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서민지 기자] "목숨 걸고 하겠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450조원 투자 계획에 대해 이같이 밝힌 뒤로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1위 자리를 이어가고 있지만, 시스템반도체에서도 1위를 차지하겠다는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 달성이 불투명해지자 위기 의식을 느낀 것으로 해석된다.
15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지난 7일 유럽 출장길에 올랐다. 11박 12일간의 출장을 마치고 오는 18일 귀국할 예정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14일(현지 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총리 집무실에서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 만났다. 최첨단 파운드리 역량 강화를 위한 협력 확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문제 해소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과 뤼터 총리가 만난 것은 지난 2016년 9월 이후 6년 만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6년 9월 방한한 뤼터 총리를 맞아 삼성전자 전시관 '딜라이트'를 직접 안내하며 삼성전자의 사업 현황과 주요 제품, 핵심 기술 등을 소개한 바 있다.
뤼터 총리는 차기 EU 정상회의 의장으로 거론되는 최고위급 인사다. 이 부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기업인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적인 정·관계 리더들까지 확장되고 있다는 평가다.
같은 날 이 부회장은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있는 ASML 본사를 방문해 피터 베닝크 최고경영자(CEO), 마틴 반 덴 브링크 최고기술책임자(CTO) 등 경영진을 만나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 부회장이 네덜란드 ASML 본사를 찾은 것은 지난 2020년 10월 이후 20개월 만이다.
이 자리에서는 ▲미래 반도체 기술 트렌드 ▲반도체 시장 전망 ▲EUV 노광 장비의 원활한 수급 방안 ▲양사 중장기 사업 방향 등에 대한 폭넓은 협의가 이뤄졌다.
네덜란드 방문은 이번 출장 기간 중 가장 중요한 일정으로 꼽힌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분야에서 1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초미세공정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데, ASML은 7나노미터 이하 초미세 공정 구현에 필수적인 EUV(극자외선) 장비를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EUV 장비 역시 품귀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시장 강자인 대만 TSMC를 추격하기 위해서는 EUV 장비 확보가 중요한 상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은 TSMC가 점유율 52.1%로 압도적인 1위를 이어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18.3%로 2위를 기록했다.
이 부회장은 다음 날인 15일에는 벨기에 루벤에 있는 유럽 최대 규모의 종합반도체 연구소 imec를 방문해 루크 반 덴 호브 CEO와 만났다. 반도체 분야 최신 기술과 연구개발 방향을 논의한 것은 물론 인공지능, 생명과학, 미래에너지 등 imec에서 진행 중인 첨단분야 연구 과제에 대한 소개를 받고 연구개발 현장을 살펴보기도 했다.
재계에선 이 부회장의 광폭 행보에 대해 '사법리스크' 속에도 경영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초격차' 전략을 이어가려는 절박감이 반영된 결과라고 해석한다. 이 부회장은 반도체 초격차를 위해 국내외를 오가며 숨 가쁘게 일정을 소화해왔다.
실제 지난 2017년 8월 화성 반도체 사업장을 찾아 임직원들에게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고 미래 반도체 수요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기술 초격차가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고 당부한 바 있다.
이어 2019년 1월 기흥사업장에서 DS부문 사장단 회의를 열고 시스템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강조했고, 2월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을 점검했다. 또 같은 해 4월 화성사업장에서 '반도체 비전 2030' 발표하고, 8월 DS 등 부품계열사 사장단 회의, 온양‧천안사업장 패키징사업 점검, 평택 2라인 건설현장 점검 등 현장경영에도 적극 나섰다.
2020년에도 새해 첫 현장경영으로 화성 반도체연구소 3나노 개발현장을 방문했다. 당시 이 부회장은 "과거의 실적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며 "역사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행보는 지난해 1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에서 실형을 받고 구속되면서 멈추게 됐다. 지난해 8월 15일 광복절 가석방으로 수감 생활을 마쳤지만, '취업 제한' 규정과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재판 등으로 인해 적극적인 경영 활동에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광폭 행보는 안심하고 있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라며 "최근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힌 데다 '목숨 걸고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만큼 이번 출장에서 M&A 계획을 구체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서민지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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