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3박 5일간 이어졌던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일정이 모두 끝났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을 위해 경제사절단까지 데려갔던 문 대통령은 "최고의 순방이었고, 최고의 회담이었다. 회담 결과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며 자평했다.
이번에 방미길에 올랐던 삼성·현대자동차·SK·LG 등 우리 대기업들은 44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대미 투자 계획을 밝히며 문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줬다. 삼성전자는 신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구축에 170억 달러를, 현대차그룹은 미래 기술 개발을 위해 74억 달러를, LG에너지솔루션은 GM과의 제2합작공장에 2조7천억원을 쏟아 붓기로 했다. SK그룹은 하이닉스와 이노베이션을 앞세워 각각 1조1천억원, 6조원을 미국에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도 고맙다는 뜻으로 "땡큐"를 세 차례 연발했다. 미국에 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란 기대감과 함께 반도체·배터리 등 공급망도 안전하게 확보될 것으로 판단돼서다.
이처럼 기업들이 나서준 덕분에 문 대통령은 한미동맹을 재확인했을 뿐 아니라 백신과 반도체 등 기술·경제 협력은 물론 기후변화에 이르는 글로벌 동맹을 굳건히 하는데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성과는 기업들의 희생이 밑바탕이 됐다.
이달에 정부가 발표했던 'K-반도체 전략'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정부는 국내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종합 지원책이라고 발표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비용 대부분은 기업들이 떠안는 구조였다. 정부가 밝힌 직접 투자는 2조5천억원에 불과했다. 일부 기업이 R&D에 연간 10조원 이상 쏟아 붓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낮은 액수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도 10년간 510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구체적이지도 않았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가열되면서 지원 압박을 받은 정부에 등 떠밀려 기업들이 마지 못해 부랴부랴 내놓은 '임시방편' 같았다.
정부가 자화자찬하며 내세운 반도체 투자 계획과 방미 성과들은 기업들의 주머니에서 쏟아져 나왔다. 미국, 중국, 유럽연합이 반도체 패권 확보를 위해 수십~수백조원을 들이고 해외 기업들을 자국에 유치하기 위해 정부 주도로 통큰 지원책에 나서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행보다. 중요한 일은 기업들에게 떠넘기는 행태는 'K-반도체 전략' 발표 때나, 문 대통령의 방미 때나 여전하다.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정부와 여당이 하루가 멀다하고 이를 강조하는 발언을 내뱉는 것에 비해 움직임도 기업들에 비해 더디다. '반도체 특별법' 제정에 속도는 제대로 내지 않고 연일 여론몰이로만 활용되는 듯한 모습만 봐도 그렇다.
지금까지 움직임들을 보면 기업들은 정부가 원하는대로 할 만큼 다한 듯 하다. 이젠 정부와 정치권이 기업들을 위해 나서야 할 차례다. 여론을 의식한 행보 보다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려는 움직임을 보여줄 때다. 특히 국내 기업들이 투자 활성화에 나설 수 있도록 반기업법 등의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시급해 보인다. 기업들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정부의 모습은 이제 좀 지양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장유미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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