통신부는 IMT-2000 정책 추진일정을 발표하면서 서비스 사업권 선정을 발표했다. 3세대 이동통신 시장 선점을 위한 불꽃이 재점화된 시기다.
▶ 다시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목차
1편. 삐삐·카폰 이동통신을 깨우다
① '삐삐' 무선호출기(上)…청약 가입했던 시절② '삐삐' 무선호출기(中)…‘삐삐인생' 그래도 좋다③ '삐삐' 무선호출기(下)…’012 vs 015’ 경합과 몰락 ④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上)…"나, 이런 사람이야!"⑤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下)…’쌍안테나' 역사 속으로2편. 1세대 통신(1G)
⑥ 삼통사 비긴즈⑦ 삼통사 경쟁의 서막⑧ 이동전화 첫 상용화, ‘호돌이’의 추억➈ 이동통신 100만 가입자 시대 열렸다⑩ 100년 통신독점 깨지다…'한국통신 vs 데이콤’3편. 제2이동통신사 大戰
⑪ 제2이통사 大戰 발발…시련의 연속 체신부⑫ 제2이통사 경쟁율 6:1…겨울부터 뜨거웠다⑭ ‘선경·포철·코오롱’ 각축전…제2이통사 확정⑮ 제2이통사 7일만에 ‘불발’…정치, 경제를 압도했다⑯ 2차 제2이통사 선정 발표…판 흔든 정부·춤추는 기업⑰ 최종현 선경회장 뚝심 통했다…’제1이통사’ 민간 탄생⑱ 신세기통신 출범…1·2 이통사 민간 ‘경합’4편. CDMA 세계 최초 상용화
⑲ ‘라붐’ 속 한 장면…2G CDMA 첫 항해 시작⑳ 2G CDMA "가보자 vs 안된다"…해결사 등판㉑ CDMA 예비시험 통과했지만…상용시험 무거운 ‘첫걸음’㉒ 한국통신·데이콤 ‘TDMA’ vs 한국이통·신세기 ‘CDMA’㉓ 한국이동통신 도박 통했다…PCS 표준 CDMA 확정㉔ ‘디지털·스피드 011’ 탄생…세계 최초 CDMA 쾌거㉕ ‘파워 디지털 017’ 탄생…신세기통신 CDMA 상용화5편. 이동통신 춘추전국시대 개막
㉖ 제3 이동통신사 찾아라…新 PCS 선정 개막㉗ ‘LG텔레콤 vs 에버넷’…‘한솔PCS vs 글로텔 vs 그린텔’㉘ PCS 사업자 확정…‘한국통신·LG·한솔’㉙ ‘016’ 한국통신프리텔·‘018’ 한솔PCS·‘019’ LG텔레콤㉚ ‘PCS 경합’…64세 어르신도 번지점프 했다㉛ 이동통신 5사 ‘각자도생’…춘추전국시대 개막/김문기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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