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삼성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성 문제를 두고 이 부회장 측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충돌했다. 이 부회장 측은 점검 항목만 한정해 결론을 내리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보고 원인·보완책 등 종합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한 반면, 특검 측은 이 부회장 측이 구체적 근거 없이 자의적 결론을 내렸다고 지적하며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21일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 등 5명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9차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오후 1시 40분께 법원에 모습을 드러낸 이 부회장은 '심리위원들이 미흡한 점을 지적한 것에 대해 어떻게 보는지' 등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곧장 법정으로 들어섰다.
이날 공판에선 전문심리위원단의 삼성 준법위 실효성과 관련된 최종 평가 결과에 대한 특검 측과 이 부회장 측의 열띤 공방이 이어졌다. 특검은 삼성 준법위에 대한 전문심리위원단의 의견이 2대 1로 삼성에 부정적인 평가가 다수였다고 주장했으나, 이 부회장 측은 실효성과 지속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취지로 주장을 이어갔다.
현재 법원이 공개한 보고서에선 재판부가 직권 선정한 강일원 변호사, 특검과 이 부회장 변호인 측이 각각 추천한 홍순탁 회계사와 김경수 변호사 등 3명의 위원은 공동으로 조사·점검 작업을 진행했으나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다. 이에 각자 평가 보고서를 낸 후 이를 묶어 전체 82쪽의 보고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보고서에서 홍 회계사는 대부분의 점검 항목에서 '부정' 평가를 내렸고, 김 변호사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사실상 '캐스팅 보터' 역할을 하게 된 강 변호사는 전반적으로 준법위의 실효성을 인정하며 '합격점'을 줬다.
다만 각 심리위원은 당초 5개 부문으로 나눠 총 18개 공통 점검 항목을 만들었으나, 각자 보고서에는 이와 무관하게 개별 점검 항목을 나열한 뒤 평가 결과를 진술해 논란이 되고 있다. 한 달이라는 짧은 평가 기간 탓에 3명의 위원들이 평가 기준을 제대로 합의하지 못한 것이다.
이를 두고 특검 측은 "총수 관련 9개 항목 중 강 전 헌법재판관은 각 2개에 '미흡', 6개에 '다소 미흡' 평가를 내렸고, 홍 회계사는 9개 모두에 대해 '미흡'하다고 평가했다"며 "삼성 준법감시제도가 그룹 총수도 무서워할 정도의 실효성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검 측은 김 변호사의 경우 개별항목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지 않았지만 그 중 2개 항목이 '미흡', 4개는 '다소 미흡' 취지에 해당한다고 해석했다. 또 김 변호사는 구체적 근거 없이 일반적·통상적 준법감시 시스템에 대한 총론적 결과를 내 자의적 결론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현재 이 부회장 측이 추천한 김 변호사는 18개 평가항목이 위원 3인이 모두 동의한 객관적 잣대가 아니라는 취지의 의견을 낸 상태다. 또 김 변호사는 3인이 합의한 18개 항목에 더해 총수 준법의지 등 평가항목을 제시하며 긍정 평가를 내렸다. 이를 두고 특검 측인 홍 변호사는 평가 사후에 점검 항목을 바꾼 것은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기에 김 변호사는 평가항목 선택은 전적으로 위원들에게 재량이 주어진 부분이라고 주장하며 다른 2인의 위원과 달리 18개 항목 중 5개에 대해 평가하지 않았다.
특검 측은 "최종적인 판단을 고려하면 강 전 헌법재판관 역시 긍정이라기보다 다소 유보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성이 인정되더라도 이 부회장에게 권고형량 범위인 징역 5년보다 이하의 형을 선고하는 사유가 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이 부회장 측은 삼성 준법위의 실효성을 평가한 전문심리위원들의 분석 결과에 대해 일단은 진정성 있는 변화와 실효성, 지속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또 '캐스팅 보터'인 강 전 헌법재판관의 평가에 대해선 삼성 준법위 실효성에 대해 전반적으로 최고경영진 감시·감독이 종전보다 강화돼 지속가능성에도 특별히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특검 측과 다른 해석을 내놨다. 다만 점검 항목에만 한정돼 긍정 및 부정 평가의 개수를 헤아리는 것으로 종합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단순하게 '2대 1'로 종합 결론을 긍정적으로 봐야한다고 강조하진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부회장 측은 "실효적이라고 평가한 부분은 어떤 점에서 그러한 지, 미비한 점은 원인이 무엇이고 보완책은 무엇인지 등 점검 항목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사항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더 풍부한 분석이 가능하다고 본다"며 "전체 평가 내용을 보면 삼성 준법위가 재판을 위한 허울 좋은 껍데기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변화를 이끌고 실효성, 지속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확인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이 부회장 측은 전문심리위원들이 준 의견을 앞으로 보완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특검 측인 홍 회계사의 평가 결과 보고서에서 16개 점검 항목 중 세부항목 14개가 삼성물산의 합병과 관련됐다는 점에선 이를 온전히 수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 측은 "이 부회장의 노조활동 보장, 4세 경영 포기 등을 국민 앞에서 발표한 것을 두고 강 전 헌법재판관도 준법위가 효과적인 의제를 설정한 것으로 평가했다"며 "출범 8개월 동안 833건의 안건을 처리했고 129건의 의견제시 등의 조치도 취했다"고 밝혔다.
양측의 의견을 들은 재판부는 삼성 준법위의 실효성과 지속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한 여부와 이를 양형 조건으로 고려할 지에 대한 것은 모두 재판부의 판단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또 양형 조건을 고려한다고 해도 여러 조건 중 하나일 뿐 유일하거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라는 입장도 밝혔다.
더불어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을 예정대로 오는 30일 오후 2시 5분에 진행키로 했다. 이날 결심 공판과 내년 초로 예정된 선고까지 거치면 사건은 마무리 될 예정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피고인들도 대법원에서 인정된 위법행위에 대한 유죄를 인정하고 다투지 않고 있다"며 "이 사건에서 밝혀진 위법행위가 다시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모두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들은 어떤 재판 결과에도 책임을 통감하고 겸허히 받아들인다는 자세로 최종변론을 준비해달라"고 요청했다.
장유미 기자 [email protected], 사진=정소희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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