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미국과 반도체 시장에서 패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중국이 우수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과의 협력 강화를 위한 움직임에 나섰다.
제시 창(Jessi Chang) 중국 국제 반도체 산업협회(SEMI) 총감은 17일 코트라가 주최한 '글로벌 반도체 동향 온라인 설명회'에 참석해 "중국에선 반도체 산업에 대한 시각이 우호적이어서 자본이 많이 집중돼 있고, 관련 기업에 대한 투자 의지도 강하다"며 "한국 반도체 시장은 미국, 일본처럼 굉장히 성숙된 곳인 만큼 중국 업체들과 상호 보완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국은 반도체 산업을 키우고자 하는 의지가 크고 시장도 있지만 공급망이 아직까지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상태"라며 "현재 분위기로 봐선 한국 기업들이 중국 내 파트너와 손잡고 일할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창 총감이 이 같이 발언한 것은 중국 시장의 성장성이 높다고 판단해서다.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반도체 시장 규모는 2021년 4천900억 달러로 전년 대비 9.3% 성장할 전망이다. 특히 4차산업혁명 주요 분야인 5세대 이동통신(5G),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등 보급 확대에 따라 시스템반도체 시장도 2023년까지 연평균 4%대의 성장이 예상된다.
창 총감은 "올해는 PC에서 최대 2%, 스마트폰에서 11%, 자율주행·전기차에서 10%, 서버에서 7%, AI에서 16%, 5G에서 10% 가량의 성장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은 경제적으로 매우 안정돼 있는 데다 전 세계 전자 제품의 60% 이상이 생산되고 있는 곳인 만큼 반도체 수요가 높아 관련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글로벌 반도체 장비 시장에선 이미 중국 본토와 대만의 점유율을 합치면 전 세계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관련 투자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중국 반도체 시장도 글로벌 기업에 계속 개방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관련 기업들이 이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창 총감은 최근 미국이 첨단산업 핵심품목의 공급망 재편에 나서면서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전략에 대해서도 견제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반도체 시장에서 점차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중국을 배제하면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도 안정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현재 반도체와 대용량 배터리 등 핵심 품목에 대한 해외 의존도를 줄이는 한편, 이를 자국 내 생산으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중국과의 선긋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 정부가 '중국 제조 2025 프로젝트'를 앞세워 1천500억 달러(한화 170조원) 규모의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지급할 것으로 발표하자, 이를 견제하기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으며 맞서고 있다. 미국 내 반도체 공장 설립을 장려하기 위해 100억 달러의 연방 보조금과 최대 40%의 세액공제를 약속하는 지원책이 담긴 반도체 지원법 '칩스 포 아메리카(CHIPS for America Act)'가 대표적이다. 또 미국은 일본, 대만 등 동맹국들에게 중국을 포위하는 '진영 스크럼' 전략을 독촉하고 있는 상태다.
이에 대해 창 총감은 "반도체는 완전히 글로벌화 된 산업"이라며 "어려움에 처한 지역이 한 곳이라도 있으면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이 발생한 것은 팬데믹 상황과 지정학적 요인으로 공급망에 큰 변화가 있었던 데다 반도체 가격의 변동성이 심하다는 점 등이 영향을 미친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며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도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업계에선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더 강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의 존재감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반면, 중국이 급성장하고 있어서다.
실제로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와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전 세계 반도체 생산은 연평균 4.9%, 미국은 4% 증가했다.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될 경우 오는 2030년 미국의 반도체 생산 점유율은 12%에서 10%로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다. 반면 중국은 15%에서 24%로 반도체 생산 최대 국가로 올라서게 된다.
중국이 반도체 시장에서 높은 성장세를 보일 수 있는 이유로는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 덕분이다. 중국은 반도체 자급률 향상에 사활을 걸며 지난 2015년부터 향후 10년간 1조 위안(약 170조원) 규모의 투자를 추진 중이다.
또 2019년에는 '중국 반도체 산업 국산화의 원년'으로 삼고 대대적인 반도체 산업 육성에 나서며 '기술 국산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여기에 2025년까지 2조 위안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반도체 시장의 70%를 국내 제조 업체들이 공급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다만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아직까지 경쟁력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업계에선 한국과 대만, 미국이 5nm, 7nm의 미세 가공 기술을 상용화하고 있는 반면, 중국이 14nm를 상용화하는 단계인 만큼 다른 나라에 비해 3~4단계 뒤처져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또 중국의 주요 반도체 관련 업체로는 현지 최대 파운드리 업체 SMIC, 팹리스 업체 하이실리콘 정도가 꼽힌다. 업계에선 이들 업체가 만드는 제품이 선진 제품 수준과 거리가 먼 데다 생산량 역시 세계 시장 규모와 비교했을 때 아직은 미미해 큰 영향력이 없다는 평가다.
다만 최근 들어 중국 기업들이 잇따라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며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어 업계의 긴장감은 높아지고 있다. 외신 등에 따르면 바이두(百度)가 투자한 자동차 지능기술 업체 이카엑스는 최근 7나노미터(nm·1nm=10억분의 1m) 칩을 개발, 곧 대량생산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TCL은 반도체 설계와 신소재 개발을 포함한 사업에 집중할 새 자회사를 설립했다.
이충현 중국 저장대학교 교수는 "중국 SMIC는 지난 2019년 말 14나노미터 칩을 선보인 후 현재 12나노미터 칩으로 넘어가는 단계"라며 "일본 반도체 업체들이 14나노미터 칩을 개발하려고 했다가 실패했지만 중국이 성공했다는 점에서 대단하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의 반도체 산업 역사는 짧지만 빠른 속도로 경쟁사와의 기술 격차를 줄여 나가고 있다"며 "올해는 8~10나노미터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창한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근부회장 "세계 반도체 산업은 커다란 전쟁 중에 있다"며 "특히 미국, 유럽, 중국이 자국 내 생산 기술 구축과 기술 개발을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그는 "한국은 메모리 분야에선 많은 성과를 이뤘지만, 비메모리 분야에선 아직 갈 길이 멀다"면서도 "최근 'K-반도체 전략을 발표하는 등 반도체 산업 성장을 위한 그림을 그리고 이를 실행하고 있는 만큼 관련 기업들이 이를 기반으로 한국 경제에 크게 이바지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장유미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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