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주주들과 다른 사람들도 (핵심 사업에 집중하고) 소유 구조를 더욱 투명하게 하려는 우리들의 노력을 결국 인정해줄 것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7년 전 진 사이크스 당시 미국 골드만삭스 M&A 사업부 공동회장을 만나 '선택과 집중' 경영전략을 거듭 강조하며 삼성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12일 재계 및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1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혐의 재판에서 이 부회장 변호인 측이 한 통의 영문 이메일을 공개했다.
이 이메일은 지난 2014년 12월 8일 사이크스 회장이 이날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정현진 골드만삭스 한국 대표 등 3명에게 보낸 것이다. 사이크스 회장은 미국 애플과 창업주인 고 스티브 잡스를 전담했던 사람으로, 글로벌 투자은행(IB) 업계에서 정보기술(IT)과 이동통신, 미디어 분야의 전문가로 유명하다. 이 부회장을 알게 된 것도 잡스의 소개 덕분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증거로 제시된 해당 이메일에는 고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직후 '홀로서기'에 나선 이 부회장의 고민과 경영철학, 사업구상 등이 담겨 있어 주목 받았다.
사이크스는 정 대표 등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제이(Jay·이재용 부회장)가 오늘 저를 만나러 왔다"면서 대화 내용을 상세히 전달했다. 또 이 부회장과의 대화 가운데 대부분은 삼성전자 사업 전반에 관한 것이었다고 소개했다.
사이크스는 "고성능 부품, 디스플레이, 폼 팩터, 카메라 기술 등 하드웨어 측면에서의 제품 차별화,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 등 비메모리 사업 전략, 소프트웨어 분야의 투자 확대, 애플과의 지속적인 공급 관계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이 부회장이 당시부터 삼성전자의 핵심 전략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으로, 이후 실제 사업화로 상당 부분 진척됐다는 평가다. 최근 ▲갤럭시 폴더블폰 성공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 선언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등 소프트웨어 발전 전략 ▲애플에 대한 핵심부품 공급 등이 구체적인 성과로 꼽힌다.
또 '선택과 집중' 경영 전략을 펼치던 이 부회장은 당시 추진하던 방산, 화학 분야 등 비핵심 사업 정리를 언급한 뒤 "이를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것 때문에 한국 정치인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다고 한다"면서도 "핵심 사업에 집중하는 접근 방식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고 사이크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 부회장은 사이크스와의 대화에서 상속세와 관련한 문제도 언급하며 대처할 준비가 잘 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당시 이건희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지 7개월밖에 안 된 시점이다.
사이크스는 "그(이재용)는 한국 상속세와 미국 세금의 차이점에 흥미를 보였다"면서도 "부친이 돌아가실 경우 발생할 세금 문제에 대처할 준비가 잘 돼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이 해당 이메일을 공개한 것은 골드만삭스 측 인사들과 만난 이유가 검찰의 주장대로 경영권 승계나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점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또 전반적인 사업 현안과 미래 전략에 대한 조언을 받기 위한 차원이었다는 것도 강조하려는 의도다.
재계 관계자는 "골드만삭스 측 인사들과 만난 것은 경영권 승계나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됐다"며 "상속세 마련을 위한 삼성생명 지분 매각 논의를 목적으로 골드만삭스와 잇따라 접촉했다는 검찰 공소장 내용은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고 밝혔다.
/장유미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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