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시장의 우려는 과도합니다. 5㎚(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공정 수율은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고, 4나노 수율도 당초 계획한 구간에 진입한 만큼 안정적 수율을 바탕으로 공급을 극대화 할 것입니다."
올 초부터 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삼성전자 주요 사업들의 수율 문제를 두고 임원들이 최근 1분기 실적 발표 후 진행된 컨퍼런스콜에서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시장의 우려와 달리 사업이 안정적으로 잘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피력하며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을 맡고 있는 DS부문은 올 초 수율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QD디스플레이와 4나노 파운드리에서 당초 예상만큼의 수율이 나오지 않는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수율은 생산제품 중 양품 비율을 의미한다.
특히 TSMC와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미세공정 파운드리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 삼성전자의 차세대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인 '엑시노스 2200'이 납기를 못 맞추면서 당초 예상보다 '갤럭시S22' 시리즈에 적게 탑재된 것이 알려지며 수율 문제는 더 크게 부각됐다. 일각에선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미세공정 일부 제품 수율이 50% 아래로 떨어졌다는 평가까지 내놨다.
또 삼성전자가 전량 생산하고 있는 퀄컴의 4나노 AP인 스냅드래곤8 1세대 모델도 수율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퀄컴이 3나노 공정의 차기 제품 생산을 TSMC에 맡겼다는 풍문도 돌았다. 스냅드래곤8 1세대는 삼성전자가 최근 출시한 갤럭시S22 시리즈에 탑재됐다.
실제로 퀄컴은 차기 AP인 스냅드래곤 1세대 플러스를 TSMC에 맡긴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이 같은 움직임은 삼성전자의 수율 논란이 불거지기 전 결정된 사안인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최근엔 엔비디아가 발주한 데이터센터용·소비자용 그래픽처리장치(GPU) 사업도 TSMC가 발주했다는 설이 돌고 있다.
이로 인해 업계에선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시장 내 입지도 점차 줄어들 것으로 관측됐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TSMC의 시장점유율이 지난해 53%에서 올해 56%로 높아지는 반면,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같은 기간 18%에서 16%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퀄컴이 프로세스에 맞춰 일찌감치 결정했던 사안"이라며 "TSMC로 넘어간 시점이 교묘하게 수율 논란과 맞아 떨어지면서 문제가 더 확산된 듯 하다"고 말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올 초 파운드리사업부에 대한 경영진단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17년 파운드리사업부 승격 이후 치러지는 첫 경영진단이다.
또 지난 28일 열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선 임원들을 앞세워 수율 문제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적극 나섰다.
특히 강문수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부사장은 '파운드리 수율이 낮아 고객사가 대거 이탈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는 경쟁사인 대만 TSMC에 주요 고객사를 빼앗기고 있다는 외신 보도를 정면 반박한 것이다.
또 그는 "우려와 달리 현재 주요 고객사의 수요가 삼성전자가 가진 생산 능력 이상으로 견조하다"며 "다수의 주요 고객사와 장기공급계약을 체결하고 있고 이를 통해 공급 안정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삼성전자의 향후 5개년 구간 수주 잔액은 전년도 매출의 8배 규모"라며 "최근 시장의 우려는 과도하다"고 덧붙였다.
또 2분기에는 세계 최초로 게이트올어라운드(GAA) 3나노 공정 양산까지 이뤄내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자신감도 보였다. 계획대로 3나노 공정이 실현될 경우 파운드리 1위인 TSMC를 초미세공정에서 기술적으로 한 발 앞서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강 부사장은 "1세대 GAA공정의 품질 검증을 완료해 2분기 업계 최초 양산함으로써 경쟁사 대비 기술 우위를 확보할 계획"이라며 "3나노 공정은 선단 공정 개발 체계 개선을 통해 단계별 개발 검증 강화로 수율 램프업(생산량 확대) 기간을 단축하고, 수익성을 향상해 공급 안정화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향후 공정개발 가속화를 위해 신규 R&D(연구개발) 라인 확보를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와 관련된 잘못된 정보에 대해서도 정면 반박했다. 일부 언론이 '삼성전자가 10나노급 5세대(1b) D램 개발에 실패해 곧바로 6세대(1c) 개발로 넘어간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한진만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전략마케팅실 부사장이 직접 "사실이 아니다"고 밝힌 것이다.
D램 시장에서는 회로 선폭(트랜지스터 게이트의 폭)을 좁히기 위한 기술 경쟁이 치열한 상태다. 선폭이 좁을수록 웨이퍼(반도체 원판) 한 장에서 나오는 D램의 생산량이 늘어난다. 이에 업계에선 선폭을 반도체 업체의 기술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삼고 있다. 4세대인 1a D램의 선폭은 14나노로, 15나노로 알려진 3세대(1z)와 비교해 25% 높은 생산량을 보인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업계 최선단(최소 선폭) 14나노 D램 양산을 시작했다. 또 세계 최초로 7나노 이하 파운드리 공정에 활용하는 극자외선(EUV) 장비를 1a D램 공정에 도입한 바 있다. 여기에 이번 컨콜에선 12나노 D램도 업계에서 선도적으로 개발 중이라고 처음 공개했다.
한 부사장은 "(1b D램인) 12나노 개발은 계획에 맞춰 진행하고 있다"며 "현재 개발을 진행 중이고 양산 일정도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경쟁사와의 메모리 기술 격차가 좁혀지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과 관련해선 "기술 난도가 증가함에 따라 공급사들의 기술 수준이 높은 수준으로 수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이런 경쟁 환경 속에서도 D램에 최초로 극자외선 노광장비(EUV)를 도입하는 등 기술 변곡점을 선제적으로 맞이하며 리더십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시장의 우려를 충분히 잠재우기엔 삼성전자의 이번 움직임이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1위인 TSMC와의 점유율 격차가 올해 더 벌어질 것이란 관측에도 대규모 투자 계획을 제대로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TSMC는 올해 설비투자 규모를 최대 440억 달러(약 55조원)로 제시한 반면,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연간 투자 규모는 20조원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1b D램 개발에 실패했다는 등의 사실과 다른 소문이 퍼지면서 삼성전자 내부에서 임원들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해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많이 형성됐던 것으로 안다"며 "업계 3위 미국 마이크론이 지난해 1월 세계 최초로 1a D램 개발 및 양산에 성공했다고 밝힌 후 세계 1위 삼성전자의 위상이 흔들렸다는 평가까지 겹치면서 내부에선 위기감을 느낀 듯 하다"고 말했다.
삼성디스플레이도 최근 대내외적으로 퀀텀닷(QD) 디스플레이 수율 개선에 대해 적극 알리는 모양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해 11월 충남 아산사업장에서 QD-OLED 출하식을 진행한 후 월 3만 장 규모로 이를 생산하고 있다. 55·65인치 TV로 단순 계산하면 연간 100만 대 내외다.
업계에선 지난해 말부터 삼성디스플레이가 공급량이나 수율(전체 생산품 중 양품 비율)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왔다. 특히 삼성전자가 이달부터 미국법인을 통해서만 QD-OLED TV 사전 판매에 나선데다 지난달 말 온라인으로 개최한 글로벌 TV 신제품 소개 행사에서 QD-OLED TV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또 일각에선 삼성디스플레이의 QD-OLED 패널 수율을 두고 50% 안팎일 것으로 추정했다. 여기에 미국 '테크레이더', 독일 '하이세' 등 일부 외신들이 QD-OLED가 밝은 조명 환경에서 검은색(블랙) 표현이 제대로 되지 않는 데다 특유의 픽셀 배열로 인해 색이 부정확하다고 지적하는 등 제품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이 같은 분위기가 이어지자 삼성디스플레이 내부에서도 QD-OLED의 경쟁력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내며 불안한 모습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달 초 사내 게시판에 QD디스플레이 수율이 75%를 달성했다고 밝히며 논란 잠재우기에 나섰다. 또 이번 컨콜에서 최권영 삼성디스플레이 부사장은 "QD 디스플레이 생산 수율이 조기에 개선되면서 공급 제약도 빠르게 해소되고 있다"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1분기 실적 컨콜에서 반도체, 디스플레이 로드맵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하면서 이례적으로 기술력 논란을 반박하고 나선 것은 시장 일각의 우려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주요 사업에서 잘못된 신호를 보낼 경우 향후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데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판단한 듯 하다"고 분석했다.
/장유미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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