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본격적인 연말 인사 시즌이 시작되면서 주요 그룹의 인사 시기와 규모를 두고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각 기업들이 그 동안 안정 속 변화를 유지해왔지만 올해는 '포스트 코로나'에 대비하는 한편, '세대교체'를 위해 강도 높은 쇄신책이 나올 것이란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4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다음달 초 정기 인사를 앞두고 지난 7월부터 CEO 및 임원 인사 평가를 진행해 최근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이번 인사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뉴 삼성' 비전이 가시화되면서 지배구조 개편에 따른 조직 재편 여부가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특히 삼성 계열사 전반을 아우르는 통합 컨트롤타워가 이번에 생길 지에 대한 여부가 가장 큰 관심사다. '뉴 삼성'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선 삼성그룹 전반의 미래사업 등을 조정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곳이 필요하다는 니즈가 대내외적으로 높아지고 있어서다.
삼성은 과거에 각 계열사 간 구심점 역할을 하던 미래전략실을 운영하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이를 해체시켰다. 대신 삼성전자 사업지원팀, 삼성생명 금융경쟁력제고팀, 삼성물산 EPC(설계·조달·시공) 경쟁력강화팀 등 업종을 중심으로 전담 조직(TF)를 마련해 운영하고 있지만 그룹의 미래 먹거리 발굴에 적극 나서기 보다 방어적으로만 나선 탓에 내부 불만이 많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이 지난 4년간 이 체제 속에 이 부회장의 공백기가 겹치면서 미래 준비에 적극 나서기 보다 현상 유지만 하는 움직임을 보였다"며 "지난 2016년 하만 인수를 끝으로 인수합병(M&A)을 적극 추진하지 않은 것이 단적인 예"라고 꼬집었다.
이어 "당초 이 부회장의 빈자리를 사업지원TF장인 정현호 사장이 대신 채워줄 것이란 기대감이 높았지만 정 사장이 적극 나서서 그룹의 큰 그림을 그리기는 커녕 비상사태 속에서 구원투수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내부 평가와 불만이 많았다"며 "대규모 M&A나 투자와 관련해 오너의 결단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그룹 차원의 전략적 결정도 제대로 내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그룹 내부에선 사업지원TF의 역할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여럿 있다"고 귀띔했다.
이에 일각에선 이 부회장이 전체적인 조직 개편과 함께 큰 폭의 인사를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했다. 앞서 이 부회장이 지난달 25일 고(故) 이건희 회장 1주기를 맞아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나가자"고 언급했던 것도 이 같은 의지를 은연 중에 드러낸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또 삼성전자와 주요 관계사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가 삼성 지배구조 개편 방안과 관련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맡긴 외부용역 결과를 조만간 내놓을 것으로 알려져 이를 정기 인사에 얼마나 반영할 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삼성은 BCG 보고서가 나오는 대로 내부 검토를 마치고 이를 토대로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편으로 어떤 식으로든 조직 재편이 이뤄지게 되면 이와 맞물려 연말 사장단과 임원 인사 폭이 상당히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번 인사는 이 부회장의 '뉴 삼성' 비전이 구체화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이전보다는 큰 폭으로 진행될 듯 하다"고 밝혔다.
LG그룹도 올해 연말 인사 폭이 클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취임 4년차를 맞은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최근 '원포인트' 인사를 통해 제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내부에선 상당한 긴장감이 감지되고 있다. 구 회장은 지난 1일 ㈜LG 최고운영책임자(COO)였던 권영수 부회장을 LG에너지솔루션 대표로 선임한 상태로, 다른 경영진들의 연쇄 이동이 불가피해졌다.
이에 구 회장을 옆에서 보좌해야 하는 '그룹 2인자'의 빈자리를 누가 채울 지도 관심사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인물은 홍범식 ㈜LG 경영전략팀장(사장), 권봉석 LG전자 사장, 정호영 LG디스플레이 사장 등으로, 내부에선 여러 계열사를 두루 거치고 경험이 많은 권 사장이 가장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다만 LG전자에 '포스트 권봉석'으로 떠오르는 인물이 마땅히 없다는 점과 홍 사장이 외부에서 온 탓에 그룹 전반에 대한 이해가 아직 부족하다는 점, 정 사장이 재무 전문가인 탓에 전체적인 그룹의 전략을 짜기에는 다소 아쉽다는 점 때문에 이들이 권 부회장의 빈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재계 관계자는 "권 부회장의 역할이 구 회장이 안정적으로 그룹 경영을 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었다면, 다음 인사는 구 회장의 색깔을 더 드러낼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인물이 '그룹 2인자' 자리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며 "여러 정황으로 볼 땐 권 사장이 가장 유력해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권 부회장의 이동에 따라 LG그룹 역시 지주사 COO 선임을 포함해 중폭 이상의 임원 인사가 단행될 것으로 보인다"며 "구 회장이 이달 말께 끝나는 사업보고회를 통해 적당한 인물을 찾은 후 이번에 과감한 인사로 대대적 변화를 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최근 계열사간 합병, 분할을 통해 사업별 지주사 정리 작업에 나선 SK그룹도 대대적인 변화를 주는 모양새다. SK그룹은 최근 SK텔레콤이 기존 사업을 영위하는 존속법인과 반도체 등 미래 먹거리 투자에 집중하는 신설법인 SK스퀘어로 인적분할한 데 따라 지난 1일 IT 계열사들을 시작으로 인사 시즌에 돌입했다.
이번 일로 박정호 SK텔레콤 대표 겸 SK하이닉스 부회장이 SK스퀘어의 CEO를, 유영상 SK텔레콤 MNO사업가 새로운 SK텔레콤 CEO를 각각 맡게 됐다. 다른 계열사들은 이르면 이달 말, 늦어도 12월 초께 정기인사가 진행될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SK그룹이 최근 파이낸셜 스토리 점검을 끝낸 만큼 조만간 계열사별 인사 범위를 정할 것"이라며 "계열사 인사권한이 강화되면서 그동안 최고의사결정기구로 역할을 담당했던 수펙스추구협의회의 역할도 인사와 맞물려 재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다.
반면 현대차그룹은 다음달 중순께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정기 인사를 소폭으로 진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취임 후 처음 단행한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장재훈 사장 등 자신이 신임하는 임원들을 대거 승진시켰기 때문이다. 다만 인사 시기와 관련해선 인사 폭이 작은 만큼 내년도 경영계획 수립을 위해 예년보다 일정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인사에선 윤여철 현대차 정책개발담당 부회장이 자리를 지킬지, 알버트 비어만 현대차 연구개발본부 사장이 그룹 내 첫 외국인 부회장이 될 지가 관심사"라며 "송호성 기아 사장, 안동일 현대제철 사장 등 주요 계열사 대표들이 내년 3월에 임기가 끝나 이들에 대한 인사가 이번에 진행될 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롯데그룹은 이달 말께 정기 임원 인사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예년보다 한 달가량 인사를 앞당겨 실시했던 롯데는 올해 역시 비슷한 시기에 인사를 단행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내부적으로도 지난달부터 인사 평가가 진행돼 최근 마무리 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번 인사에서는 그룹의 4개 사업 부문(BU) 중 특히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유통 BU쪽 인사 폭이 가장 클 것으로 관측된다. 롯데 유통 BU는 마트 사업 부진과 온라인 사업에서의 고전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또 지난해 젊은 CEO를 전면 배치한 후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는 식품 계열사들의 움직임도 이번 유통 BU쪽 인사에 영향을 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 외에 이봉철 호텔&서비스 BU장이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되는 만큼 거취를 옮길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김교현 롯데그룹 화학BU장 겸 롯데케미칼 대표는 올해 화학 부문의 실적 개선에 성공하며 경영능력을 입증한 만큼 부회장으로 승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영구 롯데그룹 식품BU장은 호실적을 바탕으로 자리를 계속 유지할 것으로 보이지만, 강희태 유통BU 부회장은 유통 부문에서 성과가 저조해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상황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 지 주목된다"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이번에 외부 인사 영입도 과감하게 진행할 것으로 보여 기대감이 크다"고 밝혔다.
김승연 회장이 이끄는 한화는 이미 인사를 거의 마무리했다. 한화그룹은 지난 8월 한화시스템·한화솔루션 케미칼부문·한화솔루션 큐셀부문·한화종합화학·한화저축은행 등 5개 계열사의 대표를 교체했다. 한화는 지난해에도 다른 기업보다 빠른 9월 말에 사장단 인사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으나, 올해는 이보다 한달을 더 앞당겨 눈길을 끌었다. 한화는 이를 시작으로 한화솔루션·한화토탈·㈜한화 임원 인사까지 마쳤다.
LS그룹은 이르면 이달 말쯤 정기인사를 통해 구자은 LS엠트론 회장을 LS그룹 회장으로 선임할 예정이다. LS그룹은 10년을 주기로 사촌 간에 경영권을 승계하는 전통이 있다.
2013년 1월 총수에 올라 LS그룹을 이끌어온 구자열 현 회장은 사촌 동생인 구자은 회장에게 바통을 넘긴 뒤 올해 2월 초 취임한 한국무역협회 회장 업무에 전념할 것으로 알려졌다.
코오롱그룹도 지난달 29일 윤창운 코오롱글로벌 사장을 그룹 부회장에 승진 발령하는 등 총 45명에 대한 정기 임원인사를 실시했다. 올해 코오롱그룹 인사의 가장 큰 특징은 세대교체로, 신임 상무보 21명 중 85%인 18명을 40대로 채웠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불확실한 경영환경이 계속되면서 각 그룹들이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미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보고 인사를 점차 서두르는 분위기"라며 "새해를 이끌 경영진이 직접 내년도 사업계획 수립을 주도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듯 하다"고 말했다.
/장유미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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