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최상국 기자] 고온초전도체의 실용화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관련 연구개발사업이 다시 시작된다. 정부의 고온초전도체 관련 국책연구개발사업이 내년부터 재개되고, 학계를 중심으로 국가고자기장연구소 설립 필요성도 거론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내년도 신규 R&D사업으로 '고온초전도 마그넷 기술개발사업'을 시작한다. 이 사업에는 내년부터 5년간 400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국책 연구과제로는 지난 2011년 '차세대 초전도 응용기술개발 사업단'(21세기 프론티어사업)이 종료된 지 10년만에 고온초전도체 연구가 부활한 셈이다.
기존 연구개발사업 중에서도 '핵융합선도기술개발사업' 내에 '초전도 도체 시험설비 구축'을 위한 예산이 내년도에 40억원이 새로 반영돼 정부와 국회가 고온초전도 연구에 다시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고온초전도 국책연구 부활…5년간 400억원 투입
과기정통부가 내년부터 5년간 400억원을 투입할 '고온초전도 마그넷 기술개발사업'은 국내 고온초전도 연구 부활의 신호탄으로 보인다. 지난 2011년 '차세대 초전도 응용기술개발 사업단'(한국전기연구원 주관)이 10년간의 연구를 끝내고 종료한 이후 10년 만이다.
과기정통부는 "초전도 기반의 대전력·고자기장 기술은 혁신적 성능에도 불구하고 극한의 운용환경 등에 따른 고비용과 안전성 문제로 응용에 제한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국내 연구진이 퀜치 현상(순간적으로 초전도성을 잃고 타버리는 현상)을 극복한 기술을 개발하는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능력을 보여주고 있어 이를 원천기술 개발로 이어나가기 위해 정부지원이 필요하다"고 초전도 연구사업 재개의 배경을 설명했다.
과기정통부가 언급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는 한승용 서울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가 美국립고자기장연구소(NHMFL)와 공동으로 2019년 6월 네이처紙에 발표한 ‘초소형·초경량 무절연 고온 초전도자석' 기술을 말한다. 한 교수는 기존 초전도자석의 초전도선 사이에 넣는 절연체를 없애는 발상의 전환으로 퀜치(Quench) 현상을 해결하고, 기존 세계 최고 성능의 초전도자석 대비 크기와 무게를 100분의 1로 줄인 초소형·초경량 초전도자석을 개발했다. 이 자석은 20여 년간 깨지지 않았던 직류 자기장 신기록인 45.5T(테슬라)를 달성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빌게이츠 재단이 이 기술을 에너지 분야 2019년 10대 혁신기술(Top 10 Breakthrough Technologies of 2019)로 선정하기도 했다.
과기정통부는 이번 '고온초전도 마그넷 기술개발사업'을 통해 무절연 고온 초전도를 다양한 응용분야에 활용하기 위한 표준모델로서 총 4가지 형태(솔레노이드, D형, 트랙형, 말안장형)의 초전도자석 핵심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또한 이를 부품·장비로 활용하기 위한 선재 및 냉각, 통합 설계·제작 등 기반기술도 개발할 계획이다.
이준배 과기정통부 원천기술과장은 "무절연 고온 초전도 기술이 세계적으로 혁신기술이자 게임체인저로 평가되면서 주요국들이 상용화 연구에 착수하는 등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며 "고온초전도체 실현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연구재개 요구가 많아짐에 따라 우리 정부도 그동안 지원이 끊겼던 고온초전도 연구에 대한 지원을 일단 재개하고, 연구 성과에 따라 연구개발투자를 확대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고온초전도 기술 선도 위해 국가고자기장연구소 설립해야"
국가 대형연구시설장비 운영 전문 기관인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은 고온초전도체와 이에 기반한 고자기장 기술 선도를 위해 국가고자기장연구소 설립 필요성을 제기하고 내년에 예비타당성조사를 신청하기 위한 기획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김현식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연구장비개발운영본부장은 9일 '국제 고자기장 기술포럼'에서 현재 강원도·광주광역시·울산광역시와 공동으로 기획하고 있는 '초광역 고자기장 연구 인프라 구축계획'을 소개했다.
김 본부장은 "국내 R&D 수준이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바뀌면서 신물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고자기장 기술은 극한 환경에서 새로운 물성연구를 가능하게 하고, 신물질을 발견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는 좋은 대안을 제공할 수 있다. 또한 고자기장 전자석을 만들 수 있는 초전도체는 의생명, 신소재,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무궁무진한 응용이 가능하다."고 추진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국내 기업이 초전도 기술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해 있으며, 고온초전도체가 상용화되면서 연구소는 물론 기업에서도 고자기장 연구·시험·평가 수요가 늘어나고 있으나 아직도 미국·프랑스·일본 등의 고자기장 시설을 활용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외국 시설 활용을 위해 공동연구를 수행하다 보니 연구진행 속도가 더디고 기술유출도 우려되고 있어 국내 고자기장 연구시설의 구축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기초과학지원연구원에 따르면 '초광역 고자기장 연구 인프라 구축사업'의 예상 투자규모는 약 9천500억원이다. 특이한 것은 사업기획단계부터 지방자치단체들이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초과학지원연구원과 광주시-울산시-강원도는 지난 11월12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지역별 특화산업에 맞춘 고자기장 연구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협력하기로 했다. 강원도는 의료생명, 울산은 에너지, 광주는 신소재에 특화해 고자기장 연구개발 기반 마련, 연관 산업 육성,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이다.
김 본부장은 "그동안 3차례나 국가 고자기장 인프라 구축을 추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그동안 미흡했던 수요조사 규모를 연구계 뿐만 아니라 산업계까지 포함한 범국가 차원으로 확대하고, 외국산 대형장비 도입보다 우리가 보유한 세계최고수준의 원천기술을 활용해 핵심기술을 자체개발해 구축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온초전도 연구 어디까지 왔나
초전도(superconductivity)란 어떤 물질이 특정 조건에서 전류에 대한 저항이 사라지는(0이 되는) 현상을 말한다. 초전도체는 초전도현상이 나타나는 임계온도에 따라 저온초전도체(액체헬륨 온도, 4K이하), 고온초전도체(액체질소 온도, 77K 이하), 상온초전도체로 분류한다.
전기저항이 0이 되면 많은 전류를 손실 없이 전송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전자석을 초전도체로 만들면 영구자석으로는 불가능한 고자기장 전자석을 만들 수 있어 자기공명영상장치(MRI), 핵자기공명영상장치(NMR) 등에 사용되고 있다.
1986년 처음 발견된 고온초전도체는 액체 질소 온도에서도 초전도성을 유지할 수 있어 초전도자석의 제작이나 운영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으며 (액체질소 가격은 액체헬륨의 100분의 1에 불과하다), 전류를 많이 흘릴 수 있어 다양한 분야에서 전자석의 크기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고온초전도체는 현재 상용화된 저온초전도체 기반의 MRI, NMR의 크기와 비용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초고자기장이 필요한 거대 핵융합로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고 무거운 해상풍력발전기 모터도 소형화가 가능하다. 빌게이츠의 투자로 주목받은 미국 핵융합 벤처기업 MIT-CFS는 무절연 고온초전도자석 기술을 활용해 직경을 4m까지 줄인 차세대 초소형 핵융합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전기와 자기가 필요한 모든 곳에 고온초전도체는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
또한 MRI나 NMR같은 장치는 자기장이 높을수록 해상도가 좋아지기 때문에 고온초전도체로 성능을 더 높이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NMR은 단백질 구조분석에 많이 활용되고 있는데 현재 국내에서 보유한 900MHz NMR까지는 저온초전도체로 제작이 가능하나 GHz급 NMR은 저온초전도체로는 불가능하다. 현재 일본에서는 고온초전도체를 이용해 1.3GHz NMR을 개발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초전도 케이블을 송배전선로에 설치하는 프로젝트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한전과 LS산전은 흥덕-신갈 구간에 세계 최초로 초전도 케이블을 상용화했다. 한국전기연구원의 연구소기업인 슈퍼제닉스는 라온 중이온가속기용 사극자석, 초고속 자기부상열차용 초전도자석,6T급 동물용 MRI용 자석을 개발중이다.
문승현 대표는 포럼에서 "현재 고온초전도 선재 가격은 kAm당 70달러 정도인데 이를 10분의1이하로 만드는 게 목표"라면서 "액체질소 온도에서의 초전도물질이 발견된 지 35년이 지나 이제는 고온초전도체가 상용화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다"고 밝혔다.
/최상국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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