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우리나라 통신산업의 전문성을 향상시키고자 체신부에서 분리된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 첨단의 데이터통신 시대를 열기 위한 ‘한국데이터통신(현 LG유플러스), 무선호출과 차량전화를 전담하기 위한 ‘한국이동통신서비스(현 SKT)’는 초기 나름의 성과를 거두며 선전했다.
하지만 빠르게 진화발전하는 정보통신의 흐름 속에서 각각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또한 외부적인 압박과 더불어 기술 고도화를 위한 내부적 열망이 더해지면서 기존 형태로 존속이 어렵다는 분석이 속속 제기됐다.
그간 다각도의 여러 영향이 있었겠지만 대체적으로 1986년 이같은 변화가 가시적으로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 음성·비음성 경계 해제…경쟁 기반을 닦다
1986년은 한국전기통신공사가 전국 도서지역까지 수동식 전화를 자동식으로 개선한 전국자동통화체제를 이룩한 때이기도 하다. 이는 1가구 1전화 시대가 열렸다는 의미였다. 이러한 ‘전화의 대중화’는 공사 입장에서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 숙제를 떠맡게 된 셈이고, 고객 입장에서는 보다 질 높은 서비스 요구가 반드시 선행될 수밖에 없었다.
내부에서 통신 서비스 고도화에 대한 압박이 있었다면 외부적으로는 통신시장 개방이라는 강대국들의 압박을 버텨야 했다. 특히 1986년 9월 창설된 우루과이 라운드(RU)는 시장개방 압력이 보다 거세지는 계기가 됐다. 협상 범위에 통신 서비스 분야가 주요 쟁점화됐기 때문이다. 국내 통신시장이 성장할수록 그에 따른 개방압력 또한 강해졌는데, 특히 미국의 경우 한미통신실무협의회를 개최하면서 보다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자력을 키워야 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우리나라 정보통신 시장 자체가 독점국영체제로 운영됐기에 경쟁이 배제돼 있었다. 한국전기통신공사가 대부분의 네트워크 인프라를 갖추고 있었고 한국데이터통신이나 한국이동통신서비스는 모체라 불릴 수 있는 전기통신공사에 각각 일정 수준으로 기대 있을 수밖에 없는 형태였다.
독점국영체제에서 경쟁체제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이미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체력을 갖추고 있는 조직이 더 나아갈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줘야 했다.
비약이 있을 수 있으나 당시 각 조직이 영위하고 있는 사업군을 단순화한다면 음성을 전달하는 전화망 사업자는 ‘한국전기통신공사’, 데이터 전송을 담당하는 유선망 사업자는 ‘한국데이터통신’, 언제 어디서나 통신이 가능한 무선망사업자는 ‘한국이동통신서비스’ 정도로 도식화할 수 있다. 물론 이 근간을 관통하는 실제 네트워크망 포설과 운영사업자는 모체인 ‘한국전기통신공사’다.
즉, 짧은 시간 내 경쟁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전기통신공사로부터 수직계열화된 상하 관계를 수평관계로 돌려야 했다. 게다가 전기통신공사는 전화망 고도화를 통해서 비음성 서비스 전개가 가능한 수준이었으며, 한국데이터통신 역시 유선망 구축을 통해 독자적 운영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체신부는 관련 법 개정에 앞서 1988년 5월 한국전기통신공사와 한국데이터통신에 ‘공중전기사업자업무영역 조정지침’을 전달했다. 간단하게 전기통신공사가 데이터 사업을 할 수 있게 됐고, 데이터통신은 전화 사업을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음성 전화 서비스는 국제와 시외, 시내 전화로 분리해 2~3개 사업자가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고, 비음성 서비스는 후발주자인 한국데이터통신의 체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광케이블로 구축되는 전용회선망을 갖출 수 있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이후 두 사업자는 유선망 시장에서 치열한 경합을 벌이게 된다.
◆ 이동통신, 경쟁의 씨앗을 심다
우리나라는 유선 부문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끌고 있기는 했으나 무선부문, 즉 이동통신 영역에서는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했다. 때문에 한국이동통신서비스는 한국전기통신공사의 자회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며, 무선호출기와 차량전화를 위탁해 운영한다는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하지만 이동통신 분야는 미래 정보통신 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육성해야만 하는 개척지였기에 국가적으로도 한국이동통신서비스에게도 가야만 하는 땅이었다. 게다가 한국이동통신서비스가 자회사 이미지를 벗고 독립의 깃발을 올리기 위해서도 이동통신 사업 고도화를 위해 한발 더 나아가야만 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대내외적인 압박과 독점국영체제에서 경쟁체제로 전환을 위한 민영화 바람이 불면서 한국이동통신서비스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체신부가 전기통신사업을 영역별로 분리해 전문 육성하기로 하면서 이동통신 사업 육성을 추진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987년 체신부는 한국전기통신공사로 하여금 이동통신 자립 육성 방안을 수립해 보고할 것으로 지시했다.
당시, 전기통신공사에게는 고민이 따르는 지시였다. 이동통신 자립 육성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무선호출과 차량전화 사업을 전담한 자회사인 한국이동통신서비스를 흡수해 육성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자회사를 다시 흡수한 사례도 없었거니와 그에 따르는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반대로 한국이동통신서비스에 힘을 실어주고 독립 경영권을 쥐어 주게 된다면 이후 민영화에 따른 이동통신 시장 경쟁이 불보듯 뻔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전기통신공사는 한 손에 움켜질 수 있는 독점운영을 피하고 미래를 위한 경쟁방식을 선택했다. 이같은 소식을 들은 한국이동통신서비스는 기민하게 움직였다. 향후 파고를 대비해 이동통신 사업 기반을 닦아 나갔다. 혹시 모를 경쟁에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체신부는 한국전기통신공사 보고를 기반으로 1988년 1월 14일 이동통신 전문화 육성 기본방침을 한국전기통신공사에 보냈다. 이후 치열한 논의를 거쳐 체신부의 결제를 득한 한국이동통신서비스는 같은해 4월 30일 공중전기통신사업자로 지정됐다.
◆ ‘한국이동통신’ 새출발
‘공중전기통신사업자’ 지정은 한국이동통신서비스로서는 역사적 한 획을 긋는 대단한 사건이었다.
당시 국내 전기통신관련법은 크게 전기통신공사법과 전기통신기본법, 공중전기통신사업법으로 구분됐다. 전기통신공사법은 공사 창립의 근거였으며, 나머지 2개의 법안은 1982년 전기통신법령체계 전면적 개편작업을 거쳐 1983년 12월30일 전기통신법이 폐지되면서 각각 제정됐다.
전기통신기본법은 종합적인 전기통신정책 수행을 위한 기본적 종합적 사항을 나열한 법안이며, 공중전기통신사업법은 공중전기통신설비의 설치 운용과 이용에 관한 사법적 관계 규정, 경영의 지도 감독에 관한 사항 등 기본적인 규정이 담겨 있었다. 즉, 공중전기통신사업자로 지정된다는 것은 정보통신시장에서 독립적인 사업을 영위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앞서 공중전기통신사업자로는 한국전기통신공사와 한국항만전화, 한국여행정보, 한국데이터통신 등 4개 사업자만이 지정됐다.
이 중 ‘한국항만전화’는 1985년 한국전기통신공사가 총 자본금 50%를 출자하고 부산과 인천 등 전국 6개 항구에서 항만전화사업을 운영 중인 6개사가 투자해 설립했다. 윤명중 초대 사장이 선임됐으며, 명칭 그대로 항만전화사업을 관장했다.
‘한국여행정보’는 한국데이터통신과 대한항공이 공동 출자해 납입자본금 3억원으로 1987년 설립됐다. 황규복 초대 사장이 선임됐으며 직원 50명으로 출발했다. 항공예약에 관한 정보교환시스템을 구축해 여행사의 항공권 공동발매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숙박관련업체 등 유관기관과도 연결됐다. 국내서는 최초 민간 부가가치통신망(VAN) 사업자이기도 하다.
여기에 한국이동통신서비스가 자리잡게 된 셈이다. 전기통신공사의 위탁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시설 설치 및 운영, 기술 개발, 연구사업 참여까지도 가능해졌다. 한마디로 이동통신 업무 전체를 관할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이에 따라 ‘한국이동통신서비스’는 1988년 5월 13일 사명을 ‘한국이동통신’으로 변경했다. 총 임직원은 120명에서 199명으로 늘어났다. 자본금은 19억원으로 증자됐다. 통신공사 현물 출자 인수는 2차에 걸쳐 이뤄졌다. 인수금액은 총 63억9천281만원이다. 이후 6월 1일 ‘한국전기통사와 한국이동통신 간 시설 이관과 설비 제공 및 이용에 관한 협정서’를 체결하면서 본격적으로 독자적인 이동통신 사업을 영위할 수 있게 됐다.
▲ 다시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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