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 관련 3차례 변론기일이 끝나고 오는 25일 최종 선고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변이 없는 한 이 날 약 2년여간의 법적 공방이 마무리된다.
3차례 이어진 변론기일 동안 넷플릭스는 망에 대한 책임뿐만 아니라 협상의무도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망 이용료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SK브로드밴드는 네트워크 플랫폼의 양면성과 각종 해외 사례들을 통해 넷플릭스의 주장이 부당하다고 맞섰다.
이같은 법적 공방은 지난 2019년 11월 12일 SK브로드밴드가 방송통신위원위에 요청한 망사용 협상과 관련한 재정 신청을, 넷플릭스가 '채무부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를 제기하면서 불거졌다. 넷플릭스는 법률대리인으로 법무법인 김앤장을, SK브로드밴드는 법무법인 세종을 선임해 그간 치열한 논리 싸움을 이어갔다.
◆ 전송은 낼 필요없다 vs 근거없는 기술용어 구분
1~3차 변론기일까지 넷플릭스 측은 망 이용대가와 관련해 '접속'과 '전송'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일관된 주장을 이어갔다.
가령, 콘텐츠제공사업자(CP)가 최초 연결된 인터넷제공사업자(ISP 'A'), A와 연결된 또 다른 인터넷제공사업자(ISP 'B'), B와 연결돼 있는 이용자 도식이 자주 등장했다. 이 도식에 따르면 'CP와 A', 'B와 이용자'간은 '접속료'를 내고 있고, 'A와 B'는 전송료라고 해석했다.
즉, CP인 넷플릭스는 최초 연결된 ISP A에게는 '접속료'를 지불하지만 ISP A와 B의 연결에 따른 '전송료'는 낼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SK브로드밴드가 주장하는 망이용대가는 접속료가 아닌 전송료이기 때문에 CP의 역할이 아닌 ISP 역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책임을 ISP에 전가했다.
오상진 법무법인 김앤장 변호사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피고(SK브로드밴드)에 연결하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연결된다"라며, "피고가 국내 CP에 전세계에 대한 인터넷접속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라며, "원고(넷플릭스)가 피고의 인터넷 이용자하고만 연결되고 다른 이용자와는 연결이 안되기 때문에 피고가 원고에게 인터넷 접속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넷플릭스는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의 일종인 오픈커넥트(OCA)를 앞세워 SK브로드밴드가 망이용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넷플릭스가 미국 통신사 AT&T와 같은 티어 1사업자와 연결돼 있고, SK브로드밴드는 티어3 사업자이기 때문에 SK브로드밴드가 티어1 사업자에게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는 논리다.
SK브로드밴드 측은 이같은 넷플릭스의 주장은 전제부터 잘못됐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접속료는 유료, 전송료는 무료라는 인터넷 원칙이 없을뿐만 아니라 이 둘을 따로 구분하고 있지 않다는 것.
넷플릭스가 접속과 전송 구분을 도출한 2009년의 학자의 주장에서도 인터넷 시장의 자유로운 참여를 위해 CP가 이용대가를 지불하지 않는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일뿐 상법에도 없고 관습에도 없다고 반박했다. 이같은 주장을 한 팀 우 박사의 논문에서도 전송은 무상이라는 기본원칙이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강신섭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국내법(전기통신사업법)에서는 음성과 영상, 데이터 등 그 내용의 변경없이 송수신하게 하는 게 전기통신역무로 접속과 전송으로 구분돼 있지 않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또한 넷플릭스의 도식대로라면 오히려 넷플릭스가 망이용대가를 지불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넷플릭스가 CP가 최초 연결되는 ISP A에게 접속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했는데, SK브로드밴드가 ISP A에 해당된다는 것. 넷플릭스가 운영하는 CDN인 OCA는 넷플릭스의 콘텐츠를 전송하는 통로이기 때문에 별개로 보기 어려우며 그 자체가 CP에 속한다는 설명이다.
즉, 넷플릭스 CP에 속한 OCA에 SK브로드밴드가 1차적으로 직접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넷플릭스의 주장대로 접속료를 받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 무정산원칙에 망중립성 훼손 vs 인터넷 양면시장 고려
넷플릭스가 접속과 전송을 구분하고 전송료를 내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데 따른 근거로 제시한 내용은 '무정산원칙'과 '망중립성'이다.
상호접속과 관련해 무정산(Free Peering) 방식이 인터넷 연결성을 확보하는데 주요하게 쓰이고 있고, 전송료를 지급하지 않는 CP에게 불이익을 가하는 것은 망중립성에 위반된다는 주장이다. ISPP가 인터넷 접속 서비스 품질을 유지할 책임을 부담하고 있는 상황에서 ISP가 이용자를 볼모로 지위를 남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넷플릭스는 망 이용대가를 강제하는 것은 한국 정부가 취하고 있는 망중립성에도 위배되는 사항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에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가 주장하는 '무정산(Free peering)' 원칙은 현재 상황과는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과거 ISP간의 상호접속을 통해 서로 트래픽 교환비율이 동등한 경우 정산하지 않았으나, 이후 대형 글로벌 CP들의 등장으로 인터넷 트래픽이 폭증함에 따라 무정산 방식은 일방향 정산방식(Paid peering)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
실제 프랑스 통신규제기관 ARCEP가 지난해 6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일방향 정산방식은 지난 2012년 20%에 그쳤으나 2018년 54%로 과반을 넘어섰다. 트래픽과 비용 차이를 고려해 ISP간 상호접속 시 비용을 지불하게 된 셈이다. 대안적 접속방식인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의 경우에도 트래픽 소통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아울러 인터넷 시장의 양면성을 고려했을 때 CP 역시 네트워크 플랫폼 사업자(ISP)의 고객이기 때문에 망 사용에 따른 비용을 내는 게 정당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워싱턴 DC 연방항소법원은 '양면시장의 구조를 갖는 네크워크 시장에서 ISP가 CP로부터 정상적인 망 이용대가를 수취하는 게 제한될 경우, 이로 인해 발생한 비용은 이용자들에게 전가되는 결과가 발생하게 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
또한 SK브로드밴드는 통신사가 합법적인 트래픽을 차단하거나, 지연, 우선처리하는 등 불합리하게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는 원칙일뿐 망 이용대가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 OCA는 ISP 또는 CP?…직접 접속 자체가 중요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의 대립 구도 속에서 계속해서 역할이 달라지는 요소가 바로 'OCA'다.
OCA는 일종의 CDN 역할을 해주며 이용자들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전진 배치해 놓은 캐시서버이기도 하다. 업계에서는 전세계 통신사 네트워크에 설치된 OCA가 이용자들이 즐기는 콘텐츠를 새벽 시간대 미리 저장해두고 있어 일종의 '새벽배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OCA는 고객과 가까운 곳에 저장해둔 콘텐츠를 스트리밍하기 때문에 넷플릭스로 인해 발생하는 트래픽을 크게 낮추고, 먼 거리로 데이터를 전송하는 비용을 절감해 더 빠른 속도로 고품질 영상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게 넷플릭스의 설명이다.
2차 변론기일에서 넷플릭스는 이같은 OCA를 ISP로 해석, 티어1 사업자로서 티어3 사업자인 SK브로드밴드에 오히려 망이용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통신사 AT&T와 같은 티어 1사업자로 포함되기 위해서는 OCA는 CDN으로서 ISP 지위를 얻는 셈이다.
하지만 3차 변론기일에서는 다소 모호한 주장을 이어갔다. OCA를 '갖다 놓은 것' 이라고 표현했다. 넷플릭스가 (ISP와 )직접 연결한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가져가기 쉽게 최전선에 옮겨 놨다는 의미다.
즉, 넷플릭스는 OCA를 연결이나 접속없이 고객과 가장 가까운 곳에 놨고, 최종 사용자(고객)의 요청에 따라 ISP가 이를 가져가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비용(망사용료)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넷플릭스의 주장은 SK브로드밴드가 OCA를 넷플릭스에 속한 CP로 해석하고 OCA와 ISP A(SK브로드밴드)가 직접 연결된 최초 연결 사례로, 접속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주장에 오히려 근거로 작용한다. 넷플릭스가 최초 직접 연결된 ISP에게는 접속료를 지불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OCA 도입과 함께 별도 망 비용 지급 계약을 맺은 사례가 있다는 지적이다. 넷플릭스가 지난 2013년 9월 미국에서 풀HD 서비스를 확대하면서 트래픽 지체 현상을 빚은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대형 ISP들과 비용 부담 갈등을 빚었다.
이에 따라 2014년 2월 넷플릭스는 컴캐스트와 OCA 도입과 함께 별도 망 비용 지급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해 4월 버라이즌, 7월 AT&T, 8월 타임워너케이블과도 대가를 지급하는 데 합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넷플릭스와 대가 지급 계약을 체결한 4개 ISP는 미국 초고속인터넷 1~4위 사업자로 당시 점유율 합계는 75%에 달했다.
◆ 채무부존재의 소로 인한 확인의 이익 있을까?
넷플릭스가 방통위의 재정절차가 진행 중임에도 소를 제기한 데 대해 망 이용책임에 대한 채무부존재뿐만 아니라 협상 의무도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피력했다.
이에 재판부는 채무부존재의 소 자체의 성립 여부와 관련해 방통위의 재정신청 과정을 묻기도 했다. 이번 소송이 성립되려면 원고인 넷플릭스가 이번 법적 절차를 통해 확인의 이익을 가져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넷플릭스는 협상의무가 곧 지급의무로 이어질 수 있기에 이번 소를 통해 법률상 지위에 불안과 위험을 내려놓을 수 있는 확인의 이익이 있다고 주장했다. 재정이 소로 인해 중단되기는 했으나 이번 소송에서 불리한 결과를 받는다면 또 다시 재정절차가 이어지게 되고 이는 곧 협상으로 이어지고, 합의를 이행하라는 강제를 받을 수 있다는 추정이다.
실제로 전기통신사업법 제45조 5항에 따르면 방통위 재정절차 진행 중 한쪽 당사자가 소소을 제기한 경우 재정절차가 중단된다고 명시돼 있다.
다만, '중단'에 대한 법리적 해석이 갈릴 수 있다. 중단이 종료를 의미하는 지, 또는 잠정적 대기 상태인지가 불분명하다는 것. 하지만 업계나 학계에서는 전자로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방통위의 재정이 행정기관에서 중립적 조율을 돕기 위한 절차일뿐 강제력이 없기 때문제 자연소멸로 보는 편이 합리적이라는 반응이다. 방통위가 재정 결과를 도출하더라도 넷플릭스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성립되지 않은 채 종결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재정 중단은 형식상 중단되지 않았을뿐 소가 끝나면 자연소멸되며이 상황에서 재정 절차를 다시 밟으려면 또 다시 재정 신청을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SK브로드밴드는 "법률적인 주장일분, 당시 협상도 안하겠다는 말을 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으나 법원은 다를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문기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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